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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Oct 28. 2020

혐오스런 나의 일상

2W MAGAZINE Vol.1

*본 글은 1인 전자책 출판사 아미가에서 매달 발행하는 웹진 2W MAGAZINE 7월호에 

실린 에세이입니다. 예스24, 교보문고, 리디북스에서 1,000원에 판매되고 있으며 보다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께선 구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사실 원래 쓰려던 글은 지금 쓰려는 글과는 내용도 분위기도 상당히 다르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 여름에 4주 글쓰기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썼던 글이고 강사님이 첨삭해 준 수정 원고도 있으니 긁어서 복사, 붙여넣기로 간단히 완성할 수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지면으로 남기고 싶은 글이기도 했으므로 2W매거진을 만든다는 소식에 기회가 왔구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백지 화면을 눈앞에 두니 다른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다. 이야기하기전에 제목에 대해서 잠깐 설명한다면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패러디한 것이 맞다. 마츠코는 주변에서 혐오스런 마츠코로 불리며 살았지만 나는 나를 혐오하면서 살고 있다는 게 조금 다른 점일까. 나는 모든 면에서 나를 혐오하고 미워한다. 외적으로 보이는 부분부터 남에게는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외모는 너무 잘 보여서 혐오스럽고 내면은 남들이 보지 못할 뿐 나만큼은 진실을 알고 있어 혐오스럽다. 바깥으로 꺼내어 행동하는 것과 안에서 생각하는 내용이 일치하지 않을 때 더욱더 그렇다. 가장 크게 느끼는 지점은 내 외모에 대해 생각하고 말할 때다. 외적으로 빅 사이즈에 속하는 내 모습을 겉으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사는 것처럼 꾸며 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고 싶은 옷이 내 몸에 맞는 사이즈가 없을 때, 좋아하는 옷과 입을 수 있는 옷의 괴리가 광년 단위만큼 멀고 크게 느껴질 때, 작년과 재작년에 입던 옷을 올해 입지 못하게 된 사실을 깨달을 때....... 많고 많은 순간 속에서 나는 나를 지독히도 혐오하고 미워하고 자책한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사회적인 미의 기준이 말도 안 되게 기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미의 기준에 걸맞은 이들을 부러워하며 동시에 원망한다. 그런 내 모습이 또 한심해서 혐오스럽다. 악순환이다. 살과 살이 스치고 쓸리는 걸 가장 생생하게 느끼는 계절은 여름이다. 원래도 여름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런 점 때문에 더 싫어하게 되었다. 몇 년 전에 독하게 마음 먹고 가혹한 식이조절과 운동으로 몸매를 만들어 본 적이 있어서 더욱더 고통스럽다. 그때는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왜 못 하는지 또 한 번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 순간이다. 이렇게 나는 매일매일 매 순간 나를 할퀴며 살아간다. 


작년에 읽었던 책 중에 록산 게이의 《헝거》라는 책이 있다. 저자가 비만 여성으로 살면서 겪은 일들과 감정이 생생하게 서술되어 있어 한 번에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저자는 무대에 설치된 의자가 본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서질까 걱정했으며 무대를 오르내릴 때 힘겨워하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숨을 골랐다. 그 마음이 어떤 것들인지 절절하게 공감이 가서 오히려 읽기가 힘들었다.《헝거》초반에 이런 문장이 있다. “나도 간절히 쓰고 싶다... 내 몸 크기가 어떠 하건 간에 내 몸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담담히 고백하는 책을.” 이 문장이 실린 챕터를 읽으면서 조금 울었던 것도 같다. 저 간절함이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었고 함께 고통스러웠으므로. 


정말이지 나도 내 마음의 평화를 찾고 평온해지고 싶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든지 받아들이지 못하겠으면 뭐라도 해보든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 서서 세상에서 제일 쉽고 비참한 혐오하는 방식을 택했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과 다 필요 없으니 이제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을 치른다. 엄마의 걱정을 빙자한 잔소리도 그만 듣고 싶은데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틈만 나면 나에게 시집도 안 간 아가씨가 몸매가 그게 뭐냐고 힐난한다. 소리도 질러 보고 못 들은 척 무시도 해 보고 듣자마자 한 귀로 흘리기도 하고 오만 가지 방법으로 듣기 싫다는 모션은 다 취해 봤는데 엄마는 포기할 줄을 모른다. 빅 사이즈 여성들은 자기 몸의 크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누가 부러 알려 주지 않아도 내가 제일 잘 안다. 타인이 건네는 걱정과 염려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말들은 상처가 될 뿐이다. 그게 가족이라면 더욱더 크게 상처가 된다. 그러면 또 나는 나를 혐오한다. 그러게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이어서 듣지 않아도 될 말들을 듣고 있는 건지. 이런 모습이 싫다면 좋아하는 모습으로 바꾸려는 노력이라도 해 보면 좋으련만 무기력하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서 눈 감았다 뜨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있기를 바라고 있다. 놀부 심보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제 나를 그만 혐오하고 싶다. 내 못난 부분도 그냥 나라는 걸 인정할 수 있는 아량을 갖고 싶다. 정히 안 되겠으면 무언가 해보려는 시도라도 했으면 좋겠다. 불행 코스프레는 그만두고 사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대로 두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 당장 커다란 내 몸은 당장 어쩔 수 없지만 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울분을 토해 내는 일은 나에게 고통스러우면서도 무엇인지 모를 평온함을 가져다준다. 활발하고 크게 움직이는 일이 버겁고 힘들다면 이렇게 작게라도 움직여서 변화하고 싶다. 


이토록 사소한 내 이야기가 다수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지면에 실린다고 생각하니 조금 긴장되는데 설레기도 한다. 글쓰기라는 건 특별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고 나서도 나는 글 쓰는 일 같은 건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써봤자 일기장에나 끄적일 이야기들인데 누가 관심 있어할까 싶었다. 그럼에도 지면을 빌어 이렇게 쓰고 있다. 나 같은 사람도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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