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언니에게
언니, 있잖아. 내가 언젠가 읽은 책이 한 권 있어.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라는 제목이야. 여러 명의 저자들이 공저로 참여한 앤솔로지였지. 저자들이 각자 언니라고 여기는 이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엮여있었어. 존경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롤모델로 삼고 싶은 사람 등에게 편지를 쓰는 거야.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 중의 한 사람인 김겨울 작가님은 오래전 역사 속 인물 허난설헌에게 편지를 썼어. 당신에게 이름이 남아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있어 다행이라고 말이야.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몰라. 그리고 이 외에도 다양한 이들이 각자의 언니를 부르며 본인의 마음을 털어놓는 편지는 유머, 감동도 있었지만 오갈 데 없는 마음을 언니에게 쏟아낸다는 느낌도 함께 받았어. 그래서 읽는 내내 울컥했고 슬펐던 한 편 든든하기도 했어. 울기도 많이 울었지.
이 책 말고도 여러 다양한 책 속에서 언니를 찾으며 위안을 받던 나는 요즘 언니를 알게 돼서 퍽이나 기뻐. 나에게도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언제나 생각했거든. 나는 내가 바라는 소원이나 바람이 이뤄진 적이 별로 없어. 특히 백마 탄 왕자님, 나만의 기사님, 위기의 순간 날 구해주러 나타나는 히어로와 같은 것들은 환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는 걸, 현실에선 있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 그래도 언니만큼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늘 바라 왔어.
나는 매일같이 방황하는 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서 꾹꾹 발로 밟아 누르고 또 누르다가 끝내는 곪아서 터져버리곤 했어. 보기 싫은 흉터도 많이 생겼어. 그래서 이 이상의 흉을 더하지 않으려고 요즘은 무던히 노력 중이야. 사실 잘 되는 건 아냐. 그런데 사람의 인생이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이제 나를 그만 미워하고 싶어. 방황도 그만하고 싶어.
이런 이야기들이 어떻게 읽힐지 잘 모르겠어. 언니는 스스로가 미워 죽겠어서 숨쉬기가 괴로운 적이 혹시 있었어? 없었다면 정말 다행이야… 이런 고통은 모르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 다만 한 번이라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껴봤다면, 언니는 어떻게 견디고 버텼어? 지금 내가 겪는 이 혼란과 고통, 허망함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언젠가 우리가 만날 수 있다면 그때 내가 듣고 싶은 말은 하나뿐이야. 네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괜찮다고. 잘 살아왔다고. 내가 나 스스로에게는 아무리 말해도, 기를 쓰고 주문 외우듯이, 염불을 읽듯이 말해도 도통 받아들여지지 않는 저 말을. 언니가 해주면 진짜 그런가 싶어서 조금쯤은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아. 타인의 인정이 뭐라고 이렇게 절박하게 매달리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내가 큰 욕심을 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인간은 원래 혼자 살 수 있는 동물은 아니잖아.
언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