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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Oct 28. 2020

행복은 돈에서 오는 거예요

2W MAGAZINE Vol.3 여자, 돈을 말하다

*본 글은 1인 전자책 출판사 아미가에서 매달 발행하는 웹진 2W MAGAZINE 9월호에 

실린 에세이입니다.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리디북스, 네이버 시리즈에서 1,000원에 판매되고 있으며 보다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께선 구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내 꿈은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정말로 일을 하지 않고 돈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매일 꿈꾼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일까 싶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바람을 염불 외우듯이 외우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2003년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엄마는 내게 취업할 것을 권했고 당시 엄마 말대로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택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다. 내 인생은 그때부터 엉망진창이 된 것이 아닐까 종종 생각하기도 한다. 당시 엄마의 친구였던 분이 작은 회사를 운영 중이셨는데 그 분의 거래처 중 한 곳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소식이 엄마를 타고 나에게 전해졌고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면접을 봤고 빠른 속도로 취업이 결정되었다. 엄마는 왜 나한테 취업을 권했고 나는 또 왜 그 말을 그렇게 잘 들었을까. 나는 왜 10대를 그렇게 허망하게 날려버렸을까. 미래에 대한 고민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학교에 다녔던 결과가 이토록 잔인할 필요가 있었을까. 20대는 왜 또 그렇게 무기력했을까. 연료가 소진되기 직전의 자동차처럼 느릿하고 힘없이 흐느적거리면서 생각 없이 살았을까. 많은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찬란하게 빛나야 할 10대와 20대를 나는 너무 어이없이 보내버렸다. 꿈이 있었으면, 하고 싶은 일이 흐릿하게나마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다면, 닮고 싶은 모델이라도 있었으면 지금 나는 아주 많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럽다. 


내 학교생활, 성적, 교우관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단 한 번도 궁금해하거나 물어보지 않고 관심조차 없었던 엄마가 원망스러우면서도 엄마를 원망하는 내가 못나게 느껴진다. 나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스스로가 혐오스럽다. 결국 화살은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이직하고 싶은 지금 30대의 나는 학력도, 경력도 시원찮아서 옮길 곳이 마땅치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입사했던 회사와 그 이후 이직했던 회사, 다시 이직해서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근무경력을 모두 더하면 17년쯤 되는데 이 긴 시간 동안 뚜렷하게 해놓은 게 없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한번 절망으로 밀어 넣는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려고 해봐도 나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기 갈 길 잘 찾아가는 사람들 보면 내가 너무 철없이 살아왔던 것 같아 한없이 후회하게 된다. 뒤늦게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지만 나이 서른이 넘었는데 새로운 분야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건 복권 당첨만큼이나 힘든 일인 것 같다. 다섯 군데의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고 다섯 군데 모두 서류에서 탈락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려다 보니 경력으로 입사할 수 없어 신입으로 도전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갖고 싶지만 우리 집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다. 엄마는 일하지 않기 시작한 지 제법 됐고 우리 집에 엄마와 나 외에 가족 구성원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만두면 아파트 임대료, 관리비, 각종 공과금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진다. 17년을 일했으면서 1년 혹은 몇 개월 정도 일을 하지 않아도 걱정 없을 자본금을 모아두지 못했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으면 나에 대한 혐오를 멈출 수가 없다. 너무 되는대로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는 날엔 참을 수가 없다. 잠도 못자고 나를 할퀴기만 할 뿐이다.


돈은 행복에 커다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이 말하지만 그건 어느정도만 맞는 말인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행복을 추구하기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따는 일 만큼이나 어렵다. 얼마간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아도 내 현실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통장 잔고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회사를 꾸역꾸역 다니는 일은 지옥을 드나드는 것 같은 기분을 안겨준다. 당장 회사는 때려치우고 이 에너지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혹은 취미에, 배워보고 싶었던 분야에 쏟아붓고 싶은데 먹고 사는 문제는 눈앞에 닥친 현실이라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다시 열아홉 살 고등학교 3학년의 나로 돌아간다. 그때의 나에게로 가서 멱살을 쥐고 흔들며 엄마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고 무리해서라도 대학교에 진학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가 날 원망하더라도 단호하게 엄마 말은 듣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처음 다녔던 회사는 월급이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이직을 준비하는 23살의 나에게 가서는 다음에 갈 회사에서는 월급의 20%는 꼭꼭 저축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런 부질없는 생각은 나를 더욱더 하찮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현실 부정-과거 후회의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계속해서 불행해진다. 


나는 비혼주의자고 엄마가 내 곁을 떠나면 혼자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여유는 꼭 필요한데 어쩌자고 이토록 무지할 수 있었을까. 그 누구보다 열심히 재테크에 신경 써야 했고 나를 위한 저축을 게을리하면 안 됐는데 나는 대체 어쩔 작정이었던 것일까. 


끝없는 자기혐오와 학대 속에서 우울은 깊어져만 갔고 상담이니 병원이니 다녀봤자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는 이상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불안을 안고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간다. 엄마와의 관계, 일, 취미, 인간관계, 덕질 중에서 그 무엇하나 제대로 이뤄놓은 게 없어서 슬프다. 10년을 넘게 일했는데 새로운 것을 도모해 볼 여유자금이 없다는 사실도 나를 슬프게 한다. 내가 자초한 일이어서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어 그게 가장 슬프고 답답하다. 


젊고 튼튼할 때 생을 마감하고 싶은 마음이 절반, 인생은 알 수 없는 일이니 어떻게든 버텨서 무사히 할머니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절반이다. ‘어떻게든’버텨서 ‘무사히’할머니가 되려면 통장 잔고를 채우는 일은 몹시 중요한데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면서 제자리걸음 하는 듯한 이런 모양새로 ‘어떻게든’의 ‘어떻게’를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역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행복해지기 위한 필수 조건 중의 하나는 돈이다. 특히 혼자 살고 있거나 미래에 혼자 살기로 작정한 여자는 더욱더 그렇다. 


오늘도 나는 나를 학대하고 다그치면서 자기혐오와 걱정을 함께 끌어안고 현대 의학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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