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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Oct 31. 2020

Twinkle

하늘의 태양보다, 별보다 환하게 빛나고 싶다.

거울에 비치는 안경을, 내 손을 한번씩 차례대로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손가락에는 레이어드된 여러개의 반지가, 손목에는 팔찌와 시계를, 안경에 달아놓은 안경줄까지. 하나같이 반짝이는 것들이다. 이것들이 거울에 비치면 빛이 반사되어 눈에 잔상을 남기는데 그 순간도 기분이 좋다. 가끔은 티아라 모양의 머리띠를 하고 있을 때도 있다. 또 가끔은 손톱에 보석을 잔뜩 붙일 때도 있다. 이처럼 빛나는 것들을 몸에 하나씩 걸칠 때면 기분이 좋아져서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어느 날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생에 까마귀가 아니었을까?" 그러자 친구는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꺼낸 말이지만 나도 내 상상이 웃겼다. 까마귀와 언어로 소통할 수 없어 확실하진 않지만 내가 반짝이는 걸 좋아하는 마음과 까마귀의 마음이 비슷하지 않을까 가끔 생각해보기도 한다.


나의 이런 반짝임에 대한 과한 집착의 시작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울이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장신구가 화려해진다는 사실이다. 평소에도 물론 좋아하지만 마음이 한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면 단순히 좋아한다는 단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광기를 띠고 악세사리들을 찾아 헤맨다. 외출할 때 반지나 귀걸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길가다가 새로 사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편집샵이나 디자인 소품 가게, 또는 프리마켓과 같은 곳들이 눈에 띄면 곧장 달려가서 하나는 꼭 구매한다. 시간이 좀 남으면 네일샵에 들르기도 한다. 기분이 좋아지는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내 통장은 꼭 나만큼 우울해질 것이다. 통장이 말을 할 줄 알았다면 또는 손발이 있었다면 내 멱살을 쥐고 짤짤짤 흔들면서 화를 냈을 것이라는 데에 전재산을 건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할말이 있다. '어차피 없는 돈, 좀 쓴다고 대수야?'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은 모두 옛말이다. 요즘은 티끌을 아무리 긁어모아도 덩치가 조금 커진 티끌일뿐, 태산이 되진 않는다. 내 우울의 원인이야 차고 넘치지만 그 중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인 문제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계속 오르고, 덕분에 지갑사정이 풍족해지는 일은 요원하다. 이번 생에 부자가 되는 일은 천지가 개벽하지 않고서야 힘들 것 같으니 당장 즐겁고 행복해지는 일을 택하는 것인데 이로 인한 즐거움도 잠깐이다. 걱정과 우울의 원인은 그대로고 남는 것은 공허함 뿐이다. 그럼 또 이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또 다른 반짝임을 찾아 나선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언젠가는 열 손가락 전부 보석을 붙이고 나타나 친구를 경악케 한 적이 있었다. 저세상 화려함을 자랑하며 내 손톱 어떠냐고 신나서 떠드는 날 가만 보더니 그 돈을 모아 차라리 여행을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여행을 가는 쪽이 기껏해야 한 달도 채 못가고 지워지는 네일아트보다 실리적일 수 있다. 굳이 손익계산서를 따져본다면. 그러나 사람 마음이 AI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취미생활마저 계산 따져가며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나는 여행을 떠나는 일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국내로 떠난다면 내 손톱에 들인 비용정도만큼 있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다만 들이는 비용은 비슷한데 비해 수고가 너무 많다. 움직여야 하고 검색해야 하고 낯선 곳이니만큼 적당히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네일아트는 그냥 가서 앉아만 있으면 된다. 딱히 내가 수고할 일이 없고 지루할 틈도 없다. 혹여 고객이 지루할까봐 시선은 내 손톱에 두면서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어준다. 장신구를 걸치는 일은 더 간단하다. 마음에 드는 걸 구매한 뒤 바로 착용하면 금새 기분이 좋아진다.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남아있는 이상 백날천날 반짝이는 것들을 몸에 걸친다 한들 뭐가 바뀌는 게 아니라는 것도 정말 잘 알고 있지만 당장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연봉도 통장잔고도. 이로 인한 경제적인 불편감까지도. 이런 것들이 날 우울하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드는데 주 원인을 지금 곧장 해결할 수 없어서 부질없는 걸 알면서도 반짝이는 것들한테 잠깐 내 마음을 얹어본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내 마음도 같이 빛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 꿈이 생겼다. 그 언젠가. 나중에. 불안감도 우울도 떨쳐버리고 오로지 내 힘으로 날 빛나게 만들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빛은 바래지고 다 떨어져나가서 볼품없어지는 잠깐의 반짝임이 아니라 내가 노력해서 이뤄낸 나만의 것들로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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