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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Nov 25. 2024

짝사랑에 대한 고찰

짝사랑을 끝냈다.


※ 우선 이 글에서 말하는 사랑의 정의에 대해 확실히 해두자. 

사랑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게 마련이지만 지금부터 말하는 사랑은 연인 간의 사랑만을 논하고 있다.


사랑에 대해 떠올려 봤을 때 부정적인 감정을 먼저 띄우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대체로 그럴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사랑의 정의에 대해 말해달라고 해본대도 양상은 비슷할 것이다. 바로 어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경우라면 또 모르겠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 글자가 하나 더 붙으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짝사랑이다. 

짝사랑에 대해 물어본다면 사랑에 대해 물었을 때와는 영 반대의 결론이 도출되지 않을까 싶다.

사랑은 사랑인데 혼자 하는 사랑이라서 그런가. 짝사랑이라고 하면 대개 안타까워하거나 측은해하거나 슬퍼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나도 이게 만약 남일이었다면 비슷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다만... 내 일이 되니까 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을 뿐이다. 모두가 나 같지는 않겠지.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는 또 있을 것 같다. 


짝사랑은 생각보다 재밌는 이벤트라는 사실을.

짝사랑에 미쳐 머리가 돌아버린 것이 아니냐고 묻고 싶으시다면 지극히 정상이라고 답변드리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리고 제법 오래 한 사람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고 그다음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 다소 외면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한다고 피해 지지 않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입덕부정기를 겪는 것과 같았다. 

차라리 연예인이었으면 좋아함을 인정하고 난 다음이 더 쉽다. 그냥 동네방네 떠들면 된다. 내가 00을 너무 좋아해서 팬이 됐다고. 연예인의 팬이 됐다고 해서 주변 사람들이 측은하게 보는 일은 없으니까.


짝사랑임을 인정하고 나니까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수도 없고 고민상담을 하려 해도 대상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긴 시간 동안 혼자 북 치고 장구 쳤다. 모르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쪼르르 달려가 고민을 털어놓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겠는가.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뇌는 이걸 도파민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의외로 재밌었다. 이 모든 상황이 슬프면서 웃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웃음의 비중이 더 커졌다.


상대방한테 말할 수 없는 사랑은, 혹은 마음을 전했대도 끝내 거절당하고 만 사랑을 홀로 이어가는 일은 의외로 상대방보다 나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도 몰랐던 나에 대해 알려준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지는 날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상대방한테 집중하는 나에 대해 말해주는 또 다른 내가 있는 느낌이었다.

정말 의외였다. 상대방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나에 대한 생각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럴 때 어떻게 하고 싶은지,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로 이어지곤 했다.

그리고 보통의 인간관계에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나의 성향이 두드러져 보이기도 하는 순간들이었다. 

나는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 한정 상당한 호구였다. 그 바운더리가 우정이든 사랑이든 뭐든 간에 경계선 안 쪽에 있는 사람들이면 나는 호구가 되는 편이었다. 

몰랐던 나의 모습에 더해 흐릿하던 지점을 선명하게 만들어주기까지. 이 정도면 남는 장사가 아닐까.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에게 있어 짝사랑의 경험은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새삼 진지해지는 시간이었다. 자기애가 너무 넘쳐나는 것 아닌가 하는 자아비판을 잠깐 해봤는데 이는 자기애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짝사랑을 하고 있을 때의 나와 그냥 보통의 나는 비슷하면서 조금 다르다. 거울로 보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나의 모습이 온전히 똑같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짝사랑이라는 이름의 거울이 있다면 그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내가 보게 되는 것이고

짝사랑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타인들은, 거울에 비치는 나를 볼 때와는 또 다를 것이다.


짝사랑을 하는 나에 대해 주변의 안타까움이나 측은지심을 이해할 수 있었고

짝사랑 거울에 비치는 나에 대해 지켜보는 시간이 생각보다 재밌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 대해 좀 알고 싶다 하시는 분들, 한 번쯤 추천합니다.(찡긋

아, 헛소리하지 말라고요? 진짠데... 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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