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아이돌 그룹 콘서트에 갔다. 그것도 초대권으로 앉을 수 있는 관계자 좌석 1 열이었다. 이 공연은 특별하게도 아이돌 멤버들이 공연 전 찾아온 관객 모두를 위해 팬사인회를 열어서 티켓을 끊고 들어온 관객들은 착석 전 멤버 모두에게 사인을 받을 수 있었는데 나는 1 열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빠른 순번으로 사인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이 순간이 너무 벅차고 떨린 나머지 2명에게만 선물을 건네고 사인을 받아 도망치듯 좌석으로 들어갔다. 다른 두 명에게 건네주지 못한 선물을 품에 안은 채 후회를 곱씹으며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한참 후 사인을 끝낸 멤버들이 공연장으로 들어와서는 무대가 아니라 좌석을 향해 오더니 관객석 사이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심지어 내가 사인을 받지 못한 멤버 두 명이 내 옆에 좌우로 자리하는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꿈을 꾸는 와중에도 꿈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게 지금 돌이켜보니 웃기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는 수사적 표현이 무엇인지 체감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숨을 여러 번 골라야 했다. 그리고 남은 생애 동안 써도 모자랄 용기를 바닥까지 닥닥 긁어모아 내 옆에 앉은 멤버 두 명에게 차례대로 선물과 팬심을 건넸다. 그들은 놀랍게도 날 기억하고 있었다. 순서가 상당히 앞이었고 다른 멤버 둘에게 사인을 받으면서 펑펑 울다가 자신들은 지나쳐 후다닥 도망간 내가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꿈이라 그런가. 나는 울진 않았는데 이들은 내가 울었다고 했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 이들이 울었다면 나는 운 게 맞다. 선물과 카드를 건네면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당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했다.
이 공연은 멤버 모두가 무대에 서기 전에 각자 준비한 개인 공연을 먼저 선보이는 순서로 진행된다고 했다. 사실 그러면 무대에 안 서는 멤버는 무대 뒤 대기실에 있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감히 그 앞에서 따질 수 있는 용기 있는 자 어디 있으랴... 그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그렇게 시작된 무대를 지켜봤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일은 공연 시작 후 얼마 안 가서 생겼다.
내 왼쪽에 앉은 멤버가 나를 애착인형 대하듯이 대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애정행각이라거나 그런 게 아니라 무생물을 대하는 것처럼. 우리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쿠션이나 인형을 끌어안게 되는 것처럼. 이 친구는 나를 인형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깨에 기대 눈을 감고 있는다던가, 무릎을 베고 눕는다던가... 나는 이 모든 행동을 그냥 지켜봤다. 어째선지. 가만히 있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멤버가 내 얼굴을 기억해 줬고 내 선물도 친절하게 받아주고. 내 옆에 앉아있다가 내 무릎을 베고 눕는다. 덕후 입장에서 최애의 이런 행동이 싫을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 손길에 악의나 괴롭힘의 의도가 없었다. 어떻게 아느냐면 그냥 알았다. 꿈이니까.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그 순간이 그냥 몹시 행복하고 좋았다.
이 모든 건 꿈이라서 가능한 일이겠다.
꿈에서 깨고 나서 멍한 머리로 한참 생각했다. 이 그룹은 현실에 실제 하는 그룹이고 진짜로 유명 아이돌이고 가요계에서 아주 오래 활동해 온 아이돌이다. 이들이 카메라에 비치는 모습을 생각했을 때 꿈속에서 벌어진 일은 절대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정말 말 그대로 꿈을 꿨다. 게다가 공연 전에 관객 모두에게 팬사인회를 연다...? 이것이야말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이벤트가 아니겠는가... 소규모 공연이라면 모를까... 꿈에서 내가 찾았던 공연장은 잠실 체조경기장이었다.
기묘한 것은... 정작 현실의 내가 이 그룹의 덕후는 아니라는 것... 꿈속에서는 심장을 입 밖으로 뱉을 만큼 설레고 떨려 준비해 간 것도 제대로 못 전해줄 정도로 사랑했지만... 현실에선 전혀 아니다.
팬의 정의를 어디까지 두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들의 음악과 무대를 즐긴다. 새 앨범이 나오면 노래를 듣는다. 멤버들 몇 명은 sns를 팔로 하며 좋아요도 종종 누른다. 하지만 앨범을 사거나 부러 시간을 들여 영상을 찾아보지는 않는다. 알고리즘에 뜨면 볼 때도 있고 안 볼 때도 있다. 이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다.
아무래도 약을 먹지 않고 더위에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간신히 선잠에 든 탓에 요상한 꿈을 꿨다 보다. 잠들기 직전에 sns를 둘러보며 꿈에 나왔던 멤버들 게시글도 몇 개 봐서, 그래서 꿈의 주인공이 됐나 보다. 마침 또 퇴근길에 들었던 비밀보장 주제가 천하제일 덕질 자랑 대회였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정작 나의 최애는 꿈에 안 나오는데... 이래서 덕계못인가... 덕후는 계를 못 타고...
정말 절실한 팬이 꿨으면 좋았을 꿈이 내게 왔다...
아무래도 복권을 사야겠다. 마침 금요일이다.
※꿈속의 아이돌 그룹은 샤이니입니다. 멤버가 누군지는 굳이 밝히지 않겠습니다... 전 샤월(샤이니 팬덤)은 아니지만 샤이니를 좋아하고 응원합니다. 꿈에서 깨고 나서 잠깐 즐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