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할 일들을 척척, 효율적으로 해낸 하루였다. 일단 어린이집에 가기 전 자연이와 함께 있으면서 이부자리 정리도 하고, 설거지도 끝내고, 빨래까지 돌렸다. 등원을 시키고 나서는 빨래를 널고, 청소기 돌리는 것까지 모두 완료! 이 모든 것을 끝냈는데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어서 낯설지만 기분 좋게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하면서 산을 찾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특히 아주머니들이 많이 보였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봐도 나보다 젊은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겠지. 그게 더 효율적일 테니까. 나도 효율적인(= 시간 대비 칼로리 소모량이 많은) 운동을 하고 싶지만 산에서 보고 느끼는 소소한 재미들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혼자 있지 않지만, 혼자 있을 수 있는 산속 운동이 나는 정말 좋다.
오늘은 작정을 하고 새로운 운동 코스를 택했다. 그저께 한 아주머니를 (나 혼자) 따라가다 발견한 길인데, 완벽한 숲길이라 북한산에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무가 우거진 숲길인 덕에 햇빛도 거의 보이지 않아 기분 좋게 땀을 흘렸다. 또 흙, 나무, 돌, 짚으로 짠 거적 등을 힘껏 밟으니 지압이 돼서 발바닥까지 짜릿하게 시원했다. 그 길이 너무 좋아 한 바퀴를 더 돌았다. 아무래도 점점 산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다.
점심에는 '완벽하게 맛있는' 쌀소면 우동을 끓여 먹었다. 힘들게 운동한 게 아깝긴 했지만 전날 밤 생각해 놓은 메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마침 재료도 모두 구비돼 있었고-.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내면서 주말에는 두부만두전골을 해 먹자고 얘기했다. 아, 내가 살을 뺄 수나 있을까.
집에 있는 재료만으로 만든 '완벽하게 맛있는' 쌀소면 우동.
잠시 쉬면서 TV를 켰는데 <나의 아저씨>가 나왔다. 보고 또 봐도 지겹지 않고, 가슴 뭉클해지는 드라마. "이 동네도 망가진 것 같고 사람들도 다 망가진 것 같은데 전혀 불쌍해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좋아요. 날 안심시켜줘서." 오늘 귀에 꽂힌 명대사다. 이런 대사를 쓴 작가는 분명 크든 작든 망해 본, 망가져 본 사람이지 않을까. 나는 망가지기까지는 아니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꽤 경험한 사람인데…. 망가지지는 않아 다행인가? 그나마 요즘은 그 순간들은 기억 속에 접어 두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드라마 소리를 들으며 분주하게 자연이에게 먹일 떡갈비를 만들었다. 처음 만든 것 치고는 잘 되었고, 자연이도 맛있게 먹어 주었다. 자식 입에 고기 들어가는 모습은 왜 이리 뿌듯한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글을 쓰고 있는데, 밤 10시에 넘은 시간에 엄마가 찐 옥수수, 무생채, 동치미를 가지고 오셨다. 난 이제 고작 일 년 남짓이지만 엄마는 35년이 넘었으니,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크고 깊은 걸까. 엄마가 되면 엄마 마음을 안다는데 난 엄마의 마음이 짐작도 안 간다.
전에는 몰랐던 걸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나를 보며 '더 어른이 되어야지' 하고 다짐한다. 경험으로 깨닫지 못한 것도 스스로 생각해서 깨닫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