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린 비 덕분에 오늘 아침은 공기가 꽤 맑았다. 또 입추가 지나서인지 약간의 시원한 바람도 불었다. 집에 있기가 아까워 오랜만에 운동화를 신고 문을 나섰다. 목적지는 우장산. 딱 한 시간 걷고 오리라던 다짐을 오늘에서야 실천할 수 있었다.
가는 데 걸린 시간은 20분. 그럼 20분은 산을 걷고, 나머지 20분은 집으로 돌아오면 되었다. 가는 길에는 그늘이 별로 없어 선크림도 안 바르고 나온 걸 조금 후회했다. 팔 토시도 하나 끼고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평일 오전 시간이라 산은 한산했다. 대신 매미 소리가 온 산에 울렸다. 우장산은 진입로도 많고 산책 코스도 다양한 꽤 큰 산이다. 마음은 다른 동네로 내려가는 길도 찾아보고 싶었지만 나는 한 시간 코스를 만들어야 했다. 적당히 가팔라서 땀을 낼 수 있는 코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날 온 비 덕분에 산 냄새가 더 짙게 느껴졌다. 잠깐 눈을 감고 선 채로 숨을 크게 여러 번 내쉬었다. 상쾌한 공기가 나를 둘러싸고, 내 몸에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짧은 순간, ‘행복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년 봄에는 자연이와 종종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산 길에 만난 예쁜 흰 비둘기.
결론은 마음에 쏙 드는 한 시간 코스를 만들었다. 평지와 계단과 흙길을 적절히 경험할 수 있는 코스였고 심장의 숨 가쁨도 알맞게 느낄 수 있었다. 산에서 머무른 시간은 약 25분. 약간의 아쉬움이 들지만 오가는 시간을 5분이라도 줄이면 30분은 산속에서 맑은 공기도 마음껏 마시고 땀도 충분히 낼 수 있으리라.
땀을 내고 와서 만들어 먹은 사과 셀러리 주스도 아주 꿀맛이었다. 엄마가 놓고 가신 바나나까지 넣으니 달달함까지 맛볼 수 있었다(셀러리는 한 대 정도 더 넣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오늘 계획에 없던 싱크대 하수구 청소를 했다. 세제를 뿌리고 솔로 닦이만 하면 되니 화장실 청소보다도 쉬운 것이었는데(면적이 아주 작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왜 그동안 겁만 먹고 있었던 걸까. <기생충> 송강호의 대사처럼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인 걸까. 어느 친구의 SNS에서인가 ‘하루하루는 성실히, 인생은 되는 대로’ 식의 문장을 본 적이 있는데,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너무 큰 그림은 그리지 말자. 어차피 내 계획대로 되는 건 별로 없는데, 스트레스만 받는다.
계획이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번 주 금요일에 남편이 오랜만에 휴가를 냈다고 해서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계획을 짜고 있다. 자연이가 태어난 후, 한 동안 외식은 꿈도 못 꿨고, 외식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땐 늘 ‘허겁지겁’이었다. 사실 무엇을 먹든 느긋하게만 먹을 수 있다면 다 맛있을 것 같은데, 작은 바람을 추가하자면 자연이와는 함께 가기 힘든 곳에 가는 것이다. 자리가 조금 불편한 곳도 좋고, 연기가 훅훅 나는 고깃집도 좋을 것 같고, 매콤하거나 얼큰한 음식을 파는 곳도 좋겠다.
밤인데도 매미 소리가 들린다. 밤낮없이 맴-맴 열심히 우는 매미 소리를 들으니 오늘 있던 산속 그림이 펼쳐진다. 올여름 우장산에서 매미 소리를 더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열심히 나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