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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Aug 13. 2019

오늘, 나를 챙기는 음식이 있었나요?


어젯밤에 비가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는 그칠 거라 생각했는데 잠깐 눈을 뜬 4시 반쯤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 남편의 출근길이 걱정이 되었다. 비는 자연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까지 계속 왔다. 낮잠 이불 가방을 어깨에 메고 우산을 쓰고 한 손으로 유모차를 밀고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다행히 자연이는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높은 습도로 온 몸에 땀이 났지만, 민망하게도 이런 일로 엄마 노릇을 톡톡히 해낸 것 같아 뿌듯했다.



남편이 있는 주말에 정신줄을 놓고 먹었던 걸 후회했으면서도 아침부터 배가 고팠다. 딱 한 시간 걷고 들어와 사과 셀러리 주스를 해 먹으려고 했던 어젯밤의 계획이 틀어졌다. 내 속에서 나온 ‘비가 오니까’ 이 한 마디가 내 마음을 탁 풀어지게 했다. 물 만 밥과 어제 아침으로 먹었던 김치찌개는 계속해서 들어갔다. 사실 비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그래도 사다 놓은 재료가 있으니 내일 아침에는 사과 셀러리 주스를 해 먹을 것이다. 문제는 사과 셀러리 주스와 삶은 달걀만 먹어야 한다는 것이고!



지난 금요일에는 자연이 반찬을 해주려고 양배추 한 통을 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주 큰 양배추였다. 책에 있는 레시피대로 만들었지만 자연이는 몇 번 씹다가 뱉어냈다. 맛도 문제였고, 식감도 문제였다. 덕분에 주말에는 양배추 샌드위치, 양배추를 넣은 순대볶음을 해 먹었다. 물론 맛이 있었고, 그래서 또 많이 먹었다.



사실 당연하지만 자연이를 위해 여러 식재료를 사면 자연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재료가 냉장고에 남는다. 하지만 나 혼자 먹자고 이것저것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다 남편이 오는 주말에,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임박한 재료들부터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그러다 보니 평일에는 나를 위해 만드는 음식은 거의 없었다.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것들을 챙기는 게 맞다. 더해, 입이 원하는 것보다 몸이 원하는 것을 챙긴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일단 내일 아침은 사과 셀러리 주스이고, 비가 오든 안 오든 물 만 밥에 김치찌개를 먹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읏!!



《오늘의 감사한 일》


1. 새벽 빗길에 남편이 무사히 강원도에 갔습니다. 감사합니다.


2. 자연이 하원 시간에는 비가 그쳐 힘들지 않게 집에 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3. 고기반찬 잘 먹어준 자연이 고마워!


4. 콩비지에 엄마가 만들어주신 깍두기를 먹으니 정말 꿀맛! 엄마, 매번 감사합니다.


5. 아침에 자연이가 젖지 않게 레인커버 잘 여며주신 5층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이밖에 생각하지 못한 모든 일에 대해서도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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