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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Feb 17. 2021

드라마 다시 보기를 하는 여자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는 본 드라마 다시 보기이다. 내용도 알고 있는 드라마를 굳이 넷플릭스와 왓챠에 돈을 내고 본다. 남편은 볼 때마다 “또야?” 하고 묻는데 나는 좋은 드라마는 봐도 봐도 좋다. 내 ‘인생 드라마’를 꼽으라면 <동백꽃 필 무렵> <나의 아저씨> <연애시대> <메리대구 공방전> 등이다. <메리대구 공방전>은 배우와 같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대사를 외우기도 한다.  

    

드라마 다시 보기를 할 때 내가 주목하는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는 대사, 둘째는 배우들의 연기다. 대사에 집중하는 건 책을 볼 때 좋은 문장에 밑줄을 치는 것과 같은 의미다. 마음이 ‘크-’ 해지는 대사와 재미있는 드립이 나오는 대사를 마주할 때마다 작가를 경외한다. 근래 본 것 중 이 두 가지를 완벽히 아우르는 드라마는 단연코 <동백꽃 필 무렵>이다. 이 드라마는 몇 번을 봤는지 모른다. 운동할 때는 소리만 듣고, 집안일을 할 때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오며 가며 본다.   

  

배우들의 연기를 본다는 건 캐릭터의 감정을 보는 거다. 저런 상황에서 저런 대사를 왜 말하게 됐는지, 왜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등을 생각하며 본다. 나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상상해보기도 한다. 독후감이나 서평을 쓸 때와 같은 마음이다.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인간을 이해한다고 말하면 너무 거창할까.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는 것과 좋은 책을 반복해 읽는 것은 다르지 않은 행위다.




연기를 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 활자에 내 감정을 입혀 진짜 내가 하는 말처럼 술술 얘기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현실의 나는 말주변이 없어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으로 혼잣말을 할 때가 많았는데, 주어진 대사를 외워 말하면 그런 욕구가 좀 해소될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주변에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할 용기도 없었고, 노력을 들이는 일도 엄두를 못 냈기에 무얼 해보진 않았다. 그래도 연기는 꼭 한번 해보고 싶어 방향을 틀어 성우에 도전했다.  

    

3년 동안 성우 학원을 다니며 3번의 성우 공채시험을 봤다. 결론을 얘기하면 아시다시피 난 성우가 되지 못했다.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기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어색하고 쑥스러워 혼자 있을 때에도 제대로 연습하지 않았다. 실력이 나아질 수가 없었고,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성우 학원에서 매번 좌절하며 돌아왔다.

     

하지만 누군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게 뭐야?’ 하고 물으면 나는 여전히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생에 한 번은 단편 독립영화 같은 데서 지면에 쓰여 있는 대사를 한번 내뱉고 싶다. 버킷리스트를 써본 적은 없지만, 쓴다면 순위 안에 들 꿈이다. 완벽하게 영화 속 캐릭터가 되어 진짜 나의 감정을 담아 말할 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을까. 배우들도 그 맛에 중독이 된다는데 나에게도 그걸 경험해볼 기회가 올까.    

  

'지금 나이에 할 수 없는 건 키즈 모델밖에 없다'는 인터넷 명언(?)을 본 적이 있다. 누가 한 말인지 너무나 웃기면서도 맞는 말 같아 ‘껄껄껄’ 웃었다. 지금 내가 배우가 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일상에서 나만이 아는 소소한 노력들을 한다. 그런 식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 책을 읽는 것, 거울 앞에서 내 얼굴을 보는 것, 지금 이렇게 나에 대한 글을 쓰는 것. 정말 내가 카메라 앞에 서서 입을 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평범한 일상도 그럭저럭 재미있다.      


p.s. 이렇게 쓰고 나니 왠지 먼 훗날에라도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희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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