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로 복싱 4일 차가 되었다. 월요일부터 시작해 4일 연속으로 운동을 했다. 낮에 한 시간가량 땀나게 운동을 하고 장마철 습도와 씨름하다 보면 저녁 7시 반부터 8시 사이에 급 피곤이 몰려온다. 하지만 나의 할 일은 남아 있기에 그대로 뻗을 수도 없다. 운동 첫날 빼고는 계속 아이를 재우며 나도 같이 잠들어 버린다. 다시 일어나서 일기도 쓰고 책도 읽고 싶은데 …(하면서 잠이 든다).
일찍 잔다고 일찍 일어나는 것도 아니어서 요 며칠은 정말 잠을 푹 잤다. 오늘은 조금 일찍 눈이 떠져 아침에 밥도 안치고 빨래도 돌리고 오랜만에 아이를 여유롭게 등원시켰다. 그런데 오늘은 남편의 회사 휴가. 남편을 핑계로 나도 운동 안 가고 집에 있고 싶을까 봐 벌써부터 고민이 된다. 어제 관장님한테 “매일 나와야죠.” 하고 왔는데.
체육관에서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운동을 한다. 일단 성인 여자는 나 말고 두 명을 보았고, 초등학생 아이들도 많다. 1학년부터는 뭔가 가르치는 게 된다고. 그저께는 초등학교 1학년 남아 아이와 고학년 여자아이 둘을 봤는데(둘이 친구다) 어제는 저학년 여자아이도 있었다. 아이들끼리 스파링에도 올라간다. 물론 놀기도 하겠지만 복싱하는 초딩이라…. 잘은 모르지만 보통은 아닐 거라고 혼자 생각한다.
중학생 남자아이와 50대 아저씨(40대 후반일지도?)도 있다. 그 아저씨는 내가 운동하는 1~2시 대에 자주 나오신다. 어떤 생활을 하시기에 평일 낮에 복싱을 하러 올 수 있는 건지 심히 궁금하다. 그 아저씨는 운동한 지 꽤 되어 보인다. 줄넘기도 잘하고 “훅훅” 소리를 내며 복싱 동작(아직 뭐라고 부르는지 동작 이름을 모르겠다)도 잘 취하신다. 중학생 남자아이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인다. 나와 같이 스텝이나 ‘원투’ 동작이 어설프다. 관장님이 그 아이를 가르칠 때 나는 곁눈질을 하며 관장님의 얘기를 듣는다. 나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라 은근히 도움이 된다.
아, 관장님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체육관에는 관장님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요소들이 몇 가지 있다. 일단 노래. 체육관에는 댄스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는데 90년대 가요부터 요즘 아이돌 노래, 팝송들이 나온다. 그중에는 엄정화, R-ef, 김현정 같은 90년대 댄스 가수의 노래가 많다. 나도 요즘 노래보다는 옛날 노래가 운동할 때는 더 신나기 때문에 재밌게 듣고 있다. 정수기에는 커다란 스타벅스 로고를 붙어 있다. 텀블러에 물을 담을 때마다 스타벅스에 왔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사물함에는 이름과 등록 기간이 쓰여 있다. 등록 기간이 이미 지난 것들도 많아 쓱 보며 지나치는데 어떤 사람 이름 아래에 ‘배신자’라고 쓰여 있는 걸 발견했다. 열심히 다니다 그만둔 건지 아니면 옆 건물 주짓수 체육관으로 옮긴 건지 사정은 모르겠지만 관장님 식 위트를 표현한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또 큰 거울에는 이런 문구도 새겨져 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마이크 타이슨
계획은 지키라고 있는 걸까, 틀어지라고 있는 걸까. 나는 어제 세운 계획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