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조금 오래 운동할 생각으로 작정을 하고 밤 9시에 체육관에 갔다. 밤에도 덥긴 했지만 햇볕이 없어 양산을 안 써도 되어 조금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9시에 조금 넘어 들어서니 지난번 밤에 왔을 때와는 다르게 초등학생, 중학생들 남자아이들이 바글댔다. 초등학생들은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오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가벼운 목소리가 들리니 본격적으로 하려고 했던 마음이 조금 풀려 가볍게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어제는 나 스스로 줄넘기 실력이 좀 늘었다고 처음으로 느꼈다. 첫 타임부터 꽤 오래 뛰었고, 뛰면서도 내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발바닥과 종아리가 별로 아프지 않아서 좋았다(바꾼 운동화도 한몫했다). 3분씩 세 타임을 뛰고 중간에 1분씩 쉬는데 어젠 쉬는 타임에도 굳이 다 쉬지 않았다. 심지어 한 타임쯤 더 뛰어도 무리 없겠다는 느낌…? 줄을 돌리는 팔과 줄을 넘는 다리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호흡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신체 단련을 통한 희열인가. 3주 동안 빠지지 않고 세 번씩 뛰었을 뿐인데 내 몸이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이 여새를 몰아, 난 이번 주에 새로 배운 ‘양훅’을 계속 연습했다. ‘양훅’은 왼쪽, 오른쪽 번갈아 훅을 날리는 기술을 말한다. 양쪽 모두 훅을 친다는 의미다. 허리를 돌려 번갈아 훅을 날릴 때, 반대편 손은 꼭 턱 앞에 가드를 올려야 한다. 영화에서 개그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슉슉, 이건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여. 바람을 가르는 소리제.”라는 대사가 절로 생각이 났다. “원, 투, 양훅”이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구령을 던지는 나를 발견했다. 혼자 거울을 보고 동작을 익히려니까 저절로 입이 움직였다. 익혀야 하는 기술이 늘어나고 콤비네이션 될수록 입에 구령이 붙어야 했다.
“원, 투, 양훅.”
“쨉, 쨉, 양훅.”
어제 새로운 기술이 또 하나 추가됐다. 기술이라기보다는 공격 루틴이다(‘양훅’도 마찬가지). “카운트” 소리에 스텝을 멈추고 ‘투-훅-투’ 자세를 연달아 취하면 된다. 모두 한 번씩은 배웠던 자세이기 때문에 자세 자체를 취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얼마나 바른 자세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는지가 관건. 역시 연습밖에 방법이 없다. 혼자 거울 앞에서 “카운트, 투, 훅, 투”를 연신 입으로 소리 내며 연습했다.
“이번 타임만 하고 글러브 끼세요.”
관장님의 말이 떨어지자 긴장이 된다. 마지막 타임 3분, 더 열심히 거울을 쏘아보며 연습을 한다.
어제는 중2 남학생과 동시에 미트를 쳤다. 관장님이 미트를 양쪽에 들고 구령을 주면 동시에 같은 동작으로 움직인다. 그동안은 양쪽 미트를 왼쪽, 오른쪽 맞춰서 혼자 쳤는데 둘이 칠 때는 관장님이 미트를 왼쪽, 오른쪽 칠 수 있게 옮겨준다. 둘이 동시에 치는 방식이 낯설어 초반에는 버벅거렸다. 내가 버벅대자 남학생도 같이 버벅거린다. 벌칙으로 버피 10회를 하고 나니 정신이 차려진다. 링 위에서의 3분은 바닥에서의 3분과 질적으로 다르다. 링에서 한 타임을 뛰고 나면 세 타임 정도는 쉬게 된다. 목에서는 “헥헥” 소리가 계속 나온다. 나는 팔까지 후들거리며 “헥헥” 거리고 있는데, 나와 함께 뛴 중2 남학생은 바로 샌드백을 친다. 띠띠동갑 어린 남자 중학생 체력을 이 아줌마는 따라갈 수가 없다.
복근 운동까지 마치고 10시 45분쯤 체육관을 나왔다. 나 말고 회원 두 명이 더 남아 있었다. 마치 도서관에 마지막까지 남아 공부하고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옷을 갈아입고 체육관을 나왔는데도 숨이 거칠게 쉬어진다. 집에 와서 씻고 나와서도 입으로는 아니지만, 가슴이 조금씩 들썩이는 느낌이 남아 있다. 밤 11시, 불 꺼진 집에 들어와 누워 있는 남편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