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by Gin

달칵.

두려움에 손이 벌 벌 떨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 올라 마치 깊은 물 속에서 허덕이는 기분이었다.
손에서 문고리가 떨어져 나가는 소리와 동시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지은의 처절한 기도는 그토록 쉽게 허공에 흩어져 버렸다.

이건 악몽이야, 매일 밤 끝없이 괴롭히던 꿈일 뿐이야.
괜찮아, 조금만 버티면... 언제나처럼 이 악몽은 끝날 거야. 다 괜찮아질 거야...

" ... 자니? "

열린 문 틈 사이로 악몽이 발을 들이밀었다.
뒤집어쓴 이불 속 꼭 감은 눈 사이로 흐르는 눈물은 점, 점이 베갯잇을 적셔 들었다.
다가올 고통에 이를 악 물면서 숨을 몰아 쉬는 지은을 보며 악몽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달칵.

악몽이 들어 선 방의 문이 닫혔다.
지은에게만 길고도 긴, 홀로 버텨야만 하는 지독한 아픔의 지옥이 시작되는 소리였다.
이불속으로 스며든 악몽의 손길은 처음에는 차가우면서도 친절한 듯 굴었다.
스스슥 지나가는 손길은 소름을 돋게 하고, 마주 닿아 오는 숨결은 진득하게도 몸을 감아 왔다.

" ... 자는 것 맞겠지...? "

살며시 지은의 다리 사이로 손을 밀어 넣던 악몽은 잠시 멈칫하더니 중얼거렸다.
이 모든 것은 꿈이라 생각하며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지은의 귓가에 들린 민욱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욱 낮은 목소리로 무척 긴장되어 보였다.

차라리 방금 깬 척 움직여 버릴까?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지를까?
잠꼬대인 것처럼 몸을 뒤척이면 알아서 나가지 않을까?
정신을 마비시키는 두려움으로 인해 제대로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토록 좋아하고 따르던 민욱이 눈앞에 있는 것이라면?
이 모든 악몽이 정말 꿈이 아닌 사실이라면?
지은이 속으로 혼돈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악몽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지은의 온기를 빼앗아가며 온몸을 유영하던 뱀은 이내 봉긋한 언덕에 올라 아가리를 벌렸다.

" 흣..! "

불현듯 느껴지는 감각에 순간 놀라 소름이 돋아나며 몸이 얼어붙었다.
살살 어루만지다 꽈악 쥐어보기도 보기도 하고, 언덕 위 피어있는 꽃을 건드리며 향기에 취한 듯 춤을 춰댔다.

지은은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림에 당황했다.
기묘한 감각에 아랫배가 욱신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 낯설고 무서웠다.
그녀의 목덜미에 닿아오는 뜨거운 숨결은 마치, 화농이 떨어진 듯 강렬하게 그녀를 감싸며 아찔한 공포를 자아냈다.

스멀스멀 기어가며 이곳저곳을 탐닉하던 뱀은 오목하게 들어간 우물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지은은 끝이 없는 뱀의 욕심에 마음 속 깊은 바닷속으로 침잠해갔다.

' 제발 그만해... 무서워, 싫어...! 그만, 그만! '

자신도 모르게 열이 차오르는 몸이 불쾌했다.
아랫배에서 느껴지던 욱신함은 더욱 강해져만 갔고, 돋아 오르던 소름은 이내 발끝을 저리게 했다.

그때 저벅, 저벅.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등장했다.
일시 정지 버튼이 눌린 듯 두 사람은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발소리는 잠에 취한 듯 주방으로 향했다.

또로로록 정수기에서 물소리가 들리고 이내 탁, 내려놓는 소리가 들린다.
지은에게 꼭 붙어 있는 악몽에게서 빠르게 심장이 뛰는 느낌이 등을 타고 전해 졌다.
어찌나 빠르고 세차게 뛰는지, 마치 우퍼 앞에서 노래를 들을 때 느껴지는 울림 같았다.

발소리가 점차 지은의 방 쪽을 향해 움직였다.
저벅, 저벅. 소리가 다가오자 악몽은 빠르게 지은의 입가를 손으로 막으며 쉿, 하고 경고했다.
한 발짝 움직이는 소리마다 온몸을 감싼 악몽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지은은 벗어나려 꼼지락거렸지만 강한 힘을 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지나 발소리의 주인은 다시 방으로 갔지만, 그들은 한동안 심장을 다독이며 잠시 멈춰있었다.

어느덧 등을 통해 느껴지던 울림이 잦아들자 악몽의 팔이 느슨해졌다.
힘이 빠진 민욱은 자신에게 안겨 있던 지은이 깼음을 알아챘다.
민욱은 잠시 망설였지만 살며시 손을 들어 지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 ... 미안...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

목 뒤에 고개를 파 뭍은 채 민욱은 작게 읊조리며 지은을 꽉 안아왔다.
처음과는 다른, 자신을 조심히 다루는 듯한 느낌에 지은은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여태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민욱의 목소리는 혼란이 가득했다.

민욱은 품 안에 안긴 지은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갛게 보이는 지은의 목덜미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지은의 움찔거림이 입술을 통해 느껴졌지만, 코 끝을 홀리는 달콤함에 취해 떼고 싶지는 않았다.
양껏 빨아들여진 달콤함이 자신의 몸속에 가득 담기기를 바랐다.
그러면 이 미친 짓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을 물린 채 내어주고 있는 지은은 밀려드는 혼란을 막을 수 없었다.
미안하다며 내뱉은 말을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와닿은 입술은 용암을 가져다 댄 듯 너무도 뜨거웠다.

농밀한 뜨거움에 물려버린 부위가 녹아내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즈음 양껏 배를 불린 것인지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
심장은 터질 것 같이 뛰어 댔고, 어느새 지은 또한 뜨거운 숨을 가쁘게 내뱉고 있었다.

목을 타고 퍼져나간 뜨거움은 다시금 아랫배를 욱신거리게 하며 발 끝을 저리게 했다.
소름이 돋게 기묘한 감각은 지은을 나른하게 하면서, 감각을 마비시킨 듯 정신을 몽롱하게 했다.
몸이 가벼워지며 떨어져 나간 온기에 자리한 서늘함이 몽롱했던 정신이 일제히 돌아오게 했다.

' ...아쉬워... '

몽롱한 정신 속 떠오른 단어에 지은은 뇌격을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아쉬워...? 뭐가?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떨어져 나간 뜨거움에서 아쉬움을 느끼다니...!

침대가 일렁이고 악몽이 문을 나설 때 까지도 지은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뜨겁고, 나른하고, 몽롱했던 그 모든 것들이, 신경에 독이 퍼지듯 서서히 퍼져 나가던 기묘한 감각으로 인해 자신이 미친 것 같았다.

지이잉- 지이잉.

머리맡에서 울리는 진동에 지은은 눈을 떴다.
약 기운에 멍한 정신으로 핸드폰을 확인한 지은은 자리에서 일어서다 잠시 멈칫했다.
다리 사이로 미끈하게 느껴진 불쾌한 감각에 어이가 없어진 지은은 입술 끝을 씹으며 인상을 썼다.

"... 미친년. "

불쾌했던 기억에 반응해버린 몸이 역겨웠다.
그렇게도 질색을 하는 인간이 떠올랐음에도 솔직하게 반응해버린 몸에 욕지기가 치밀었다.

" 그 꼴을 보고도 느낀 거야...? 미쳤지, 미쳤어... "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자신을 향한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그 지옥 같던 시간 속에서 느껴왔던 지난한 아픔들을 모두 부정하는 듯한 생물학적 반응에 속에서부터 쓴 물이 올라왔다.

" 우.. 우욱...! "

몇 번을 게워내도 켜켜이 들러붙은 더러움이 전부 꺼내어지지 않는다.
신경 하나, 하나에 물 들은 얼룩은 통째로 세탁기에 넣어 돌린다 한들 깨끗해지지 않을 것 같다.
지은은 쓰린 속에 물을 흘려 넣으며 끓어오르는 설움을 내리눌렀다.

샤워를 하고 물기를 닦아 내며 화장실에 걸려 있는 거울로 자신을 들여다 보았다.
욕실의 차가운 공기 탓인지 핏기 하나 없는 피부에 생기 없는 눈동자.
무의식적으로 짓씹어 댄 입술은 가뭄에 벌어진 논 밭처럼 쩍, 쩍 갈라져 있다.

눈을 내려 자신의 몸을 훑은 지은의 눈동자에는 군데군데 그어 둔 선들이 너절하게 남아 있고, 뼈만 남은 팔다리만이 자리했다.
지은은 멍하니 짙게 그어진 선을 손끝으로 만져 보고는 눈으로 차오르는 열감에 그저 빛을 막아 버렸다.

" ... 이럴 때가 아니야... "

한숨을 깊게 내쉰 지은은 얼마 없는 옷을 입으며 빠르게 출근 준비를 이어나갔다.
겉옷 주머니에서 꺼낸 약봉지를 찢어 털어놓고는 와그작 씹어 넘기며 하루를 시작해야만 했다.

이전 03화#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