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 양, 또 보네요. "
" 어쩌다 보니... "
" 일단 좀 볼게요. "
재아는 전공의에게 차트를 건네어 받으며 지은의 몸을 살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직도 지혈이 덜 된 듯, 옅게 배어 나오고 있는 왼팔이었다.
" 일단, 상처는 제대로 잘 처치한 것 같네요. 상처 부위 많이 아프면 호출해요, 진통제 처방 해 둘 테니까. 드레싱은 상담 때마다 내가 직접 할 테니까 임 선생이 잘 체크해서 준비해주고. "
" 네, 교수님. "
" 그리고 김 선생은 밖에 계신 보호자분들께 전원 면회 금지라고 안내하세요. "
" 네? "
" 그 편이 편하죠, 지은씨? "
지은은 말하지 않아도 불편함을 알아주는 재아가 고마웠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지은을 보며 재아는 입 안이 씁쓸해졌다.
지은이 불쑥 찾아와 약을 찾던 그날, 이야기는 하기 싫다던 모습이 떠올랐다.
단순히 재발의 기미가 보이는 것인가 했는데...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지은의 보호자들은 전원 면회 금지 소식에 문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첫 상담 때부터 매번 혼자 왔던 지은이기에 재아 조차 누가, 누구인지 몰랐다.
" 아니, 왜 못 들어간다는 거예요? 우리 애는 괜찮은 거죠? "
" 현재 환자가 각별히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부득이하게 내려진 조치입니다. "
" 아무리 그래도 부모까지 면회 금지는 아니지 않나요...? 잠시만 들어가서 얼굴만 보고 올게요. "
" 죄송합니다, 어머님. 교수님 지시 사항이라서요. 그럼 이만. "
" 아니...! 저기, 잠깐만요! "
" 아이씨, 이럴 거였으면 괜히 기다렸잖아! 오빠, 나 가요. "
스테이션에서 가만히 대화를 듣던 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들려오는 대화 내용만 들어 보아도 지은의 트리거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 것도 같았다.
재아는 지은의 차트에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단어들을 습관처럼 끄적여 두었다.
[ 완전한 독립? ]
[ 몇 단계까지? ]
[ 강력한 트리거는? ]
병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갔다.
지은은 자신이 얼마 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이어지는 기억들은 전혀 없었으나 오랜만의 멍 함이 달가워 그대로 있었다.
" 강지은씨, 상담실로 움직이실게요. "
지은은 간호사의 말에 따라 재아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교무실로 혼나러 가는 학생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지 하며 씁쓸한 웃음 지었다.
이내 문 앞에 서서 작게 숨을 내쉰 지은은 문을 두드렸다.
" 네. "
재아는 상담용 소파에 앉아 드레싱을 위한 세팅을 하고 있었다.
드르륵 링거줄을 끌고 들어오는 지은에게 살짝 미소를 띠며 앉으라 손짓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붙잡을걸 그랬네요. "
붕대를 풀어내는 손길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상처에서 배어 나온 진물로 인해 끈적하게 들러붙은 부위가 꽤나 아팠을 텐데 지은은 표정에 한치 변화도 없이 평온하기만 하다.
살짝 눌어붙은 핏자국 때문에 붕대를 풀며 드드득하는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재아는 길게 찢기고 깊게 파여서, 여러 개의 길을 만들어 둔 듯한 상처의 형태에 소름이 돋았다.
대체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길래... 이 지경이 되도록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한다는 말인가.
" 어쩌다 이랬어요? "
" 몇 단계까지 갔던 건지는 말해줄 거죠? "
조개 마냥 입을 꾹 닫은 채 창가를 보고 있는 지은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자신에게만큼은 편하게 이야기해 주기를 바라는 재아였기에 지은의 침묵이 아프게 다가왔다.
양 팔의 소독이 끝나고 붕대가 새로 갈아질 때까지 지은은 신음 한번 흘리지 않은 채 묵묵히 창가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재아는 여전히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지은에게 서운했지만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 ... 환각이 보였어요. 고모가 팔을 붙잡은 순간 손끝부터 빠르게 썩어 들어가더라고요... "
영혼이 빠져버린 것 같은 얼굴로 무심히 풀어내는 이야기가 지독하리만치 무덤덤했다.
재아는 환각이 보였다는 지은의 말에 절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처음 자신과 만났을 때에도 심각한 환각 증세로 인해 입원 치료를 권했었고, 긴 시간을 들여서 간신히 지은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왔었다.
지은의 약 처방 주기가 길어질수록 내심 반가웠던 재아였기에, 회기 현상을 겪고 있는 지은이 안타까웠다.
" 아프진 않았어요...? "
지은은 단단히 감아진 붕대 위를 살며시 쓰다 듬는 재아를 보며 팔을 빼내었다.
아프지 않았냐는 질문이 상처를 향한 것인지, 내면을 향한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 처음 겪는 것도 아니고... 그다지... "
" 밖에 계시던 분들... 부모님 맞죠? 다른 분도 같이 계시던데. "
" 소독 끝났으면 가도 되죠. "
" 빨리 퇴원하고 싶으면 나랑 상담을 해야 하는 건 알죠? "
지은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래서 병원이 싫었다.
뭐든지 쉽게 물어보고, 퇴원을 빌미 삼아 협박 아닌 협박을 해 온다.
" ... 말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요. "
지은은 점차 목을 조여 오는 듯한 느낌에 문을 박차고 나왔다.
어디를 봐도 갑갑한 느낌에 이 공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 지은아. "
병실로 가는 도중 마주친 아버지의 모습은 이전과 그다지 다른 것이 없었다.
큰 풍채에서 풍기는 위압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지은에게는 위협적이었다.
" 퇴원하면 집으로 와라. 그 정도 반항 했으면 그만할 때도 됐어. "
' 집? 어디가 내 집인데. 반항? 그만? 어떻게든 정신 차리고 살아 보려고 아등바등 버티는 게 겨우 반항이라고...? '
자신은 하루, 하루를 지옥 불길 속에서 몸을 태워가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겨우 반항이라는 단어로 취급해 버리는 아버지에게 배신감이 솟구쳤다.
지은은 둘러진 붕대 위로 다시금 벌레들이 보이려 하자 팔을 감싸 쥐고는 빠르게 병실로 들어갔다.
[ 가만히 좀 있어 봐! ]
[ 잠깐이면 돼... ]
[ 네가 너무 좋아서... 그래서 그래. 나도 어쩔 수가 없어... ]
[ 한 번만... 응? 이것만 해주면... ]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가위에 눌린 듯 손가락 하나 옴짝달싹 못 한 채, 기억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눈앞에서 반짝이고 사라지는 빛이 살갗에 뾰족하게 내리 꽂혀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달이 차오르며 끝에서 끝으로 기울어 갈 때까지 지옥은 끝없이 불길을 높게 지폈다.
귓가에 울리는 찰칵 소리에 파고 들어갔던 빛살들이 슬금슬금 피부를 뚫고 나와 사각, 사각 갉아먹으며 배를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