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by Gin

민욱은 스스로도 조절하지 못하는 감정의 무게에 허덕이며 말했다.
그의 말은 반복 되었지만, 사과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결심을 다지는 속삭임 같았다.

민욱은 그녀의 위로 몸을 기울이면서도 조금함이 느껴지는 손길에 거침이 없었다.
조심스러운 태도는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불안과 욕망이 그를 압도하며 움직임은 점점 거칠어졌다.
마치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그녀를 놓쳐버릴 것만 같은 절박함이 그의 전신을 지배했다.

" 지은아, 나 정말... 멈출 수가 없어... 최대한 아프지 않도록 할게. "

그의 목소리는 허스키하게 갈라지며 떨려왔다.
지은은 그의 눈빛 속에서 흔들리는 불꽃과 함께 조급함과 광기를 느꼈다.
그들 사이에 차오르던 긴장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강물처럼 흘러넘쳤다.
민욱은 조급한 손길로 가리어진 수풀 사이 동굴을 찾아 나섰다.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허공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이 단말마처럼 흐릿해졌다.
그러나 미끈거리는 생경한 느낌과 짜릿한 전율은 급작스럽게 밀려 들어왔다.

'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

민욱의 손 끝에서 만들어진 질척이는 소리가 야릇했다.
손가락이 스칠 때마다 미끌거리는 액체가 새어 나왔고, 동굴 위 자리한 작은 버튼은 눌릴 때마다 온몸에 전기를 쏘아댔다.

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은 그녀를 버려진 마네킹으로 끌고 와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손가락을 푹 적실 정도로 액체가 새어 나오자 민욱의 눈빛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작게 흔들렸다.

" 괜찮아, 지은아. 한 번만... 딱 한 번이면 돼. 약속할게. "

그의 말은 저 멀리 희미하게 사라져 갔고, 지은의 내면에서 이성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침대 위의 마네킹에 갇혀 버린 그녀는, 그저 차갑게 얼어붙어 있기만 했다.

' 멈춰야 해. 이건... 절대 있어서는 안 돼! '

지은은 숨을 멈췄다.
눈을 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눈을 감는 것이 더욱 두려웠다.

그의 손길은 급하게 허리춤을 따라 움직였고, 천이 스치는 소리가 어두운 방 안에서 더 크게 들려왔다.
벨트에 있는 버클의 마찰음이 방 안의 정적을 깨트리며 공기 속에 긴장감을 흩뿌렸다.

" 하아.... "

민욱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숨소리가 허공을 가득 메웠다.
거칠고 단절된 그의 숨소리는 마치 조급한 시계태엽이 풀리는 소리처럼 이어졌고, 방 안의 공기마저 무겁게 짓눌렀다.

지은은 모든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것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지기를 바랐다.
마치 그 소리가 아주 먼 곳에서 울려오는 메아리인 양, 그녀는 단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기만을 바랐다.
민욱의 손길이 더 깊은 욕망으로 떨릴수록 그녀는 더욱더 자신이 사라져 버리기만을 바랬다.

' 멈출 수 없어... 아무도 이걸 멈추지 않아. 느끼지 않으면 돼... 아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돼... '

생기를 잃어버린 그녀의 눈은 미세하게 떨렸고, 흘러내리는 눈물 방울이 귓가에 닿아 작고 서글픈 소리를 냈다.

민욱은 바지를 거칠게 무릎 아래로 흘려보내며 깊은숨을 내뱉었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침대가 울렁거렸다.
그것은 마치 방 안을 가득 채운 긴박한 심장의 고동처럼 점차 그녀를 둘러싸며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그 모든 소리와 감각에서 떼어내며, 스스로를 더 깊은 곳에 가두어 현실을 지워나갔다.
그녀는 차갑게 식어가는 자신을 느끼며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민욱은 자신을 깊고 깊은 동굴 속으로 완전히 내던졌다.
끓어오르던 욕망은 장벽을 부수듯 그들의 마지막 경계를 넘어섰다.

지은은 억누를 수 없는 생경한 고통과 함께, 마음속에서 무언가 찢겨나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흘러내리는 눈물 뒤로 붉은 잔영이 그녀의 시야를 채우며, 그녀의 마음은 점차 무겁게 가라앉았다.
민욱의 눈 속에서 쾌락과 경이로움이 교차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지은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민욱의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속에는 욕망과 만족,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무언가가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지은은 그것을 바라볼 수 조차 없었다.

' 이건 내가 아니야... 이건 현실이 아니야. '

머릿속은 이미 새하얗게 비워졌고, 낯선 공허 속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천장을 향해 고정되었고, 얇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이 방 안을 어렴풋이 비추었다.
그러나 그 희미한 빛조차도 그녀를 비추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침묵 속에 더 깊이 가라앉게 하는 것 같았다.

민욱은 그녀의 가냘픈 몸을 감싸며 숨을 고르려 했지만, 들끓는 욕망은 그의 몸을 거칠게 이끌었다.
그는 손끝으로 그녀의 피부를 어루만지며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온 방이 그들의 숨소리로 가득 찬 것 같았다.
민욱은 그녀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속에는 멈출 수 없는 짙은 갈망이 담겨 있었다.

" 지은아... 정말로 사랑해... 이제 넌 내 거야. 넌 내 거야.... "

그의 말은 무거운 공기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산화되어 지은의 귀에 와닿지 않았다.
그저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처럼 허공에서 흩어져 갔다.
민욱은 그녀와 이어진 이 순간, 자신을 덮쳐오는 쾌락과 죄책감의 이중주에 휘청이며 몸을 맡겼다.
죄책감은 파도처럼 그를 삼키려 했지만, 욕망의 불길은 더 높이 제 키를 키워 갔다.

" 지은아... 지은아....! "

그는 눈을 감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의 밑에서 오롯이 전부를 드러내고 있는 그녀를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고양감에 조금 더 오랫동안 그녀와 이어져 있기를 바랐다.

서로 부딪히며 만들어 내는 축축한 소리와, 끝없이 흘러내리는 땀방울들은 진득하게 고여 방 안에 쌓여갔다.
비릿한 혈향과 뿜어져 나오는 페로몬들이 섞이며, 두 사람의 정신을 저 멀리 어딘가로 흘러가게끔 했다.

지은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애썼다.
주변을 가득 채우는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자신을 나락의 끝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맴돌았다.

' 조금만 더 버텨... 조금만 더 버티면... 모든 게 끝날 거야. '

방 안을 가득 채운 체향들로 아득히 멀어지는 정신을 느끼던 민욱은 이내 몸 안에서 터질 것 같은 뜨거움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움이 길을 따라 솟구치면서,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벽에 금이 가는 것 같았다.

" 하악... 하악...! "

벽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아슬아슬한 느낌에 민욱은 두드리는 망치에 더욱 힘을 가했다.
속도를 높여가며 벽에 수차례 망치를 내리꽂자, 정수리 끝까지 차고 오르는 희열감이 몸을 관통했다.
마침내 민욱은 절정의 순간을 맞이하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자신을 가득 채웠던 감정과 욕망을 그녀에게 와르르 쏟아냈다.

방 안을 가득 채우던 농염한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달빛마저 서서히 빛을 바래가고 있었다.
지은은 자신의 안을 뜨거움으로 가득 채운 그의 욕망 덩어리를 느끼며, 마음속 어딘가에서 파사삭 부서져 나갔다.
민욱이 무너트려 버린 커다란 벽은 그녀가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그녀의 심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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