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범내아들, 콩알
초영루 별채 장지문이 벌컥 열렸다. 시립하고 선 궁인들 기세에 방안 별감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방바닥만 보았고, 방문을 열었던 동궁영 별제 이흥수도 당황하여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요상해진 분위기에 기녀들이 낭창한 웃음을 멈추고 재미난 구경거리 마냥 경춘전 지밀 궁관들을 보았다. 무르익던 기방 흥취가 깨진 것에 분통이 났는지 세손이 큰소리를 내었다.
"돌아가라. 어머니께서는 동궁의 일을 참견하지 말라 전하라."
세손이 노기 띤 음성을 띄웠음에도 상온내관이 물러서지 않으며 혜빈의 명을 재차 고했다.
"속히 입궁하시어, 흥복전에 드시라는 혜빈마마의 명이십니다"
“네가 감히 무엇이 건데…”
대노한 세손이 상온내관을 향해 술잔을 집어던졌다. 기방답지 않게 호젓한 분위기를 내던 석등 유등빛이 심하게 흔들리며 술잔이 산산조각 났다. 깨진 잔속에 있던 술이 사방으로 튀며 별채 마당은 술내가 진동했다. 세손의 난폭함에 놀란 최상궁이 자리에 꿇어앉으며 혜빈이 염려하고 있음을 읍소했다.
찌든 술냄새와 여인들 분향으로 속이 울렁거려도 참고 있던 덕오는, 최상궁이 석고대죄하듯 바닥에 꿇어앉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관절 무얼 잘못했다고 저리 앉는다 말인가. 기방 땅바닥에서 구겨진 최상궁 치마를 빨래할 세답방 아이들 걱정까지 해대며 골난 표정으로 방안을 살폈다. 동궁영 별감들과 기생들이 방안 가득 들어앉았고, 교자상에는 온갖 진귀한 음식들이 올라 있어 하룻밤 술값이 가늠 조차 되지 않았다. 술상 한가운데 앉은 세손 곁에는 기생이 바싹 붙어 있었다. 저이가 초매구나. 도성 안 사내들 혼을 모다 빼놓는다는 예기 초매. 여나인을 데리고 와 저이를 보여줘야 했는데.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어여쁜 줄 알고 있는 여나인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여나인이 곱다 하나 초매의 짙은 요염함에 댈 것이 못되었다.
하얀 얼굴에 젖은 눈동자로 다감히 세손을 바라보는 초매의 농염한 자태에 덕오는 잠시 숨을 멈췄다. 여우한테 홀린 듯 그이를 보고 섰는데, 나긋한 몸짓으로 초매가 세손 품으로 파고들었다. 눕듯이 안겨드는 초매를 세손이 보듬어 주었다. 세손이 술자리를 파하지 않겠다는 뜻인지 모두들 보란 듯 초매 어깨까지 쓰다듬자, 줄곧 내관 뒤에 서있던 덕오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꿇어앉아 있는 최상궁을 부축하여 일으킨 후, 세손을 똑바로 보았다. 세손이 놀랐는지 어벙한 눈으로 품에 안고 있던 초매를 급히 밀어냈다.
세손을 마주 보고 선 덕오가 혜빈의 명을 전하려는데 목소리가 터지지 않았다. 배에 힘을 주고 다시 고하려 용을 쓰는데, 갑자기 눈물이 툭 터졌다. 투심인지 배신감 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목도 메였다. 임오년의 죽음을 딛고 살고들 있었다. 그 삶의 무게 앞에서 기생집이라니. 스스로 나락으로 가겠다 작정한 이를 어찌 돌려놓는다 말인가. 세손을 책망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덕오는 바로 등을 돌려 별채를 나왔다. 궁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에 빠른 걸음으로 초영루 본채를 지나고 있는데, 취객들 희롱이 이어졌다. 댕기머리 드리우고 교방을 가로지르고 있으니 손님방에 들지 않은 처기인 줄 알고 음담패설이 연이었으나 들은 척 않고 계속 걸었다. 난감함에 어여 기루를 빠져나가고자 했으나, 취기가 잔뜩 오른 양반에게 손목을 잡히고 말았다.
“오늘 밤 네 머리를 올려주고 기와집 한 채 값을 주마. 어떠냐”
“인물이 절색이구나. 아주 마음에 꼭 든다”
아무리 취했다 하나, 기와집 한 채가 저자의 국밥값도 아니고 돈이 썩어 나는 양반이었다. 취객에게 잡힌 손목을 빼내려 힘을 주고 있는데,
“술 처먹어 개가 된 놈이구나”
언제 뒤따라 온 것인지 세손이 취객 놈 손목을 쳐내며 욕을 퍼붓자, 취한 양반의 패거리들이 우르르 몰려와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세손이 기방에서 싸움박질까지 할 태세라 어이가 없었으나, 임백이 호위들과 나타나 싸움이 진정되었다. 양반네 무리들이 호위들의 험악한 눈빛을 보고 겁을 먹었는지 기세가 꺾였다. 싸움을 말리러 나온 행수기생이 취객들을 다독이며 술상을 새로 내주겠다 다독이니, 못 이기는 척 패거리들이 행수기생을 따라 초영루 뒤채로 사라졌다. 덕오에게 욕을 보이던 양반은 물러가면서도
‘권세 있는 대갓집 자제라 좋겠수. 나라님 앞에서도 그리 욕해 보시오’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범개 아들 백일떡 잘 먹고 이게 무슨 난리란 말인가. 떡두꺼비 같은 범개 아들 백일날이었다. 아기에게 줄 명주옷과 실타래를 준비하여 범개에게 갔는데, 똘망한 눈망울을 한 아이가 이뻐 한참이나 범개네에 있었다. 콩처럼 단단하라고 아명을 콩알이라고 지었단다. 개구진 범개답게 아명을 지어 놓아 한참을 웃었다. 콩알은 머리숱 많고 눈동자도 새까만 것이, 제 아비처럼 건강하고 장난도 많을 거 같았다. 아기를 품에 안고 '더도 덜도 말고 꼭, 네 아버지처럼 건강하고, 재미나게 살아' 덕담을 연이어하였다. 아기가 제법 묵직하여 팔이 아팠으나 한참을 어르고 있었는데, 언제 왔는지 세손이 아기 안은 덕오를 보고 있었다. 세손과 함께 온 김우흠은 덕오 품에 든 제 손자를 보며 좋아 입을 다물지 못해다. 세손이 김우흠 손자 백일까지 챙기러 범개 본가까지 온 것이다. 세손이 제 사람들을 이리도 챙기고 있으니, 김우흠은 세손에게 목숨이라도 바칠 듯 충심을 보였다.
시전을 모두 둘러본 후 궁에 드니, 인정이 지난 시각 이었으나 덕오는 제 처소로 가지 않고 경춘전으로 향했다. 잠들지 않고 덕오를 기다리던 혜빈에게 시전 상황과 범개 아들 얘기, 김우흠의 충정을 전했다. 덕오의 얘기를 모두 듣고도 혜빈의 하문이 없었다. 평소라면 시전 상황에 대해 묻는 것이 많았고, 세손에게 힘이 되는 김우흠의 근황도 궁금해했다.
줄곧, 말이 없던 혜빈이 긴 한숨 끝에 입술을 떼었다.
“덕오야, 세손이 너와 합궁을 원하신다.”
“............”
말문이 막힌 덕오는 입을 열지 못했다.
“김부회의 아들을 보고 와서는, 연치 스물에 자식이 없다며 난리를 피웠다”
영민하다 못한 영악한 세손이었다. 억지를 부리는 세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빈궁에게서 아들을 먼저 보셔야 됩니다”
“나도 아느니. 그런데, 저리도 너와의 봉침을 원하니 어찌 하누”
“절대로 안됩니다. 자가”
세손빈의 친부가 병조판서였다. 오매불망 세손을 은애 하는 딸이 부군에게 버림 받는다면, 아비인 병판이 가만히 있겠는가. 병판이 세손에게 등을 돌리면 세손의 목숨은 어찌 되는가. 가뜩이나 이속에 밝은 병판이 세손의 서형제들에게 두루 발을 걸치고 있어, 부원군의 역심을 의심하며 세손이 울분을 터트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경춘전에 문안 인사와서도 빈궁에게 화를 낸 적이 있어 혜빈이 혼절할 지경이었다. 빈궁에게서 후사를 본다면 병판은 오로지 세손 보위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세손 연치에 일반 사대부들은 자식을 둘은 두었으니, 세손이 자식을 바라는 것은 당연했다. 이른 나이에 혼사를 치른 왕실에서 아직도 후사가 없음은 세손의 부덕함이 되고 있으니, 혜빈은 어느 태에서든 아들 나기를 기다렸으나 덕오를 채근하지는 못했다.
덕오의 뜻을 받아들인 혜빈은 세손에게 덕오와의 합궁은 불가함을 알리며 후사를 잇는 일은 늦출 수 없는 중한 책무이니 길일마다 내명부에 들어 합궁에 들도록 하였다. 노력한다면 콩알이 같은 아들을 얻을 것이니, 혜빈도 손주를 안아 보고 싶다며 너스레도 떨었다. 봄날같은 은근한 기운이 경춘전을 감싸니 빈궁은 매일 단장에 공을 들였고, 여나인도 태를 튼튼히 하는 한약을 정성껏 먹었으나 합궁은 없었다. 세손이 합궁일마다 궁을 비우거나 밤늦도록 신하들과 야대가 있었다. 합궁일을 잡고부터 경춘전 문안도 일절 하지 않았다. 동궁 전 차비내관이 서신안부만 전한 것이 달포를 넘기자, 혹여 세손 몸에 병이 들어 여인을 품지 못할 지경인가 걱정 하던 차에, 혜빈의 친정아버지 영의정이 내궁에 들어 세손의 탈선을 알렸다. 한 번도 흐트러짐 없던 세손이었기에 혜빈은 자리에 누워 앓았다. 정궁에게서 자식을 보고자 그간 얼마나 공을 들였는가. 빈궁과 대면하여 침전도 따로 쓰고 있어, 여나인에게라도 후손이 들길 바랐다. 여나인이 교태를 내면 세손이 싫어하는 내색이 없었으니 합궁만 한다면 삼신할미가 아이를 점지할 것이라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밤마다 동궁 별감들과 기방 에 간다는 고변을 들은 것이다.
세손의 비행을 전해 들은 혜빈은 식음을 전폐하였고 날마다 혜빈궁 상온내관을 세손 처소로 보냈다. 세손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며 어미가 염려하고 있음을 담은 장문의 서찰이 보냈으나, 답신이 없었다. 세손이 밤마다 기방 행차를 계속 하고 있다는 세작들 연통만 있었다. 세손이 여색에 빠져 물불을 가리지 못하니 혜빈이 맞불을 놓았다. 덕오를 기생방 초영루 처마 밑에 세운 것이다. 혜빈의 생각대로 세손이 자기 발로 기방을 나왔다.
세손이 따라오고 있음에도 덕오는 곧장 앞만 보고 걸었다.
“덕오야, 나좀 보거라”
취기 낀 목소리로 세손이 애원하자,
획 돌아선 덕오가 다그치며 물었다.
“패주가 되시렵니까. 그런 분을 위해 저는 목숨을 걸었습니다”
“패주를 못 실 수 없으니, 저는 궁을 나가겠습니다.”
"원수 놈은 제가 알아서 처치할 터이니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사십시오”
덕오가 궁을 나가겠다 으름장을 놓자 세손 얼굴이 허옇게 변했다.
“내가 궁에 있는데, 어디로 간다는 것이야”
“도대체, 저를 무엇으로 보간대, 이리 하십니까”
“저하의 눈에 저는 그저 하룻밤 품고자 하는 여인일 뿐이지요”
덕오의 거친 말에, 세손이 울기 시작했다. 무얼 잘했다고 울음이 나는가. 세손이 눈물을 뿌리니 어이가 없었으나, 어려서도 곧잘 울던 세손이라 습관처럼 영견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영견을 견네받고는
“은애 한다. 덕오야”
은애라니. 뚫린 입이라 나오는대로 떠들고 있었다.
“좀 전에 기생을 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를 희롱하십니까”
“덕오야...”
염치가 없었는지 세손이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가 덕오를 기방까지 보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덕오는 저에게 은애 하는 감정이 없었다. 초야를 치루지 못했으니 남녀의 정도 없었다. 성정은 곧고 칼 같은 아이라, 제 곁을 떠나고자 결심한다면 가차 없이 행동할 것이다. 덕오가 초매에게 투심을 내고 있었으나, 기쁘지 않았다. 화까지 내니 어찌 수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은애 한다”
그동안 말하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을 전했는데
“기생집 출입 그만한다고 약조하십시오”
덕오는 그저, 어머니의 명만 고하였다.
“나를 떠나지 않겠다 하면, 약조할 것이다”
“제가 무엇이라고..”
“덕오야, 너는 나의 여인이다. 나의 후궁이다.”
덕오는 세손의 철없음에 기가 찼으나,
“예, 저는 저하의 여인이고 저하의 후궁입니다”
“혜빈 자가의 명을 따른다고 약조하십시오”
건조한 대답만 연신 하고 있는 덕오였으나, 화 내는 모습 조차 어여뻐 확 당겨 안았다. 밤이라 하여도 저잣거리였다. 보는 눈들을 의식한 덕오가 세손을 힘껏 밀쳐 냈으나 품에서 놓아 주지 않으며 말했다.
“약조하마. 대신 지금 아바마마에게 다녀오자.”
“너를 아버지에게 보일 것이다. 수은묘에 가서 내 여인을 데리고 왔다고 말씀 올릴 것이니,
너도 아버지에게 며느리로 왔다 고하거라”
세손이 정녕 저를 정인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덕오는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말을 가져오라”
뒤따르던 호위가 세손의 말을 끌고 왔다. 안장 위에 덕오를 앉힌 세손이 곧바로 말에 올랐다. 함께 말을 타고 있으니 불편하였으나, 세손의 숨결을 느낄 새도 없이 준마가 질주했다. 인정이 지난 깊은 밤이었으나 묘지기 참봉은 놀란 기색 없이 세손을 맞았다. 늦은 밤에 방문이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었다. 참봉이 연다홍치마에 긴 댕기머리한 소저에게 애써 눈길을 주지 않으며 묘제에 올릴 제물을 준비했다. 궁안 어느 여인도 배봉산에 온 이가 없었다. ‘배봉산에 오르는 이는 역적이다’ 추상같은 금상의 명에, 혜빈 조차 지아비를 보러 온 적이 없었다. 폐세자에게 사배례를 올린 덕오가 허리를 곧게 세우며 세손을 보았다. 무덤가에 엎드린 세손은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음을 내고 있었다. 안쓰러웠다. 덕주를 잃은 그날의 슬픔이 몰려왔다. 아버지까지 잃어 작대기 마냥 홀로 서 있다 생각했는데, 세손이 있었다. 그와의 인연이 온통 피투성이 일지라도 세손은 덕오의 정인이고 부군이었다. 영흥사 무당 할머니가 정인을 가지면 안 된다 신신당부하였으나 세손에게로 마음이 흐르고 있었다.
‘너의 남자는 하늘의 해처럼 강하고 찬란하니, 네가 거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의 여인이 되면 너는 하늘이 네개 준 명대로 살지 못한다. 네가 낳은 아이들 또한 수명을 다하지 못하니,
명심해야 한다. 혼인하지 말고 아이도 낳지 말거라. 홀로 훨훨 살아.’
궁녀이니 정인을 가질 일이 없다며 웃고 넘겼는데, 하늘의 해를 품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세손에게 마음을 알리고 싶었고 기방 출입 또한 막고 싶었다. 모일 모시에 제 처소라 오시라 아뢰니, 기뻐 어쩔 줄 몰라하여 봉침은 아니 되고 제 마음을 보일 것이라 하니 시무룩하여 말이 없었으나, 약속한 모일에 세손이 왔다. 제 어깨에 세손의 아명을 새기겠다 고하였다. 저자의 젊은 연인들이 은애하는 마음을 간직하고자 많이 하는 풍습이라 알리고, 친우인 의녀해조와 무종이가 연비 일을 도울 것이라 하였더니 굳은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혹여, 합궁하여 천한 저의 몸에서 귀한 아드님이라도 난다면, 어찌하오리까”
“소신의 마음의 헤아려 주시옵고, 이리하는 마음을 받아 주소서”
“아명이신 모(祩)를 새겨,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제 마음을 전하겠나이다.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허한다”
하지 말라하면 굳이 생살을 태우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허락이 떨어졌다. 무종이가 먹을 갈고 해조가 팔뚝에 모(祩) 자를 붓으로 쓴 후, 바늘로 찌르며 먹물을 입혔다. 아픔을 덜 느끼는 약초를 찧어서 발랐으나, 살 타는 냄새가 진동하였고, 생살 타는 아픔에 눈물이 절로 흘렀다. 연비가 끝난 후, 해조가 덧나지 않도록 약을 덧발랐다. 팔이 베어 지지 않는 한, 모(祩)는 덕오 몸의 일부가 되었다. 제 마음을 세손에게 보였으니, 세손이 더는 합궁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해조와 무종이가 연비 도구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세손이 웃옷을 벗으며 해조에게 명했다.
“여기에 덕오 이름을 새기거라.” 세손이 자기 어깨를 가리켰다.
“안 됩니다. 저하. 소신들을 살펴주소서”
“어서 하거라” 세손이 해조를 다그쳤다. 해조 얼굴이 창백했다. 세손 몸에 연비라니. 여기 앉은 모두의 목이 달아날지도 몰랐다. 세손 또한 모르지 않을 것이나, 막무가내였다.
“나도 네 것이다. 성가 덕오”
“그리 사색이 될 것 없다. 오(梧) 자만 새길 터이니”
“나의 정인 벽오동이 덕오인 줄은 나만 알 터이니. 그러면 되었느냐”
“어서 하거라. 명이다”
명이 연거푸 떨어지자, 해조가 세손 몸에 연비를 시작했다. 세손의 살이 타 들어가고 있었으나, 세손은 애정 담은 눈으로 덕오 머리통만 쳐다보았다. 덕오가 엎드린 채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