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임오, 그 여름을 넘어] #8.내 아버지

#8 내 아버지

by 운울재

이른 새벽 무종이가 봉합도 하지 않은 큰 오라버니 서찰을 전했다. ‘아버지 위중, 임종 준비’ 짧은 글에 다급함이 묻었다. 근자에 몸져눕는 일이 많아진 아버지는 혜빈의 도움으로 어의 출신 의원의 시료를 받으며 비싼 탕약도 아낌없이 복용하고 있었다. 약값이 한양 기와집 몇 채 값을 넘겼으나 혜빈의 보살핌은 음으로 양으로 계속되었다. 모두가 정성을 모으고 있었고 신체 강건한 분이라 차도가 없어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린 덕오를 입궁시킨 아버지는 혜빈 사가의 청지기에서 물러나길 원했으나, 부원군과 혜빈의 만류로 북촌을 떠나지 못했다. 부원군은 살수들이 부셔놓은 이웃집을 구입하여 수리 후, 아버지에게 넘겨주며 북촌에 터를 잡게 하였다. 덕오에게는 다 자란 오라비들이 두 명이나 있었으나 스스로 생계를 꾸릴 처지가 못되어 아버지는 일을 멈출 수도 없었다. 세자가 뒤주 안에서 죽은 전대미문의 사건에 어린 자식이 휘말려 목숨을 잃었고, 살생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덕오는 복수를 다짐하며 궁녀가 되었다. 여식이 혜빈의 장기말로 쓰이는 것이 싫었으나, 복수심이라도 없으면 슬픔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 입궁하는 아이를 말리지도 못하고 부원군댁 청지기 생활을 계속하였다. 여식이 영특하여 혜빈의 총애가 깊더니, 세손의 후궁까지 되었으나 아버지는 기뻐하지 않았다. 말수가 더 적어지고 체기가 자주 있었다. 명의라는 양반이 쉬이 낫지 못할 병이라 진단하여 아연했으나 이토록 빨리 위중할 줄 몰랐다.


대문 앞에 흰 종이도 버드나무 가지도 걸리지 않았다. 안도의 숨을 고르며 사랑채로 들어서니 친족들이 모두 와 있었다. ‘정녕, 임박했구나.’ 몸이 후들거렸으나 진정하고 아버지 곁에 앉았다.

작은 명주천이 아버지 코 끝에서 숨을 지키고 있었다. 저 작은 움직임이 멈추면 아버지는 혼백이 되신다.

마른 손을 조심히 감싸니 온기가 있었다. 평생 차가웠던 아버지였기에 , 미약한 온기가 고마워 손에 힘을 주며,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가지 마세요. 가시면 안 됩니다”

저의 첫 소원을 전했다. 살면서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바란 적 없었으니 한 번은 들어주시리라. 명줄을 놓을까 조바심이 들었다. 아버지 옆으로 바짝 붙어 저의 청을 계속 되뇌었으나, 의원이 아버지의 임종을 알렸다. 어의까지 지낸 명의라 믿었더니 이리도 맥없이 사람을 보내는가. 어이가 없었다.

“아버지 “

덕정의 울음이 터지고 오라비들 곡소리까지 더해지니 순식간에 아버지의 사랑채는 초상집이 되었다. 어린 조카가 어른들의 곡성에 놀라 따라 울었다. 어린것이 슬픔을 함께 해주어 대견했다. 식구들 울음에 위안을 느꼈으나 몸이 공중에 뜬 듯 어지럽고 혼미하여 그저 망연하였다. 병풍이 아버지를 둘러싸며 망자임을 분명히 하였으나 덕오는 눈물도 곡소리도 내지 않았다. 오라버니와 올케들은 슬픔을 드러낼 틈도 없이 상례 준비로 분주하였고 덕정의 곡은 끝이 없었다. 덕오는 넋을 놓고 벽에 붙어 자리를 지켰다. 덕주를 잃고 오랜 시간 혼절하여 작별을 고하지 못했다. 깨어나 덕주 위패가 있는 영흥사에 올라 동생의 이름을 죽도록 불렀으나, 덕주는 제 이름자 새겨진 나무패로 덩그러니 있었다. 태어나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는 쌍생이었다. 두 번 다시 그리 허망하게 이별하고 싶지 않았다.


덕오는 아버지의 혼이 떠날까 걱정되어 울음도 없이 앉아 있었다. 제가 운다면 아버지는 혼백이 된 것을 깨닫고 이 방을 나갈 것이다. 아버지를 떠나게 둘 수 없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앉았는데, 긴 울음을 멈춘 덕정이 면주에 물을 묻혀 덕오 입술을 축여 주었다. 창백한 모습으로 애처로이 앉은 덕오 모습에 덕정은 또다시 울음을 내었다. 낙성대감은 덕정의 몸이 축날까 노심초사하였고, 덕정은 덕오가 슬픔을 이기지 못할까 겁이 났다. 서모가 들어와 아버지 앞에 향을 연이어 놓더니 무릎걸음으로 덕오 곁으로 왔다. 놀란 덕오가 자리를 비켜 앉으며 서모와 거리를 두었다.

“덕오야. 니 아버지 몸이 아직 여기 계실 때…”

서모는 목이 막히는지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슬픔이 깊어 보였다.

“저이가 이 방을 나가기 전에 ….”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 서모를 경계하며 물었다.

“어린 너희에게, 몹쓸 짓 많이 했다. 잘못했다. 덕오야 ”

용서가 될 일인가.

“미안하구나.”

“내가 너희에게 사죄하는 말을 들어야, 니 아버지 무거운 마음 내려놓고 가실 수 있을 거다.”


아버지는 어린 쌍생에게 무감한 듯했으나, 서모의 행실을 알고 있었고 용서하지 않은 듯했다. 서모는 아버지의 응어리를 알았다. 서모의 사죄를 받고 싶지 않았지만, 하고자 하는 말을 막지 않았다. 제게 어미는

아닐지라도 아버지의 내자였다. 힘겹게 말을 뱉고 서럽게 우는 서모를 건조하게 보고 있는데, 여물지 않은 걸음으로 열이 제 어미 곁으로 가더니 작은 손으로 서모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목이 아파왔다. 열이 있었구나. 아버지의 마지막 자식이자 제 동생이었다. 서모가 아버지에게 시집와 아이 셋을 잃은 후 낳은 아이였다. 상처 많은 부부에게 위로가 되는 귀한 자식이었으나, 열이는 아버지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서모는 울음을 그치고 덕오 곁에 열이를 앉혔다. 열이를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아기티도 벗지 못한 막내가 냉랭한 누이의 눈치를 보는 듯하여, 덕오는 열이를 제 무릎에 앉혔다. 어미 곁으로 도망가지 않고 손가락을 꼬무락거리며 품에 가만히 있었다. 성정이 침착한 아이였다. 아버지를 꼭 닮은 열이 무탈하게 자라도록 지켜야 했다. 서모가 열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살아남아 모두를 지켜야 했다.


이른 새벽에 출궁 하였는데, 밤이 깊었다. ‘덕주야, 아버지가 삼도천을 건너가려고 하셔.’

‘아버지 얼굴 알아보겠니. 환생하여 우리를 모두 잊었니’ 습관처럼 덕주에게 말을 건넸다. 덕주에 이어 아버지까지 잃으니, 덕오는 고아가 된 듯했다. 덕정언니와 오라비들이 있었으나 아버지를 잃은 고통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무에, 그리 정이 있었다고 이리도 심통이 오는가. 초췌해진 덕오 꼴에 괄괄한 고모가 죽을 쑤어 입에 넣어 주고, 덕정이 숟가락으로 물을 먹여 주었으나 손으로 밀쳐냈다. 입에 음식 넣는 것이 성가셨다. 인정이 지나 문상객들 방문이 끊겼는지 부원군댁 큰마님이 상례를 챙기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올케들이 오라버니들과 조카들을 챙기고, 고모와 덕정은 사랑채 작은 방에 몸을 뉘었다. 덕오는 홀로 아버지와 있게 되자, 입궁하던 날이 떠올랐다. 등에 업혀 오롯이 아버지를 독차지하는 기쁨이 있었다. 그 감정이 다시 왔다. 살아계시는 내내 거리감과 서운함이 앞섰는데, 허상이었나. 긴 밤 내내 아버지와 둘이 있다고 생각하니 친밀감이 들었다. 사그라지는 향을 계속 피우며 ‘아버지’를 얼마나 불렀을까.


정적이 깨졌다. 통행이 금지된 삼경인데 문상객이 들자 오라비들 곡소리도 다시 시작되었다. 흰색 도포에 백옥 갓끈을 갖춰 입은 세손이었다. 임백도 세손과 함께 방에 들어 아버지에게 예를 갖췄다.


“덕오야, 사람들 눈을 피해 이제야 왔느니. 서운하더냐”

핏기 없이 멍하니 서있는 덕오를 세손이 조심히 안아 등을 토닥였다.

“네 상심이 얼마나 큰 지 알면서도, 이리 늦어다. 나를 용서하거라”

“와 주셔서 망극하옵니다.”

목이 메어 덕오가 겨우 말을 내었다.

“부원군의 예로 상례를 치를 수 없더라도, 사위로는 예를 다할 것이다”

세손이 위로의 말을 연이어 건네자 덕오의 마른 얼굴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세손이 엄지손가락으로 눈가를 닦아 주었으나 눈물이 쉼 없이 흘렀다. 종일토록 울음이 없었는데, 세손 앞에서 오열이 멈춰지지 않았다. 덕오의 슬픈 눈을 본 세손이 따라 울며 밤을 지새운 후, 도성 문이 열리기 전 환궁하였다. 세손이 다녀간 후, 기운을 차린 덕오는 아버지 상사에 온 손님들을 대접하고 어린 조카들을 돌보며 고인의 여식으로 본분을 다하였다. 상례를 치르는 내내 세손이 왔다. 깊은 밤 인정 소리에 북촌으로 들어 아버지 곁을 지키다 파루가 울리기 전 환궁하였다. 세손을 처음 본 고모는 다부진 풍채와 수려한 미모에 놀라 입이 닿도록 칭찬하였다. 소저 시절, 성질 드세었던 고모는 저자에서 왈짜패에게 두들겨 맞는 고모부를 구해주고는 그 인물에 반하여 첩이 되었다. 내자가 병석에 누워있는 사내였으나 막무가내로 혼인하여, 아픈 본부인을 돌보며 아들딸 낳고 정실처럼 살고 있는 고모였다. 덕정은 세손이 덕오를 여인으로 아껴주는지 궁금하였다. 세손이 낙성대감 집으로 잠행 오는 일이 잦아 자세히 살폈는데, 냉철하고 곁을 주지 않은 사람이었고 아랫사람을 엄히 다뤄 악평이 수두룩했다. 덕오가 세손의 후궁이 되었다는 소식에 잠을 설치며 전전긍긍하였다. 덕주 일로 정략적으로 맺어진 거라 짐작하였더니, 독한 덕오가 세손 앞에서 울음을 보였고 세손이 따라 울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깊었다. 세손의 마음을 알게 된 덕정은 안도감에 가슴을 쓸었다.


장인 성윤은 내일 흙으로 돌아간다. 덕오가 아비와 함께하는 마지막 밤이었다. 기진하여 쓰러질 것 같은 덕오 걱정에 발걸음이 급했는지 따라 걷는 승언빗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상중을 알리는 등롱이 멀리서 보였다. 덕오가 밥술이나 제대로 먹었나 걱정이 드는 찰나, ‘쉭’ 살들이 날아들었다. 호위 중이던 임백과 익위사들이 화살을 모두 처내자, 매복하고 있던 살수들이 달려들었다. 성윤의 상례를 치르느라 일정한 시각에 북촌을 드나들어 정적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방비를 하고 움직였으나, 살수들 숫자가 얼핏 서른이 넘었다. 열세였다. 세손을 밀착 호위하는 임백의 심장 앞까지 칼이 들었다. 세손을 죽이려 혈안이 된 자들이 치밀한 공격을 연이어 가해오니 방비가 무너질 찰나, 살수들이 갑자기 목에 침을 맞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살수들의 대열이 흩어지자 익위사들이 놈들을 제압하기 시작했으나, 어둠 속에 숨은 조력자는 살수들을 향해 침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독침인 듯 쓰러진 이들이 일어나지 못했다. 경비를 돌던 순라꾼들이 급히 포도청의 군관들을 끌고 와 쓰러진 살수들을 줄줄이 엮어 나가자, 세손이 당산나무 쪽을 향해 명을 내렸다.

“나를 도운 이는 얼굴을 보이거라”

무사복 차림의 젊은 사내가 세손 앞으로 나왔다. 얼굴에 상처가 깊고 거친 기운이 가득한 자였다. 청부살인 조직인 검계의 계원인 듯한 행색인 자가 세손을 도왔다.

“나를 아는가”

“모릅니다”

“어찌하여 나를 도왔는가. 나는 세손이다”

“......”

“세손 저하시다. 예를 갖추거라”

임백이 사내에게 말했다.

“너에게 목숨을 빚졌다. 연유를 알아야겠다”

“빚진 거 없습니다. 매일 밤 성윤나리 문상 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윤나리 사람이라 여기고 도왔으니, 되었습니다”

“성윤은 나의 장인이다”

사내가 놀라 세손을 보았다.

“성윤의 여식이 나의 후궁이다”

“정체를 밝힌 것은, 내 사람이 되기를 청하기 위해서다. 살수 일을 하는가”

사내가 말이 없었다.

“지난 일은 묻지 않을 것이다. 오늘 나를 도운 일만이 중요하다”

“.......”

여전히 사내가 묵묵부답이자

“여기, 우익위는 임백이다”


임백이라는 소리에 사내가 무릎을 꿇으며, 성윤과의 인연을 고했다. 어린 시절 석도는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한강 움집에서 거지행색으로 살았다. 어머니는 한강물을 퍼다 파는 물장수였다. 여인의 몸으로 무건운 물동이를 여염집에 날라다 주고 삯을 받아먹고 살았다. 멀건 죽을 먹는 날이 많았으나 행복하였는데, 어미가 피를 토하며 쓰러져 일어나지를 못했다. 거지처럼 사는 이들이라 도움을 주는 이들이 없었다. 며칠을 굶은 석도가 좌전에서 도둑질을 하다 성윤에게 붙잡혔다. 석도는 제 어미와 여동생이 굶어 죽는다며 패악질을 부리다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았다.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어 석도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어미와 동생을 먹이지도 못하고 붙잡히게 되어 입에 거품을 물었으나, 성윤은 석도를 관아에 넘기지 않고 시전 여각 안으로 들였다. 자초지종을 듣고는 움막으로 의원과 곡식을 보낸 후, 여각에서 일을 돕고 품삯을 받아 가라 하였다. 작은 초가까지 마련해 주어 아픈 어미를 돌볼 수 있었다. 어미는 비싼 한약도 먹어보고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장사까지 치러 준 성윤이 석도에게 가게 일을 계속 도우라며 글도 가르쳐주었다. 어미를 잃었으나 사람처럼 산 세월이었다. 그리 몇 달을 지내다 성윤이 큰 죄를 지었다 하여 잡혀가고 어린 남매가 살던 초가집은 몰수되어 다시 거지로 살았다. 어린 여동생을 겁간하려던 놈을 죽도록 팼는데, 주먹질을 눈여겨본 계두의 눈에 들어 검계가 되었고 돈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하고 살았다. 인간 노릇 접은 지 오래되었으나, 성윤의 부고를 듣고는 상갓집에는 들지 못하고 문 밖에서 상례를 지켰다고 했다. 밤마다 문상 오는 세손을 보았기에 성윤의 가까운 사람이라 여겨 도운 것이니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라 하였다. 배짱 있는 놈이었다. 독살을 날리던 솜씨가 백발백중이었으니, 속은 차분하고 진중할 것이다. 성윤의 은혜 또한 잊지 않으니 사람의 도를 아는 이였다.

거둔다면 긴히 쓰일 것이다.

“살아온 것을 묻지 않을 것이나, 내 사람이 된 이후의 행실은 반듯해야 한다.”

무관의 길을 열어 주고자 함에도, 짐승 같은 사내는 별 기색 없이 임백만 보았다.


자시가 가까운데 북촌 입구가 소란하였다. 세손의 위험을 직감한 덕오는 집밖으로 뛰어 나갔다. 상중인 몸이었으나 무기들을 품에서 놓지 않았다. 주머니 속 노리개를 끼워 쇠뇌를 만들어 목에 걸고, 비수를 단단히 쥐었다. 살수들과 혈전 중인 세손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세손 가까이 붙는 놈을 제거하고자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는 중에 살수들이 퍽퍽 쓰러지기 시작하더니, 창검을 겸비한 관군들이 몰려와 순식간에 다친 살수들을 오라로 결박하였다. 세손 일행에게 중요한 일이 남은 듯하여 멀찍이 서 있었다. 소복치마 차림에 비수를 쥔 채 끌려가는 놈들 생김새를 뚫어져라 보고 섰는데, 느닷없이 세손 품으로 끌려 들어갔다. 살아 있는 세손을 보아 기쁨이 한량없었으나 기골이 장대한지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품에서 벗어나려 세손 가슴을 밀어내는 꼴이 남새스러웠는지 임백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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