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임오, 그 여름을 넘어]_#7.초례청

#7 초례청

by 운울재

시전 거상 김우흠의 외동아들 범개 장가가는 날이 밝았다. 덕오는 남장 차림을 하였으나, 나들이 가는 여인마냥 아침 내도록 옷매무새를 가다듬다 새신랑이 신행길에 올랐다는 전갈이 오자, 두암골로 말을 몰았다. 눈치 빠른 풍이가 힘든 기색도 없이 산길을 내달렸다. 신행 행렬이 대단하니, 신랑이 초례청에 당도하려면 한 시진은 족히 더 걸릴 것이다. 쉬지 않고 말을 몰아 신행 행렬을 앞질러 두암골에 도착하였다.

덕오의 말 풍이는 세손이 내린 하사품으로 ‘덕오는 다리가 짧으니 부러 기럭지 긴 놈을 골라 왔노라’ 며 직접 고삐를 넘겨준 어마용 숙마였다. 하나를 줘도 곱게 주는 경우가 없는 세손이었으나, 내리는 물품은 최상이라, 궁인 신분인 덕오가 지니기에는 난감한 것들이 많았다. 여인들이 쓰는 것이라면 혜빈에게서 하사 받았노라 핑계라도 대겠으나, 구하기 힘든 청나라 호필, 송연묵, 담비 모피 등을 무람없이 주었다. 상궁도 아니 궁녀가 송연묵을 갈고 귀한 호필을 지닌다면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었다. 질 좋은 모피로 따뜻한 갖옷을 지어 입을 수도 있었으나, 처지에 맞지 않음이었다. 지닐 수 없는 물목들이라 받기를 늘상 거절 하였으나, 풍이를 받은 날은 단박에 큰절을 올리며 기쁜 마음을 전했다. 말 타는 일로 곤욕을 치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궐의 내사복시에서 내주는 말들이 상품이긴 하나, 혜빈궁을 미워하는 별장이나 사복들의 농간이 많았다. 한강 나루터까지 둘러봐야 하는 날도 많은데 아픈 말을 내주거나 성질 고약한 놈을 주는 일이 자주 있어 궁 밖에서 말과 시루느라 힘들었다. 풍이를 얻은 뒤로는 내사복시에 가지 않았다. 여느 사대부가처럼 덕오 전각에도 마방이 생겼고, 풍이가 늘 곁에 있었다. 준마 한 필 내려주던 날, 춘방에도 가지 않고 종일 으스대던 세손과 저녁 수라까지 함께 한 후, 대청마루에 앉아 말의 이름을 지었다. 바람처럼 빠르니 바람 풍 , ’ 풍이’였다.


마을 입구가 보이자 말에서 내려 동네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양반에게 한이 많았던 김우흠은, 무인가의 적녀를 며느리로 보아 원을 풀었다. 세손을 보필하는 익위사 중 충심 깊은 이계호의 여동생이었다. 이계호의 집안은 대대로 과거 시험으로 무관들을 배출시키며 처세와는 등을 돌리고 있었다. 세손이 중매하고 김우흠의 큰 재력이 더해져 순조롭게 이루어진 혼사였다. 혼례식을 치른 이후에 신부 얼굴을 볼 수도 있었으나, 동뢰상에 마주 선 그들을 보아야 했다. 사모관대 쓴 범개가 활옷 입은 낯선 새신부와 나란히 마주 서 있는 모습을 보야야 더는, 범개가 덕주의 어린 신랑이 아님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범개가 장가가는 기쁜 날을 축원해 주어야 했으나, 초례청을 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덕주가 있어야 할 자리였으나 그저, 미망일 뿐. 혼백이 된 덕주에게도, 소실로 간 덕정언니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혼례상이었다. 저 또한 궁첩의 신분이니 혼례청에 설 일은 없을 것이다. 제 자매의 형편에 서글픔이 일었으나, 좋은 날 사특한 것이 들어 시샘이라도 할까 급히 머리를 흔들며 약해지는 마음을 눌렀다. 표정을 가다듬고 경사스러운 자리에 온 손님답게 웃으며 집안을 두루 구경하다 축하객으로 온 오라버니들은 보았다. 둘째 오라비가 남장한 덕오를 한눈에 알아보며 한빡 웃고는, 큰 오라비에게 여동생이 왔음을 알렸다. 묵례로 큰 오라비에게 인사하니 자상히 눈빛으로 받아주었다. 엄한 큰 오라비였으나, 혈족의 따스함이 감겨왔고 피붙이가 주는 안온함에 아픈 마음이 흩어졌다.


신부집 살림이 넉넉지 않아 혼례비와 별당채 짓는 모든 비용을 김우흠이 내었다. 반가의 여식을 돈으로 데리고 온다는 뒷말이 무성했으나, 실상은 양반집 며느리를 맞는 고마움에 신부집으로 사례금을 크게 보냈는데, 사돈 쪽에서 돈을 받지 않아 아들 내외 지낼 신방이라도 새로 꾸미겠노라 하며, 별당을 짓다 사돈집 본채까지 수리하게 된 것이다. 돈 많은 김우흠이 며느리 친정집을 대갓집으로 만들어 놨다고 소문이 파다하더니, 당도해 보니 과연 솟을대문까지 갖춘 대저택이었다. 무인 집안답게 앞마당에는 대련용 팽나무가 당당하였고 대추나무와 배롱나무까지 수려하여 초례청 풍경이 멋들어졌다. 차일 친 병풍 앞 대상에는 음식들이 줄줄이 괴어져 있었다. 대례상을 준비하는 신부 쪽 친지들의 골격이 상당히 강했다. 안방을 왔다 갔다 하는 중년 부인 체격도 여느 여인네들보다 컸고 대문가에서 인사 치례를 하고 있는 신부아버지도 아주 강골이어서 신부 체형을 어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범개 역시 건장하니, 보기 좋은 한 쌍이 될 것이다. 신부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싶어 안채 쪽으로 고개를 쭉 내밀고 섰는데, 기럭아비 들었다는 큰소리가 들렸다. 이내 사모관대 쓴 범개 모습이 보였다. 말 위에 앉은 범개는 반듯하고 의젓했으나, 긴장하였는지 비장하여 웃음이 절로 났다.


나무기러기 한 쌍이 신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자, 대례청 촛대에 불이 밝혀졌다. 새신랑이 초례청 앞에 곧게 섰고 신부가 안방에서 친모들의 도움을 받으며 나왔다. 두 눈에 온 힘을 모아 새신부를 살폈다. 여인임에도 키가 크고 어깨도 다부졌으나, 얼굴만은 희고 부드러웠다. 살짝 새신랑을 훔쳐보는 신부의 눈가에 웃음이 맺혔다. ‘신랑이 마음에 들었구나’ 순간, 덕주의 어린 신랑 범개를 빼앗겼다는 분함에 눈물이 올랐으나, 발끝을 쳐다보며 감정을 꾹 눌렀다. 신랑의 하객으로 왔음을 잊지 않았다.


‘우리 범개 아니면, 처녀귀신 되었겠구먼’

신랑 쪽 친지들이 신부를 평하는 소리가 연잇는 사이, 신랑 신부가 마주 섰고 초례가 시작되었다. 안마당 가득 맑은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범개 앞날도 이리 창창하고 밝으라.

덕오가 축원을 읊조리며 교배례를 지켜보고 섰는데, 익숙한 무리들이 안마당으로 들어섰다. 세손이었다. 세손의 방문을 예상치 못한 혼주 김우흠이 기뻐하며 급히 예를 갖췄고, 덕오도 세손과 임백에게 짧은 목례를 올렸다. 세손의 방문으로 대례청이 잠시 술렁거렸지만 혼례식이 계속되었고 흥에 겨운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는 더 커졌다. 세손이 눈으로 계속 덕오를 좇고 있음을 알았지만 못 본 척, 외면하며 마당가를 돌아다니다 말에 올랐다. 초례청에 서지 못할 처지를 깨닫는 순간 세손이 들어 선 것이다. 세손의 눈을 피했으나 세손은 덕오의 마음을 바로 알아챈 듯 마당가를 맴도는 덕오를 내내 눈에서 놓지 못했다. 세손 역시 덕오와 함께 서지 못한 초례청 앞에서 황망하였다.


‘정녕 저를 아낀다면, 후궁으로 두는 것이 맞을까. ‘

초례청에서 시작한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하고 기어이 세손을 외면하며 두암골을 떠났다. 세손을 한없이 아낀다. 빈궁이나 여나인에게 투심도 느낀다. 동궁전 지밀 내인들 조차 믿지 못하는 세손을 돕고자 밤낮으로 세작일에도 열성을 다하였다. 후궁의 반열에 오른 후, 혜빈의 보살핌은 더욱 세심하여 마음으로 의지가 되었다. 궁녀로 입궁할 때부터 사가의 식구들을 살펴주겠노라 언약을 받긴 하였으나 아픈 아버지에 대한 지원은 음으로 양으로 부족함이 없었고, 학문을 좋아하는 덕오를 위해 배우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사비를 들여서라도 스승을 붙여주었다. 세손의 반려로 부족함이 없어야 함을 늘상 강조하였으나 빈궁이나 여나인에게는 배움을 종용하지 않았다. 덕오는 정궁도, 명문가의 무품 후궁도 아닌 한낱 승은궁녀로 세손 곁에 있으니, 훗날 궁을 떠나야 할 때, 세손의 노여움은 걱정되지 않았으나 혜빈에게는 마음의 빚이 깊었다. 허나, 빈궁과 여나인이 있고 세도가 출신 후궁도 있을 것이니 문제 될 리 없을 것이다. 임금의 모친 곁에는 사람들이 차고 넘칠 것이니, 혜빈은 지금처럼 덕오를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죄인지자 불가위왕(죄인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다)’라는 말은 저자의 평민들도 숨 죽이며 내뱉는 말이 되었으니, 정지간에 누운 부지깽이도 세손을 도와야 할 만큼 위태로운 나날이나 훗날을 방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몇 년간 궁 밖에서 돈 불리는 재주를 제법 익혔다. 한강 여러 나루터와 시전을 오가며 돈 버는 이들을 관찰하고 따라 하였더니 돈이 제법 모아졌다. 시전을 다니기 시작한 첫날부터 봇짐장수들을 살폈다. 시전에서 살 길을 찾으라는 아버지 말을 잊지 않았다. 봇짐장수들이 올라오는 날짜와 지고 온 물목, 사람들과 흥정하는 모습들을 꼼꼼히 기록하였다. 시전 거상 김우흠을 통해서 상거래의 신용이 목숨만큼 중요함을 배웠고 매점매석으로 큰돈을 쉽게 버는 것을 지켜보았다. 벌어 들인 돈의 반은 세도가의 것이었으나 장사치들은 개의치 않았다. 이문이 남으면 섶을 지고 불속이라도 뛰어드는 것은, 비단옷 입은 시전 점포의 상인이나 때 묻은 베옷 거친 난전꾼이나 모두 같았다. 제 목숨 길에 놓고 봇짐 장수로 떠도는 이들에겐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배웠다. 초짜 행상들은 어수룩하여 돈을 떼이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의 장사치들은 눈치가 빨랐고 죽기살기로 흥정하였다. 행상 초기에 돈을 떼이고는 당장 죽겠다며 시장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던 심성 좋던 경북 봉화 출신 아저씨는 식솔들까지 한양으로 데리고 왔다. 난전 끄트머리 다 쓰러져가는 움막을 구해 내자와 국밥집을 열었는데, 싼 가격에 밥을 산처럼 퍼주어 손님들이 바글바글했다.


“그리 다 퍼 주면, 이문이 남으오”

보다 못한 덕오가 걱정이 되어 물었더니,

“시장 바닥에 버리려고 둔 배춧잎 주워다 국 끓이고, 고봉밥이라고 하지만 시커먼 보리밥 아니껴. 무섭다는 산도적, 호랭이 마다않고 목숨줄 내놓고 다니는 이들에게 밥이나 실컷 먹이고 싶소”

제 부군이 돈 떼이고 시전 바닥을 구르던 사실을 알 터인데, 봉화아저씨 내자의 마음 씀씀이가 좋았다. 시전에서 삶을 꾸리는 이들을 보노라면 두려움이 사라졌다. 장사일은 혜빈이 알면 경을 칠 일이라 모은 돈은 영흥사 뒤 나무 밑에 숨겨 두었다. 훗날 큰 거래를 성사시킬 밑돈이었다. 청나라를 오고 갈 날을 생각하니 입가에 웃음이 돌았다. 마음을 다 잡으며 양화나루 물목들을 살펴보려 하였는데, 풍이가 멈춘 곳은 회지동 이운당 앞이었다. 머리로는 한강나루 물목들을 셈했으나, 답답한 마음은 이운당을 향한 것이다.


이운당은 의녀 강해조의 고모였다. 해조는 어미가 기생 출신인 덕오의 동무였는데, 해조의 고모 이운당이 영민한 아이라 제집 생계도 책임지고 세상도 이롭게 할 것이라며 집안 어른들을 설득하여 내의원 수습의녀로 궁에 보낸 것이다. 어미가 기생인 서녀라고는 하나 노론 명문가 집안이었다. 집안 여식 중에 의녀가 있음을 문중에서 좋아할 리 없었으나, 이운당이 밀어주어 강해조는 제가 원하는 대로 수습의녀가 되었다. 의녀 공부는 너무 어려워 해조처럼 명민한 아이들만이 입문할 수 있었다. 수습의녀 아이와 친분을 맺으라는 혜빈의 명이 있어 세작질로 가까워진 의녀였으나, 해조는 하늘이 제게 준 친우였다. 의녀방 아이들이 도무지 곁을 주지 않고 잡일도 없이 내의원 일만 도우니 수습의녀들과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다. 시험에 떨어지면 지방 관기로 내려가야 하는 아이들도 있어 공부를 방해하면 살기를 띄웠다. 덕오가 의녀방을 겉도니 혜빈이 직접 수의녀를 불러 덕오에게 의학을 가르치라 명하였다. 혜빈이 병이 있어 자주 병석에 누우니, 지밀아이에게 병간호하는 법을 가르치라 한 것이다. 이 일로 내의원 차비의녀와 견습의녀 해조가 수시로 혜빈궁으로 와서 덕오에게 의학서와 의녀일을 가르쳤다. 견습생 해조는 수습의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 하여, 공부를 겨뤄보니 긴장감이 절로 드는 아이였다. 매사 날카롭고 야무졌다. 덕오가 어리숙한 척하며 도움을 청하였더니 덕오의 뛰어남을 알아챈 해조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진심을 다해 사죄하고서야 해조와 친우가 될 수 있었다. 그런 해조의 친고모이니 그 까탈스러움은 말로 어찌 다할까. 일찍이 부군과 어린 딸을 여의고 오로지 학문에만 매진하고 있는데, 학문이 깊고 사물의 이치가 분명하였다. 살고 있는 땅이 네모지지 않고 둥글며 큰 돌덩이 위에 얹혀 허공을 계속 돌고 있다고 하는데, 맹랑하기보다는 이치에 합당하였다.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이운당에게 광증이 있다고 할 것이라, 입 밖으로는 내지 않고 혜빈에게만 고하였다. 혜빈은 이운당의 학문이 이치에 합당하다고 여기는 덕오를 놀라워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의 이치를 설명하니, 어이없는 듯 웃으며 이운당 출입을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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