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5분, 늘 혼자였던 아침

초등학교 2학년 방학,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by 작가 희와이
엄마 회사 다녀올게. 일어나서 밥 꼭 먹고, 학원도 잘 가야 해.


초등학교 2학년, 방학 아침마다 들었던 말이었다. 반쯤 감긴 눈으로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그 말과 함께 잠은 이미 깨버리곤 했다. 그래도 다시 눈을 감고 30분쯤 더 누워 있다가 슬며시 눈을 뜨면, 시계는 어김없이 오전 9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집 안은 너무 조용했다. 아침마다 들리던 출근 준비 소리도, 부모님의 기척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엄마가 출근하는 걸 알고 있었고, 인사도 했으며, 가지 말라고 울지도 않았건만. 오히려 쿨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눈물이 났다.


아마도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울고 매달린다고 해서 부모님이 출근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울음이 엄마와 아빠의 마음에 상처가 된다는 것까지도. 그래서 엉엉 우는 대신 눈물 한 방울로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냥 혼자 옆으로 누워서 시계를 보다가 눈물을 흘리다가 금세 그치곤 했다. 어른스러운 내가 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책임감에 감정을 애써 눌러보려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아이였기에 감정은 어떻게든 터져나왔나 보다.


사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맞벌이 집안이었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할머니 집과 친척 집을 오가며 컸다고 한다. 다섯 살쯤부터의 기억 속에서 나는 유치원에 늘 가장 먼저 도착하고 가장 늦게 돌아가는 아이였다. 초등학교에 갈 때쯤이면 혼자 있는 게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 전까지 눈물 한 방울과 함께 방학의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TV를 켰다. 조용한 집이 싫었기 때문이다. 만화영화를 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그보다는 공기의 공백마저 메우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점심 시간이 되면 밥을 먹어야 했는데, 엄마가 꺼내 먹으면 될 정도로 차려둔 반찬이었지만 왠지 집밥을 혼자 먹으면 먹기가 싫었다.


하루는 갑자기 곰탕이 먹고 싶었다. 얼려둔 곰탕이 있다는 엄마의 말이 기억나 냉동실을 열고 곰탕이 담긴 비닐팩을 꺼냈는데, 초등학교 2학년인 나에게 꽁꽁 언 비닐팩 속 곰탕을 쉽게 녹이는 방법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부모님이 보면 기겁을 했겠지만, 그냥 어찌저찌 비닐팩째 냄비에 넣어버린 것 같다. 그렇게 우당탕탕 점심을 먹곤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때의 나는 내가 잘 못하는 것을, 내가 실수하는 것을 부모님께 보이기가 싫었다. 명쾌한 이유를 답할 수는 없지만 그냥 부끄럽고 불쾌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항상 뭐든 잘하는 장녀가 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나는 남들 눈에 '똑 부러지는 아이'였다. 숙제는 알아서 챙기고 어른들 말 잘 듣고 "다 컸네"라는 말을 자주 들었으니까. 지금 말로 하면 전형적인 K-장녀였던 셈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아이를 떠올리는 어른이 되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눈물 한 방울로 하루를 시작하던 아이는 어느새 그 기억을 조용히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언젠가 나의 아이 역시 나와 같은 아침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 있을까.

9시 5분에 혼자 눈을 뜨는 아이에게 나는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아팠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이 이야기를, 이제야 꺼내본다.

<그때의 나에게, 그리고 언젠가 만날 나의 아이에게 전하는 편지>

그 아침이 네가 잘 버텨서 지나간 시간이 아니었으면 한다.
울지 않아서 어른스러웠던 것도 아니고, 참아서 더 괜찮았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너는 혼자여야 해서 혼자였던 아이가 아니라,
사랑받고 있었기에 기다릴 수 있었던 아이였다.

그리고 만약 나의 아이가 같은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면,
나는 그 시간이 네 몫의 외로움으로 남지 않게 하고 싶다.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잘해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아이로 너를 바라보고 싶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