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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ㄷ Nov 15. 2021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의 최전방에 선 몰디브

얼마 전 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의 외무장관이 무릎 높이의 바다에 들어가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총회 (COP26)에 보내는 연설을 한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수중 연설은 기후변화가 몰고 온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처한 자국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었다. 사실 이러한 기획은 투발루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12년 전인 2009년, 몰디브는 세계의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킬만한 이벤트를 열었다. 당시 몰디브의 대통령이었던 모하메드 나시드는 2009년 12월 코펜하겐에서 열리게 될 기후변화 정상회의인 COP15를 앞두고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환기시키고 이를 위한 전 세계의 공동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장관 11명과 함께 스쿠버 장비를 착용하고 거의 20피트에 달하는 인도양에 잠수하여 수중 내각 회의를 열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될 나라는 몰디브와 같은 저지대 국가들이다. 2,000 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몰디브는 평균 해발고도가 고작 1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지구온난화로 몰디브의 해수면은 매년 4밀리미터씩 상승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은 미래에 몰디브는 세계지도에서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수중 각료회의를 주도한 모하메드 나시드는 30년간 철권통치하던 독재자 마우문 압둘 가윰을 꺾고 몰디브 최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었다. 2004년 몰아친 쓰나미로 몰디브 경제가 타격을 받자 가윰의 오랜 독재에 시달리던 몰디브인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맞물리면서 자유선거를 통해 민주정부를 세우게 된 것이다. 그는 20년간 몰디브의 민주화를 위한 투사로 6년간 투옥, 12번의 체포, 2번의 고문을 당했다. 2008년 마침내 민주적으로 선출된 몰디브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지만, 2012년 전 독재자의 잔당들에 의해 계획된 쿠데타로 축출당하고 만다. 몇 년 간의 망명생활 끝에 고국으로 돌아와 국회의장으로 재직했으나 올해 5월에는 암살의 표적이 되어 폭탄 테러로 중상을 입고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의 파란만장한 정치인생과 기후변화에 대한 그의 투쟁의 역사는 2011년에 제작된 존 센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The Island President>에 기록되어 있다.


‘인도양의 만델라’, 또는 ‘몰디브의 만델라’라 불리기도 하는 모하메드 나시드는 오랜 독재국가였던 몰디브에 민주화를 일구어낸 선구자였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지도자들 중에서 기후위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투쟁하는 정치인이자 운동가이다.  오랜 염원 끝에 민주정부의 첫 수장이 된 모하메드 나시드가 나라 안팎으로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한 사업은 바로 기후위기로부터 몰디브를 구해내는 것이었다.


"I have an objective, which is to save the nation. I know it’s a huge task. I’ve been arrested 12 times. I’ve been tortured twice. I spent 18 months in solitary… We won our battle for democracy in the Maldives. A year later, there are those who tell us that solving climate change is impossible. Well, I am here to tell you that we refuse to give up hope."  
-  MOHAMED NASHEED  

(내 나라를 구하는 것이 내 목표다. 이것이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12번 체포되었고 2번이나 고문을 당했으며 18개월 동안 독방에서 지내야 했다... 우리는 몰디브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전투에서 승리했다. 1년 후,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 우리가 희망을 포기하기를 거절한다는 것을 말하려고 이 자리에 왔다.)


‘나라를 구한다’라는 그의 말은 그저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해발 1미터의 저지대 섬으로 이루어진 몰디브에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그야말로 나라의 존패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독재로부터 나라를 구했던 그에게 주어진 다음 미션은 기후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것이었다. 몰디브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말레의 거리로 나섰던 그는 바닷속으로 서서히 잠겨가는 몰디브를 구하기 위해 세계의 거리로 나섰다. 존재감이 미미한 인도양의 작은 나라가 S.O.S. 를 쳐봤자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창의적이고 기발한 방법이 필요했고, 그의 수중 내각회의는 전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몰디브, 그리고 그 아름다운 몰디브의 바닷속에서 죽어가는 산호초를 배경으로 회의를 열었다. 수백 마디의 말보다 그 사진 한 장만으로도 신선하고 충격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the first underwater cabinet meeting in the Maldives, 17 October 2009. Photograph: Ho New / Reuters

실패한 기후회담으로 평가받는 코펜하겐 기후회의에서 의미있는 성과라면 모하메드 나시드의 발견이었다. 기후변화를 놓고 공허한 말잔치나 하는 각국 지도자들 사이에서 모하메드 나시드는 절박함을 가지고 기후 문제를 진정성 있게 다루는 몇 안 되는 지도자로 각인되었다. 몰디브를 독재로부터 구하는 일은 자국민의 힘만으로도 가능하지만, 몰디브를 기후위기로부터 구하려면 국제사회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는 몰디브를 구하지 못하면 해안에 위치한 수많은 도시들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몰디브가 사라지면 뉴욕도 제주도도 물속으로 잠길 것이다.




근래에 잦은 홍수, 범위가 넓어지는 대형산불, 살인적인 폭염 등으로 우리는 기후위기가 바로 코 앞에 왔음을 느끼고 있다. 기후변화가 단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 경제와 안보의 문제, 더 나아가 생존의 문제임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우리가 체감하는 극단적인 날씨와 기후변화를 나타내는 수치만 보자면 과연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포기와 체념으로 이어지게 해서는 안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지구는 거주 불가능한 행성으로 변해버리고 말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존재론적 위기’를 먼저 겪었던 몰디브의 처절한 외침이 이제야 공명이 되는 것은 뒤늦은 후회이자 아픔이다.


"If we can’t stop the seas rising, if you allow for a 2-degree rise in temperature, you are actually agreeing to kill us."  - MOHAMED NASHEED

(만약 해수면 상승을 막지 못하고 온도가 2도 상승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당신은 실제로 우리를 죽이는데 동의하는 것이다. )




<자료>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2015/nov/30/paris-summit-is-missing-one-of-great-world-leaders-on-climate-change


<The Island President> directed by Jon Shenk

(기후위기를 다루는 많은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전문가의 견해를 전하거나 자연의 변화를 추적해서 보도하는 형식을 취한다면, <The Island President>는 기후위기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차별점이 있습니다. 몰디브의 기후위기, 그리고 모하메드 나시드에 대해 더 알기 원하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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