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지안 Jul 27. 2020

다른 사람의 사생활이  궁금한 이유

당신의 진정성을 찾아서

지난 10년간 사람을 성장하도록 돕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사생활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관심을 가져줘서 고마운 마음보다는, '나의 직업'이 아닌 '나의 인생'에 대한 관심이 불편했다.


'지나친' 관심이 쏟아질 때 우리는 부담을 느낀다. 지나치다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우리의 사생활에 대해 궁금해할 때이다. 결혼은 했는지, 안 했다면 왜 안 한 건지, 했다면 아이는 있는지, 없다면 왜 없는지, 있다면 몇 명인지, 아들인지 딸인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제 그만!"을 외치고 싶어 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의 사생활에 대해 캐묻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사생활이 궁금하다.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 옆에는 '아내' '남편' '딸' '아들' 등의 단어들이 추가되어 검색어 순위에 오른다. 유튜브 브이로그의 인기는 우리가 얼마나 서로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가를 보여준다.


도대체 왜 그들은 우리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며, 우리는 왜 그들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즉각적으로 '관심 있음' 또는 '관심 없음'을 선택한다. 유튜브에서 브이로그 한편을 클릭했을 때 그 영상을 계속 볼 것인가, 아니면 뒤로 가기를 누를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5초도 걸리지 않는다. 영상을 끝까지 보거나 그 유튜버의 다른 영상을 보게 만드는 힘은 '호기심'이다. 그 사람이 궁금하고, 그 사람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1단계인 호기심 단계이다.


2단계로 넘어가면 우리는 '관심' 단계에 돌입한다. 여러 명의 사람이 있는데 유독 눈이 가는 사람, 넘쳐나는 브이로그에서 자꾸만 클릭하게 되는 영상의 주인공이다. 관심 단계의 특징은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과 관련된 어떤 것을 보거나 들었을 때 그 사람이 떠오르는 것이다.


3단계는 '호감' 단계이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는데 좋은 사람인 것 같고, 열심히 사는 것 같고, 밝은 모습에서 슬픔이나 아픔도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그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구독'과 '좋아요'를 누르는 단계이기도 하다. 이 단계의 특징은 그 사람의 사생활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 사람이 공식적으로 보여주는 모습 말고,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어 진다. 진정성이 있는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느냐는 4단계로 갈지 말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 '진정성'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그 사람의 사생활을 통해 가치관, 일상, 사고방식 같은 것들을 궁금해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그 사람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사생활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면서 그의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점검하려고 든다.


다음 단계인 4단계는 '팬덤' 단계이다. '팬'이 된다는 것은 마치 가족과 같은, 내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팬덤' 직전단계인 3단계에서는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 내 마음에 방에 들이게 될 '마음의 가족' 후보를 철저히 검증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이 단계에서 뭔가 부적절한 지점을 발견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고 더 이상 마음을 주지 않게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는 '진정성'이다.


4단계인 '팬덤' 단계에 접어들면, 3단계에서 미처 검증 못한 결함을 발견하더라도 이미 '내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안고 가야 할' 문제가 된다. 무언가 잘못이 있어도 비난이나 공격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 '왜 그랬을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하고 걱정까지 하게 된다. 4단계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완전무결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똑같은 잘못을 했어도 3단계와 4단계의 반응이 다르다. 여기서는 더 많은 진정성이 요구되고, 포장된 화려한 모습보다 부족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더 깊은 애정을 느낀다.

 

조셉 미첼리(Joseph A. Michelli)의 책 <스타벅스 웨이>에 소개된 그레이엄 로버트슨(Graham Robertson)이 개발한 '브랜드 애정 곡선'의 공식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별 관심 없다가 좋아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팬이 된다. 저자는 이 과정을 '사랑에 이르는 여정'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사랑에 이르는 여정'을 떠난다. 사람, 사람이 모인 커뮤니티, 동물과 식물과 같은 생명체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까지도 사랑에 이르는 대상이 된다. 얼마 전에 엄마가 20년 된 차를 폐차시켰을 때 눈물이 났다고 했다. 엄마의 60년 인생에서 무려 3분의 1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의 마음의 방에 주차되어 있던 차였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5년밖에 쓰지 않은 노트북과 이별할 때도 마음 한구석이 시큰했다. 돈도 없는데 열심히 자료를 읽고, 또 자료를 만들어서 대학원 졸업해보겠다고 할부로 산 내 첫 노트북. 사실 그냥 부품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어느 전자회사의 상품이지만, 나에게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발버둥 쳤던 열망의 시간에 말없이 묵묵히 함께해준 마음의 방 룸메이트였다. 그렇게 물건도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 애쓰며 살아온 나의 일부가 된다.


물건도 그러한데 사람은 더욱 우리의 마음 이곳저곳에 삭제 버튼이 없는 폴더를 만들고 '언제나 복구 가능'한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다행히도 '폴더 숨기기' 기능은 있으니 아닌 척, 상관없는 척 살아갈 수는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 그 폴더는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한번 생성된 폴더는 끝까지 우리와 함께 간다. 우리가 미래의 어느 날에 기억을 잃어 그 폴더가 지워졌다고 여길지는 몰라도, 아니 지워졌더라도, 그 폴더 안의 글과 이미지, 영상들은 우리 자신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만들어왔다. 그 폴더에 무엇이 담겨있든지 간에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고 우리가 그것이다.


우리를 향한 진정성에 대한 갈망에서 나온 누군가의 '지나친' 관심이 불쑥 다가올 때, 그는 우리에게 강한 호감을 가지고 기꺼이 우리의 '팬덤'이 되기 직전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무잔고, 무남편, 무직 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