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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지안 Aug 30. 2020

나를 오열하게 만든 80대 미혼 할머니의 말

그냥 한번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

"어떨 때는 죽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 한마디에 갑자기 그녀의 지난 인생의 장면들이 내 상상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녀의 80년 인생이 10초짜리 영상으로 머릿속에서 재생되었을 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살면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간접적으로 마주했을 때, 그 10초짜리 영상은 매우 강렬했다.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10대 후반의 나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부모님의 불화를 견디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도망 칠 용기도, 맞설 용기도 없었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의 상자에 갇혀 끝없이 수동적으로 나를 파괴하고 있었다. 아무런 용기도 없던 나는 '세상에 신이 있다면, 어떤 분이든 내일 눈을 뜨지 않게 해 주세요. 아무런 고통 없이 저를 데려가 주세요.'라고 간절히 빌었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동적인 '죽음'과 연관된 행위였다.


별생각 없이 우연히 보게 된 유튜브 영상에서 만난 80대 미혼 할머니는 한 '여자'였다. 나, 우리 엄마, 내 동생, 내 친구, 그 모든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고, 여자였다. 그녀는 미혼이고, 가족이 없다고 했다. 6.25 전쟁 때 가족들은 다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녀의 인생은 어땠을까? 10대에는 어떻게 고통을 견뎠을까? 20대에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30대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었을까? 40대에는 무엇을 이루고 싶었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떠오르며 울컥울컥 무언가가 가슴에서 올라왔다.


무차별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통에 혼자 살아남은 그녀는 혼자 상경해서 원양어선에 조리장으로 취직을 했다고 했다. 덴마크 배도 타고 미국 배도 탔다는데, 젊은 시절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까? 마음의 안식처가 없는 그 젊은 여자는 배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음식을 만들었을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꼈다.


"결혼할 짬을 놓쳐서 못했죠."


그녀의 방안에 할아버지가 있는 상상을 했다. 만약 누군가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옆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로 인해 그녀의 삶이 더 고달프고 불행했을까? 아니면 그와 함께 단 하루라도 행복한 날이 있었을까? 나와 40살도 넘게 차이나는 그녀가 그냥 나, 우리와 다르지 않은 한 여자로 보였다. 4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을 것인가?


그녀는 배를 타고 해외를 누비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사업을 했다고 한다. 사업을 하다가 1997년 IMF 때 사업이 부도가 났고, 혼자 원룸을 얻어서 살았다고 한다. 이후에는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해서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할 수 있었고 생활이 조금은 나아졌다고 했다.


"혼자 있을 때는 외로울 때가 많죠."


우리나라에는 공공후견인 제도가 있다. 공공후견인은 치매 어르신의 청구서 요금 납부, 의료서비스 이용,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법률 대리인으로서 도움을 준다. 공식적으로는 그렇지만, 공공후견인은 때때로 가족 또는 친구의 역할을 일부 맡아주기도 한다. 때로는 같이 밥을 먹고, 대화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녀의 공공후견인이 그녀와 라면을 같이 먹기도 하고, 같이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보았다.


그녀가 한 번은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었는데 보호자가 없어서 병원에서 수술을 바로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보건소에서 담당자가 와서 서명을 하고 나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몸이 아플 때, 마음은 더욱 한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내가 눕고 싶을 때 눕고, 내 생각대로 사니까. 이제 이렇게 사는 게 좋아요."


우울증으로 많이 힘들어했다는 그녀에게서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죽음'을 말하던 때와 다르게 더 큰 울림이 있었다. 결국 '죽음'을 떠올렸던 마음은 '한번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은' 강한 열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너무나도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그것이 번번이 좌절되니 '죽음'이라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을 뿐인 건 아닐지.


나의 10대 시절,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은, '한번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부모님이 더 이상 싸우지 않는 세상, 매일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으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세상,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들려주고 들어주는, 그냥 별거 아닌 일에 하하호호 깔깔대는 그런 세상에서 그냥 한번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가 80대가 되었을 때, 내 인생을 10초짜리 영상으로 보여준다면 어떤 컷을 넣을까?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컷을 10초짜리 영상에 넣고 싶은가? 4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이미 5초 분량의 컷은 만들어진 것 같다. 가슴 아픈 상처 컷, 처음으로 사랑을 받게 된 컷, 처음으로 꿈을 꾸게 된 컷, 뭐라도 이루고자 발버둥 치던 컷, 작게나마 성취를 이뤘던 컷.


6초부터 10초까지의 컷은 아직 비워져 있다. 지금부터 나는 남은 컷을 어떤 장면으로 채울 것인가? 마음이 설레었다. 10년 전, 20년 전 그날보다 지금은 아주 조금 연륜이 생겼다고, 그러니 6초부터 10초까지는 한번 베스트 컷으로 채워보겠노라고. 분명 또 깨지고 부서지고 얻어터지겠지만, '외상 후 성장'을 이룬 80살 할머니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상처로 시작해서 성장으로 끝나는 해피엔딩 10초 영상을 지금부터 만들어가야겠다.


'그냥 한번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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