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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자

삶이 힘든 바다거북들에게

by 지안

19년도 2월. 난 구글을 마지막으로 회사원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모두가 선망하는 회사에 가면 다를 줄 알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최고의 회사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면 내게 더 이상 검증할 것은 없었다.


5년 동안 3개의 회사에서 일했지만 단 한순간도 ‘맞는 곳’에 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조직에서 인정을 받고 높은 연봉을 받아도 행복하지 않았다. 늘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했고, 나 혼자 겉돌았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정해진 나이에 비슷한 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비슷한 곳으로 신혼여행을 가고, 엇비슷한 시기에 첫아이와 둘째를 낳았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지난 주말에 뭘 했는지를 공유하는 ‘누가 더 행복한가’ 자랑 대회가 열렸다. 나는 나와 주파수가 다른 세상에 사는 게 너무 버거웠다. 세상이 정한 모범답안을 따를 수 없다면, 내 답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돌아갈 다리를 태워버리고 회사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새로운 답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평생 객관식 시험만 치르다 처음으로 텅 빈 주관식 답안지를 받아 든 기분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이번 생은 망한 것 같다는 불안 사이를 오가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다 보면 머리가 멍해졌다.


‘호기롭게 나가더니 걘 뭐 하고 산대?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나 봐?’ 모두가 나에 대해 수군거릴 것 같았다. 자존심이 상했고, 내가 한심했다. 몇 번의 사업에 도전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하는 동안, 빨리 뭐라도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나를 잔인하리만치 몰아붙였다.


그동안 살면서 실패 근처에도 가본 적 없었던 내게 실패를 인정하는 건, 마치 나를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일이 망한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망해버린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난 그 감정을 온전히 소화할 시간조차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더 이상의 실패가 두려워졌을 때, 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무기력의 늪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 칠수록, 발은 더 깊이 빠져들었다. 하루는 불안과, 그다음 하루는 무기력과 싸우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몇 년간 혹독한 성장통을 치른 뒤에야 알게 됐다. 지난 실패들은 내 삶에서 그렇게까지 큰 비중을 차지할 대단한 일들이 아니었다는 걸. 아니, ‘실패’라고 칭하는 것조차 이제는 맞나 싶다. 지나고 보니 그저 인생에서 스쳐 간 수많은 사건들 중 하나에 불과했던 것들이었다.


앞으로 뭘 하고 살지 수십 가지 옵션을 고민하면서도 그중 글쓰기는 없었다. 아무것도 이뤄낸 게 없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의 끈질긴 설득 끝에 짧은 글을 한 편 쓰게 됐다. 그동안 내 안에 쌓여 있던 감정들이 활자로 바뀌자, 처음으로 엄청난 자유와 위로와 희열을 경험했다. 그렇게 쓰기 시작했고,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한없이 컴컴했던 번뇌와 좌절의 터널을 지나 마침내 쓸 용기가 생겼다.


그제야 깨달았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보겠다고 나와서는, 남들이 만들어놓은 폼나 보이는 길만 쫓아다니고 있었구나. 맞지 않는 옷이 갑갑하다고 벗어던지고는, 또 남의 옷만 꾸역꾸역 입었다 벗으며 6년을 보냈구나. 판이 다른 게임을 하겠다고 나와 놓고 난 여전히 세상의 기준이 정해놓은 성공에 목을 매고 있었다. 내가 원했던 건 그저 회사 밖에서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증명하는 일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걸 사업과 착각하고 있었다.


이제는 선명하게 보인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내가 이루고 싶었던 꿈. 그건 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 위에 발자국을 내며 불안과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 잘하고 있다고, 잘 해낼 거라고 응원하는 일이다. 아직 눈밭으로 걸어 나오지 못한 채 버거운 세상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는 그건 네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아직 네 세상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해주는 일이다. 뭍에서의 삶이 힘든 수많은 바다거북들에게, 함께 우리만의 바다를 찾아 떠나자고 손을 건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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