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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의뢰인으로 찾아왔을 때,

변호사님 저 모르세요?

by 글 쓰는 변호사

주말 상담을 가끔 한다.


그때 상담을 원하는 분들께서는 경기도에서 오신다고 했는데,

가끔 그렇게 멀리서도 오시는 분들이 계시는 데다가

해당 사건의 관할 법원이 대전 인근이어서 그런가 보다, 하며 그러려니 했다.


어머니와 따님이 함께 왔는데

따님이 사건에 대해 상세하게 잘 알고 있어

상담을 마칠 때쯤, 이름과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이름과 연락처를 불러주는데 뭔가.. 익숙한 이름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 다시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는데,

멋쩍게 싱긋 웃더니 나에게 말했다.


"변호사님.. 저 모르세요?"




내가 오랫동안 진행했던 유류분 사건의 상대방이었다.


그 사건, 의뢰인이 처음에 내게 이야기해 주었던 사실관계와 실제 소송을 통해 드러나는 사실관계가 많이 달랐고, 나름 해보는 데까지 해본다고 최선을 다했지만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증거가 너무나 빼도 박도 못할 수준이어서 종국에는 패소할 것이 예상되어 재판부의 화해권고로 소취하했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사건의 상대방이,

내게 사건을 맡기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순간 몸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네 맞아요 변호사님, 뵙고 싶었어요"


당시 그녀는 유류분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고 있으니, 내가 분명 엄청 열악한 상황임을 예상하고 있었고 본인이 소송에서 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해보고야 말겠다는 노력의 흔적이 역력한 준비서면을 송달받을 때마다, 가슴이 덜컹했고 밤잠을 못 이뤘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도대체 상대방 변호사는 누구길래, 이렇게 패소가능성이 높은 사건까지도 열심히 하는 거지?" 하면서 나에 대해 찾아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다음에 또 변호사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꼭 나한테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 이런 일도 있구나.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물론 그때 내 의뢰인도 내가 열심히 했다는 것을 충분히 공감했기에 승패에 대해서는 나에게 한마디의 원망 섞인 말도 하지 않았었고 오히려 수고하셨다, 는 인사를 건네주었지만 나의 노고를 상대방이 치하해 주는 일이 있다는 것이 묘한 감정을 넘어서서 약간의 희열을 주었다.


그렇게 나의 상대방은,

나의 의뢰인이 되었다.



내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나에게 사건을 맡겨준 사람에게 내가 대충 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지.


이런 원동력이,

나를 들뜨게 한다. 나를 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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