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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의 기억

뜨거웠던 하루

by 글 쓰는 변호사

한 오 년 전이었을까,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보다 덜 바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국선으로 만나게 된 구속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한다고 했다.

적지 않은 나이인 그 피고인은 성년이 된 이후 절반의 세월은 교도소에서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범죄로 점철된 삶을 산 흔적이 역력했었는데,

본인에게 적용된 혐의(보복협박과 상해)에 대해서 완강히 부인했고,

너무 억울하다고, 본인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방법은 국민참여재판뿐이라고 하였다.


참여재판에 대해 들어나 봤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전혀 감이 없었지만

어쨌든 피고인이 원한다고 하니까 재판부에 국민참여재판을 원한다고 의견을 제출했다.


재판장님은 참여재판에 대해서는 허가하면서도, 한참을 고민하시며 "변호인 혼자서 하기에는 힘들 것인데, 다른 변호사님과 함께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하셨다.


하지만 국선 변호인 보수를 받으며 누가 참여재판을 선뜻하겠는가, 그게 무슨 민폐인가,라는 생각에 다른 변호사님께 차마 부탁하지 못한 내가 다음 준비기일에도 혼자 나타나자,

도저히 안 되겠었는지 재판장님은 해당 재판부에서 국민참여재판을 국선 사건으로 진행해 본 경험이 있는 변호사님에게 연락을 취해 나와 함께 진행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그렇게 한 명의 든든한 전우를 얻은 나는, 그분의 조언을 들어가며 재판을 준비했다.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이 직접 배심원으로 형사재판에 참여하는 형사재판 제도인데,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터진 코로나 등으로 인하여 적잖이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으로 우편을 받게 된 국민은 해당 공판기일에 배심원의 자격으로 출석하고,

변호인이 출석한 국민들 중 해당 사건의 배심원으로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만을 가려(예를 들면 법조인인 사람, 개인적 견해가 너무 강할 것 같은 사람, 특정 성별이나 직종 등에 유리한 판단을 내릴 것 같은 사람 등 재판의 결론을 유리하게 도출하는 데 있어 적절하지 않은 사람을 떨어뜨리는(?) 것인데 배심원을 누구로 할지는 재판의 결론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절차이고 나 또한 무척 고심했던 기억이 있다),

선정되지 않은 사람들은 집에 돌아가고 선정된 7명의 배심원만이 남아 법적 공방을 전부 지켜본 후

피고인의 유, 무죄에 관한 평결을 내리고 적절한 형을 토의하면 재판부가 대부분 그대로 수용하여 판결을 선고한다.


국민참여재판을 준비하는 것은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평소에 늘 하던 형사재판과는 너무나 달랐다.

보통 무죄를 주장하는 사건의 형사재판은 증거조사 등으로 몇 차례 공판기일이 속행되는데,

배심원을 그렇게 몇 번씩 띄엄띄엄 부를 수는 없기 때문에 하루 안에 선고까지 마무리해야 하고,

법률적인 배경 지식이 없고 해당 사건을 그날 처음 인지한 일반인을 상대로 모든 사실관계와 법적 쟁점을 하나하나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내가 했던 사건의 경우 아침 8시경부터 시작해서 판결선고는 밤 12시쯤 있었던 것 같다.

변호인의 역할은 대략 저녁 8시쯤 끝났고, 그 이후에는 배심원들의 토의가 몇 시간 이루어졌고

결론은 피고인이 다투던 보복협박 및 상해 혐의에 대해서 무죄!


하루 종일 재판정에 있느라 지쳤던 나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정말 짜릿한 순간이었다.


(피해자인 증인이 나와 오른손을 들며 본인이 다친 사실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는데

기록 상 다친 손은 왼손이었던 것도 한몫했다....)


재판이 생경한 배심원의 입장에서,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인데 최선을 다해 변호인과 검사의 변론 및 방어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무죄가 나와서 더욱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더랬다.




국민참여재판을 무사히 마치고, 피고인에서 손 편지가 왔다.

감사하다는 말, 그리고 다시는 죄짓지 않고 살겠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그렇게 무사히 내 인생 처음이자 (적어도 지금까지는) 마지막 국민참여재판을 무사히 마쳤다.


그 뜨거웠던 여름날이 문득 생각난다.

국민참여재판, 또 해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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