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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박자의 중요성

똥멍청이 변호사야 제발 그만 좀 해!

by 글 쓰는 변호사

사건을 맡아서 하다 보면,

이미 발생한 사건 자체로(사건은 과거에 일어났고 현재로서는 바꿀 수 없으니 말이다)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있다.


승패가 이미 99% 정도는 결정되어 있는 사건이라도,

변호사의 역량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하면

어느 정도는 참말이고, 어느 정도는 거짓말이다.


원고의 입장에서 질 가능성이 99% 정도인 사건이라도 소를 제기하는 것이 실익이 있는 경우가 있다.

법리적으로 볼 때는 빈약해도,

인정상, 도리상, 피고가 너무 얄미운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경우에 판사님을 잘 만나게 되면 화해권고나 조정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맡기 꺼려지는 사건이지만,

당사자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를 제기하겠다고 하면

이러한 점을 전부 고지하고 1% 까지는 아니고 10% 정도 가능성이 있으니(여기서 영업을 위해 약간의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해보자고 하는 것이다.

다만, 의뢰인이 나중에 딴 소리 하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패소 가능성이 높은 사건은 되도록 맡지 않는다.


이렇게 패소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라도 인정 많은 판사님, 그리고 나름 합리적인 상대방(혹은 상대방 대리인)을 만나게 되면 의외로 잘 풀리는 경우가 있다.


삼박자(나의 변호사, 상대방 변호사, 그리고 판사)는 여러 면에서 참 중요하다.


오늘 다녀온 사건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대리를 맡은 피고가 여러 모로 불리한 사건이다.

원고가 하나의 쟁점을 물고 늘어지면, 결국 질 가능성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고 대리인은 그 쟁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거대한 투망식 변론을 하고 이것저것 필요하지도 않은 증거신청을 하느라 이미 1년 반이 지나갔다.

심지어 필적 감정을 신청해 놓고 필적감정의 대상이 될 사람을 데리고 나오지도 않았다....


그리고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는 판사님은,

그런 소송대리인의 무능함을 한 차례 지적하지도 않고 수차례의 증거신청을 신청을 단호하게 기각하지 못하고 다 받아주다가,

재판부가 변경되었다. (법원 인사이동은 매년 2월에 있는데, 대개 2년 이상은 같은 재판부에 머무르지 않는다)


바뀐 판사님은 말씀하셨다.

"이게 이렇게까지 할 사건인가요??"

(판사님!!!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증거신청은 전부 기각하면서, 더 이상의 증거신청은 받아들이지 않겠노라 선언하셨다.

1년 반 동안 묵은 체증이 전부는 아니지만 절반 정도는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나도 완벽한 변호사가 아니고, 재판을 하다 보면 사소한 실수는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사건을 맡으면 최대한 쟁점을 추리고, 필요한 증거를 가려 신청해서, 신속하게 결과를 내려고 노력한다. 재판은 내가 성실하게 임하더라도 1년씩 걸리는 긴 작업이다.

원고 대리인이 저렇게 불필요하게 시간을 끌고, 재판장이 적절하게 이를 제지하지 않으면

속이 터지고 상대방 의뢰인이 안 됐다는 생각마저 든다.


제발 그만해 똥멍청이 변호사야!!


의뢰인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변호사가 좋은 변호사는 아니다.

왜냐하면 의뢰인은 법률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삼박자 중에 2박자는 내가 어쩔 수 없으니,

나라도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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