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연은 바다로 이어지고
“세상에 영원한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와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 영원히 좋아할 테니 기회를 달라고 애원조로 말했던 나에게 돌아온 대답이다. 덕분에 1고백 1차임이라는 진귀한 기록을 얻은 나였다.
다시는 저딴 인간과 마주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내 인생에서 저 재수 없는 놈을 마주할 일은 없을 거라고. 그런데 왜… 하필 가장 보기 흉한 순간에 내 눈앞에 나타난 거냐고. 팔자도 사납지!
그래, 저 인간이 내 운명을 바꿔줄 동아줄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분명 썩은 동아줄이겠지. 죽음 카드에 새겨진 해골, 굉음을 내며 무너지는 탑, 여명 아래 드러누운 사람에게 꽂힌 칼. 저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다. 내 인생에 끼어들어온 대흉 그 자체.
지금까지 혀가 안 굴러간다는 생각을 엄청나게 많이 했지만, 이번엔 진짜인 것 같다. 이러다가 말까지 더듬게 생겼네.
“너…야말로 여…긴 웬일이야!”
“기억 안 나? 내가 바다 보러 오는 거 좋아한다고 했던 거.”
맨날 오던 데라서 온 건데 그게 뭐가 문제야. 그 인간의 대답이 갈매기 울음소리처럼 날아와 귀에 꽂혔다. 문제? 그래, 아주 많다! 땅의 기운을 가까이하라는 술사 말 듣고 안 가던 바다까지 찾아왔는데 하필 널 마주치다니… 도대체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우연이냐고.
“땅의 기운을 가까이할 거면 숲이나 그런 데를 가야 했어야 하는 거 아냐? 바다는 수일 텐데, 너야말로 여길 왜 와.”
“그거야 바다도 모래가 있으니까… 설마 들었어?!”
“네 생각, 네 얼굴에 다 쓰여 있어.”
“그게 무슨-”
그러면서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저저저저저…! 볼수록 밥맛이 떨어지는 눈빛. 내가 저 인간을 대체 왜 좋아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일으켜 줘?”
“혼자 일어날 수 있거든!”
“꼴에 잘도 그렇겠다. 손 줘봐.”
“손은 무슨…”
순식간이었다. 그 인간이 나를 잡고 일으켜세운 건. 힘은 또 쓸데없이 세요….
옷에 묻은 모래를 탈탈 털어주는 와중에도 그는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아무튼, 난 바다 볼 거니까 넌 갈 길 가라.”
“나도 바다 보러 온 거야!”
“그래? 그럼 같이 보든지.”
“내가 미쳤다고 너랑 같은 공간에서…!”
“싫으면 말고.”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별 도리가 있겠는가? 돌아가는 버스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었는데.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니까 조금만 더 버티면 그만일 것이다. 나, 서이수. 이딴 위기에 굴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나저나 출출한데 뭐라도 먹으러 갈래?”
“싫다면.”
“그러면 그냥 굶는 거지.”
“너랑 밥 먹을 바엔 차라리 굶고 만다.”
“회도 별로야?”
그렇게 나는 속절없이 그 인간과 겸상하게 되었다. 신선한 광어회에 초고추장을 찍어 한 입에 삼키는 그를 보고 있자니 묘하게 짜증이 솟구쳤다. 그 인간에게 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존재겠구나, 싶어져서.
“차버린 사람 앞에서도 회가 넘어가냐?”
“맛만 있는데? 너도 회 좋아하잖아. 좀 먹어.”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건지…. 눈앞의 간장 종지를 뒤집어엎고 싶다는 충동이 올라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만에 하나 정말로 그 인간이 내 인생을 바꿔주기라도 한다면. 최대한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게 낫겠지. 애꿎은 천사채만 입에 넣고 씹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인간은 접시를 싹싹 비워댈 뿐이었다. 지치지도 않는다는 듯. 아니, 이젠 오히려 내 반응을 즐기는 걸지도 모른다.
“너 진짜 배 안 고픈 거 맞지?”
“어, 하나도 안 고파.”
“아쉽다. 한 접시 더 시키려고 했는데.”
“너 돈은 있지?”
“당연히 없지. 네가 사는 거 아니었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젠 나를 지갑으로 보려고 하는 건가? 있는 힘껏 그 인간을 째려보았다.
“…먹던 거 얹힐 것 같아.”
“그러라고 한 거야.”
할 말을 잃은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내야지, 암.
“다 먹었어? 슬슬 일어나자. 돈은 네가 내고.”
“그게 무슨…!”
“난 한 점도 안 먹었어.”
“그러지 말고 이번만큼은 네가-”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서이수, 제발 나 좀 도와줘.”
그래.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나 보자. 그 인간은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붙잡고 귓속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귀찮은 사람이 있는데 내가 좀 떼어내 달라고?”
“그래. 부탁이야.”
“미안한데 그건 네가 직접 처리해.”
뻥 차놓고 이제 와서 뭐 하는 거야, 구질구질하게.
다행히 그는 더 들러붙지 않고 꼬리를 내렸다.
아니, 내리는 듯했다.
다음 순간 나온 말에 내 귀를 의심했으니까.
그가 한 건… 눈이 돌아갈 만큼 엄청난 제안이었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계약 성립.
“…언제부터 시작하면 돼?”
“당장 오늘부터.”
그래, 오늘부터 우리는 동업자다. 그 인간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도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