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 이야기 #1

찌개

by Nope

'지겹지 않아? 소설에 찌개가 나오면 반응이 2가지로 이어지는 게. 울면서 먹어버리거나 엎어버리거나. 음식 소중한 줄 알아야 한단 말야, 모두.'

서연은 생각에 잠겼다. 찌든때 가득한 가스레인지 위에서 김치와 참치만 넣고 끓인 찌개-비슷한 괴식-이 보글보글 끓어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다.

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 독립하라는 부모님을 설득하려다가 장렬히 포기하고 악에 받쳐 단칸방을 얻은 뒤, 식사다운 식사를 한 날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라면 맛있게 끓이는 법도 모르는 서연은 대부분 배달 앱을 켜서 대충 밥을 시켜먹곤 했다. 그것마저도 귀찮아지면 그냥 굶었다. 하루 정도 배고파도 상관없다는 듯이. 생각할수록 건강을 박살내는 일이었지만 뭐 어쩌랴. 달리 선택권이 없다는데.

부모님이 서연을 본다면 분명 끌끌 혀를 찰 것이다. 서연은 그것조차도 상관없었다. 내가 집 나와서 내 맘대로 살겠다는데 간섭할 게 뭐가 있다는 말인가? 청소고 빨래고 미뤄놨다가 몰아서 해도,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소란을 피워도, 지금 가스불 위에 있는 찌개처럼 괴상한 음식이나 만들어 먹어도 잔소리를 듣지 않는 삶. 서연은 그런 삶을 갈망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런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띵동, 하는 초인종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렌즈 구멍을 내다보니 엄마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얼른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박차고 들어올 기세였다. 서연은 한숨을 쉬며 문고리를 잡았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울림으로 다가올 법한 가족이라는 말이, 어째서인지 서연에게는 하나도 달갑지 않았다.

“잘 있었니?”
의례적인 인사가 이어졌다. 날이 춥다, 감기 걸릴라, 등등 예의상 건네는 한 마디. 서연은 그 말들이 지겨웠다. 그녀가 누구인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이었는지 관심도 없었으면서. 다짜고짜 찾아와서 친한 척이라니 참 질색이었다. 용건 다 봤으면 빨리 나가세요, 같은 건방진 말들이 서연의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맴돌았다.

소파 없는 바닥에 방석이나마 들고 와서 엄마를 위한 자리를 마련한 후에도 별 일은 없었다. 아니, 다행인 걸까. 서연이 정말 우려했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언제 복학하니', '취업 준비는 잘 되어 가니' 등등. 서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이대로라면 완벽해... 하고.

그 순간. 한 마디가 서연의 뇌리를 강타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니?'

그제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엄마는 잔소리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서연이 정말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온 것이라는 점을. 양파라도 써는 것처럼 서연의 눈이 매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 한 마디에 나오려던 눈물 방울이 산산히 깨져버렸다. 부엌을 훑던 서연의 어머니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가스레인지에 이게 뭐야. 새까맣잖아. 그리고 화장실 쪽을 보면... 빨래는 잘 하고 있는 거 맞니?"

어머니의 시선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움직였다. 사정거리에 들어온 것은 거실 겸 침실, 부엌, 욕실. 그제서야 서연은 깨달았다. 끝없는 집안일의 굴레에 갇혔다는 것을.

그새 서연의 어머니는 벽 구석구석을 돌며 바퀴벌레 약을 뿌리고 있었다. 멀뚱히 서 있던 서연에게 고무장갑 한 켤레가 날아왔다.

"가만히 있지만 말고, 그릇 좀 빡빡 닦아! 병균이 입에 다- 들어가겠다."

서연은 눈물을 삼켰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였다. 눈가를 훔치던 그녀는 터덜터덜 싱크대로 걸어가 세제를 꺼냈다. 그리곤 어제 먹다 남은 라면 냄비를 닦기 시작했다.

그녀가 있는 곳은 안식처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지상에 펼쳐진 집안일 지옥이었다. 집안일을 외면하고 놀고먹은 대가.

서연은 이 일이 끝나면 다 끊인 참치김치찌개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에 하나 엄마표 요리라도 맛볼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가능할 리가 없으니까.

"박서연! 얼른!"

알았어, 엄마, 한다고... 집안일은 계속된다. 질릴 때까지,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