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이야기 #3

지각이냐 땡땡이냐,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by Nope

망했다. 벌써 8시라니…. 15분 뒤면 수학 학원 시작인데. 노미래, 너 진짜 이름값할 작정이야?

그래. 내 미래는 박살났다. 것도 완벽하게 두 쪽으로. 책가방을 메고 달려가는 것도 포기하고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순간 귓가에서 거센 바람이 일었다. 희미하게 들렸지만 분명 자전거 벨소리였다. 이 시간에 내 앞에 나타날 사람이라면 분명 이름조차도 떠올리기 싫은 걔다.

역시나 들려오는 내 이름 세 글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걔는 재촉이라도 하듯이 벨을 더 거세게 울려댔다.

"안 타고 뭐해. 8시 15분에 학원 시작이라며."
"가 봤자 뭐하게… 자기나 할 텐데. 그리고 어떻게 자전거 한 대에 둘이 타."

따가운 시선이 날아와 박혔다. 어둠 속에서도 느껴지는 한기. 또 잔소리 시작이냐… 대충 귀를 막으려는 찰나, 무언가가 머리 위에 얹혔다. 스펀지 같은 감촉으로 보아-

"헬멧은 왜?"
"다칠까 봐 걱정되는 거잖아. 헬멧 쓰고 타면 괜찮을 거야. 나 꽉 잡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학원에 가자는 말은 영 아니잖아. 자전거에 발이 통 올라가지지 않았다. 역시나 걔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같이 스터디카페나 갈래?"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하늘이 두 쪽 났나? 모범생 중 모범생인 걔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학원 같은 건 당연히 빼먹으면 안 되는…

"네 얼굴에 야광으로 쓰여 있다고. '나 학원 가기 싫어요'라고. 학원에서 자나, 스카에서 자나 그게 그거잖아. 얼른 따라와. 내가 깨워줄 테니까."
"깨워준답시고 저번처럼 음료수 캔 들이대지나 마. 오글거린다고."
"그거야 원 플러스 원이었으니까… 아무튼. 탈 거야, 말 거야?"
"나 공부하기 싫은데…"
"옆에서 내가 문제 푸는 거 구경이나 해. 조는 것보단 그게 천 배는 더 나을 거야."

맞는 말이다. 선생님 목소리보다는 걔가 공부하는 소리가 백만 배는 더 듣기 좋을 터.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어두워서 앞이 잘 안 보였기에 망정이지, 훤한 대낮이었다면…. 천하의 노미래 자존심에 금이 와장창 가는 거다.

자전거 한 대에 둘이 타는 건 역시나 너무 어려웠다. 차라리 오토바이 한 대에 두 명이 타는 거라면 모를까. 이게 다 낭만이라고는 모르는 모범생 강석훈 때문이다. …이름을 말해버렸네, 아무튼.

살기 위해서는 걔를 꽉 잡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선선한 저녁 공기를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기분은 상쾌하긴 개뿔, 손에 땀이 나서 미치는 줄 알았다. 내가 그런 시츄에이션을 좋아할 거라고 믿은 건가? 강석훈 너 진짜 제정신이냐고!

불행 중 다행인 건 자전거에 탄 뒤로 아무 대화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말없이 핸들만 열심히 꺾는 걔, 그리고 헬멧을 뒤집어쓴 채로 걔를 꽉 잡는 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우리가 커플이라고 믿을 것만 같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영원처럼 이어질 것 같은 시간이 끝났다. 자전거가 멈춰선 곳은 어느 상가 앞. 생전 처음 보는 동네였지만, 걔는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자전거를 댔다.

"내려."
"여기가 어딘데."
"보면 몰라? 당연히 스카지."
"…저 허름한 데가? 영업하는 거 맞아?"
"나도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건 아니야. 그냥 여기가 제일 싸다 보니까."

안은 생각보다 깨끗할 거야, 걔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짓했다. 그나저나 여기… 엘리베이터도 없는데. 설마 계단으로 올라가라는 거야?

"당연하지. 운동도 되고 좋잖아. 공부는 체력 싸움이야."
"난 아무하고도 싸우고 싶지 않거든."
"그냥 비유야."
"안다고!"

일부러 쿵쿵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랐다. 어차피 여기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조금 시끄럽게 해도 되겠지. 걔는 벌써 저만치에서 앞서가고 있었다. 저 놀라운 체력. 운동장을 마구 뛰어다닐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얼마나 올랐을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난간을 잡지 않고는 몸을 가누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하라는 운동은 안 하고 침대와 한몸이 되어서 산 업보인 걸까.

"노미래! 빨리 와!"
"내가… 빨리… 올… 형편으로… 보여?"
"체력하고는. 얼른 와서 보기나 해."
"도대체… 뭔데?"

평소처럼 고저가 없는 걔의 목소리. 놀란 건지, 화난 건지, 기쁜 건지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직접 눈으로 보는 수밖에. 아니나다를까 '스카' 문 앞에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여…."
"플래시 켜면 되잖아."
"나도… 안다고…."

얜 내가 헉헉대는 걸 진짜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거야? 뭘 했는지 몰라도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간신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손전등을 켰다.
그리고 경악했다. 종이에 적힌 한 문장 때문에.
'개인 사정으로 임시 휴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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