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만두는 익혀서 먹어야지
매점 빵을 씹고 있던 내가 대뜸 들은 한 마디.
“노미래. 너 만두 닮았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불타는 찐빵이라 할 순 없잖아.”
생각나는 게 고작 그런 표현밖에 없냐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름도 떠올리기 싫은 걔는 내 볼을 쿡쿡 찔러댈 뿐이었다. 이거 은근히 기분 나쁜데.
저번에 학교 가기 귀찮다는 핑계로 꾀병을 거하게 부리고 난 후, 걔의 태도가 이상해졌다. 매점 빵을 종류별로 사오지 않나, 감기 걸리지 말라고 핫팩을 건네지를 않나.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것도 잠시. 얼마 안 가 걔는 평소 모습대로 돌아왔다. 90도로 각이 잡힌 자기 교복 와이셔츠와 여기저기 구겨진 자국이 있는 내 블라우스를 비교하면서 잔소리를 늘어놓는 건 예사였다. 교복은 학생의 얼굴이다, 너는 나갈 때 세수도 안 하냐, 어쩌고저쩌고.
더 답답한 게 뭔지 아는가? 내가 걔한테 매일 들들 볶인다고 털어놓아 봤자 아무도 믿지 않을 거라는 점.
아무도 안 궁금하겠지만, 걔는 학교에서는 결석 한 번 한 적 없는 모범생으로 통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책 더미에만 파묻혀 지내느라 남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우등생으로.
솔직히 말해서 걔가 선생님 말고 누군가랑 대화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궁금하다는 거지, 왜 하필 나인지.
하지만 물어볼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분명 이럴 테니까.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노미래 네가 제일 칠칠치 못하니까.’
그러면서 또 잘난 척을 늘어놓겠지. 미래 넌 나 아니면 안 돼, 저번 전복죽도 ‘나라서’ 사준 거야, 공부하느라 바쁜 전교 1등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너랑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줄 알아. 상상만 해도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진다.
하… 모르겠다. 뭐 어쩌라는 건지. 친구라고는 걔 하나밖에 없는 나도, 어울릴 사람이라곤 나 하나밖에 없을 걔도 처량하기 짝이 없다….
“…미래.”
뭐가. 창문 보면서 딴청 피우는 것도 안 되냐?
“노미래!”
“왜?”
“또 멍 때렸어? 만두 식는다고. 너 고기만두 아니면 안 먹잖아.”
아, 그랬지. 분명 여긴 운동장 구석 벤치였고, 나는 걔한테 손목을 붙잡혀서 매점에 다녀온 참이었다. 이유인즉 다음과 같았다. ‘노미래. 내 위장에 차마 콩밥, 콩자반, 가지무침, 코다리양념조림을 집어넣을 수 없어. 그러니까 같이 가자.’
입도 짧지, 참…. 주는 대로 먹기나 할 것이지. 그래놓고 은근슬쩍 내 지갑을 노릴 걸 다 안다. 자기는 용돈 없다면서. 네가 그 돈을 다 쓸데없는 데 쓰니까 그렇지.
“야! 책 사는 게 뭐가 어때서?”
“네 취향 되게 독특하잖아. 벚꽃이 떨어지는 표지에, 무슨 교복 입은 여자애랑 남자애가 손 잡고 있고… 작가 이름은 죄다 일본어인 거.”
“나도 낭만적인 사랑이 하고 싶어서 그렇다, 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무표정할 줄만 알았던 걔가 이렇게 격하게 반응하는 걸 보면 항상 입꼬리가 올라가곤 한다.
“근데 의외다, 너. 난 네가 문제집 같은 것만 좋아할 줄 알았어. 수학책이랑 데이트하고.”
“미안한데 나 그런 사람 아니다. 대학원? 가라고 해도 절대 안 갈 거야.”
“아, 알지 알지. 너희 집에 가면 깔끔한 장난감 컬렉션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하는데.”
“노미래. 장난감이 아니라 피규어라고.”
“알았어, 알았어.”
걔가 슬며시 만두 봉지를 들이밀었다. 내 입을 다물게 할 작정이었나 보다. 다시 봉지를 걔 쪽으로 돌려주었다.
“만두 식겠다. 얼른 먹어.”
“뜨거울 때 먹으면 입 데어.”
“나보고는 만두 식기 전에 먹으라며?”
“…그랬지.”
할 수 없이 만두를 꺼내서 씹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거… 속이 차갑다. 일부러 그런 거 아냐?
“야. 너 일부러 전자레인지에 덜 돌린 거지?”
“뭐가?”
“만두. 네가 먹어봐. 속이 덜 익었잖아?”
“그런가? 난 아삭아삭한 걸 좋아해서. 너도 좋아할 줄 알았지.”
넌 역시 입이 짧다 못해 식성이 요상하구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시 돌리고 올게. 잠깐만.”
“굳이 그럴 필요는-”
“넌 움직이지 마. 괜히 갔다가 자리 뺏겨.”
걔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하얀색 운동화 밑창 아래서 흙먼지가 이는 것 같았다. 목적지는 뻔했다. 당연히 매점이겠지.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 걔가 왜 하필 붐비는 공간 한복판으로 뛰어드나 싶었지만, 저번 일을 생각하면 크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급식 메뉴가 영 아니어서 맛이 갔을지도.
얼마나 지났을까. 교복을 입은 형체가 가까워졌다. 엄청난 속도였다. 체육대회 계주에 나가도 될 법한.
헉헉대는 소리에 섞여 간간히 흘러나오는 말. 간신히 해독할 수 있었다.
“…만두…데워, 왔어.”
봉지를 잡은 손끝과 손끝이 살짝 스쳤다. 따뜻했다.
어쩌면… 아니, 뭐라는 거야. 당연히 만두가 더 뜨겁겠지. 심장 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괜찮아?”
걔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 안 빼앗겨서 다행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그런데 달렸으면 만두가 아니라… 아이스크림 같은 걸 먹어야 하는 거 아냐?”
“글쎄… 오늘은-”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을 듣고,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맞아, 네 말. 만두는 다음에 먹을게. 그러니까 이거네 거야. 네가 다 먹어.”
만두 킬러인 걔가 웬일이래. 아, 역시 달리기 때문인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운동장에서 묻힌 흙먼지는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옷을 탈탈 털고 자리에 앉는 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차하면 만두 하나를 양보할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