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카메라 울렁증 말기입니다
“자, 카메라 보고, 조금 더 자연스럽게. 하나, 둘, 셋!”
그래서 그 ‘자연스럽게’의 기준이 뭔데요. 나뭇가지에 기대 서기라도 하라고요? 아니면 철쭉 덤불 사이로 들어가서 손으로 꽃받침이라도 만들라는 걸까요. 제가 꽃이라도 되는 것마냥?
도대체 무슨 요구를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현장학습 가는 날에도, 졸업사진 찍는 날에도 땡땡이치고 놀러 나갔더니만… 이게 업보가 되어서 돌아올 줄이야.
한숨이 절로 나왔다. 불과 몇 시간 전, 교무실에 끌려가서 담임에게 들었던 말이 선명하게 귓가를 때렸다.
“이경아, 너만 전교생 중 유일하게 사진이 없어. 학교가 싫고 친구 관계가 힘든 건 이해하겠는데, 최소한 이 학교에 다녔다는 흔적은 남겨야 하지 않겠니?”
흔적조차도 남기기 싫다면 어쩔 건데요. 가장 빛나는 청춘을 이렇게 학교라는 감옥에 앉아…. 아, 너무 구닥다리 비유였나. 어쨌든 그런 말들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혀끝에서 배회했다. 하지만 최대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잘못 내뱉었다가 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지나가던 학생주임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몇 마디를 던졌다.
“최이경. 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 졸업 앨범에 예쁘게 사진 남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줄 알아.”
직감했다. 담임이라면 몰라도 학주라면 끝장이다. 여차하면 선생님 말을 안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봉사활동 을 60시간이나 시킬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무조건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나는. 암울한 앞날이 눈에 선했다. 그래, 바로 지금 같은 상황이!
모두가 떠난 방과 후 학교에 남아서 사진을 찍으라니. 그것도 운동장 구석에 조그맣게 꾸려진 화단과 가로수길을 배경으로. 내가 옛날 사람도 아니고…….
가뜩이나 나, 카메라 울렁증이 있단 말이다. 그래서인지 독사진 촬영은 너무도 큰 시련이었다. 생각만 해도 표정이 어색하게 굳고 몸이 뻣뻣하게 얼어붙을 것만 상황에서 뭘 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야속하기도 하지. 시간은 이미 흘러버렸고, 나는 눈치도 못 챈 사이에 사진사에게 끌려와 교정 속 자연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람.
사람은 너무 마주하기 힘든 시련을 겪으면 자동으로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내 상태가 딱 그랬다. 아니, 내가 정말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게 맞을까. 쉴새없이 쏟아지는 셔터 소리 때문에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
억지로 눈을 크게 뜨고 누군가를 노려볼 것 같은 표정을 짓다가도, 너무 인상이 험악해 보인다는 말에 자동으로 입꼬리를 올렸다가, 조금 더 자연스럽게 웃어 보라는 말에 인상을 펴는 나. 이런 몰골을 보고 있는 사진사는 어떤 기분일까. 답답해서 미칠 지경은 아닐까.
말했잖아요. 그래서 사진 같은 건 찍고 싶지 않다고요…. 내가 이 학교에 발이 묶여서, 숨기기도 힘들 정도로 끔찍한 청춘을 보냈다는 기록을 길이길이 남길 생각은 없다고.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이 맞아요. 맞는데…!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다. 나는 충분히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뭘 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때. 무어라 외치는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사진사였다.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좋아, 그 각도. 표정 풀고 자연스럽게. 하나, 둘, 셋!”
셔터가 눌린다. 그 소리를 신호로 표정이 굳는다. 아무래도 카메라 울렁증은 영원한 내 불치병으로 남으려는 모양이다. 학교는 진작에 끝났는데, 언제 집에 갈 수 있으려나.
어느새 날이 어둑해졌다. 플래시가 터질 것만 같다. 정말로 이대로 남겨서 사진을 찍으려는 걸까? 밖에서 더 건질 사진이 없으니 실내에 데려가서?
상상만 해도 정신이 아득하다. 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아니오’.
초저녁 공기가 차갑다. 그래, 내 표정처럼. 아주 긴 밤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