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는 서사다
인물 관계 서사
어렸을 때, 국어 시간에 흔히 접했던 작품들을 지금 다시 읽어보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의무적으로 읽어야 했고, 공부하는 작품으로 접해서 그랬을까요? 작품에 몰입하여 읽기보단 늘 분석하는 방식으로 글을 읽었습니다. '수능에 나올 내용은 이런 거야'라며 선생님의 가르침이 귓가에 아직도 아른거립니다.
그런데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장편에 도전하고 단편을 쓰기 시작하면서 국어 시간에 접했던 작품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배운 모든 작품들은 어마어마한 작품이었구나.
학생이나 독자 입장이 아닌 글 쓰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작품들은 느낌이 너무나도 다릅니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요?
작품의 서사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을 병행하기 시작하며 독서를 하는 시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작품에 대한 감상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할 수 없습니다. 그에 따라 작품에 대한 해석도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따라서 작품의 감상을 천편일률적으로 획일화시키는 건 무모하면서 동시에 불가능한 도전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믿고 있는 원칙 하나는 바로 '내가 읽으면서 느꼈다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느낄 확률이 높다'입니다. 작품을 읽으며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해 슬픔을 느낀 장면이 있다면 다른 사람도 저와 같이 그 장편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낄 확률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식으로 독자에게 특정 감정을 일으킬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도구가 바로 '서사'입니다. 권선징악이 작품의 주제라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어떤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주인공이 억울한 누명을 쓰는 장면이 등장한다면 후반부에 악인을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장면이 나와야 합니다.
권선징악 서사를 사용하기로 했다면 착한 자는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 스토리로 진행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해당 작품의 개연성과 핍진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스토리에서 작가와 독자 사이에 암묵적인 룰을 선사하는 방식이 바로 스토리 서사입니다.
서사의 구성 요소
1. 주인공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요 캐릭터이자 독자들이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하는 인물. 보통 이야기의 화자와 주인공이 일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가끔 화자와 이야기의 주인공이 불일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 미국 소설 '위대한 개츠비')
2. 주제
작품이 탐구하려는 중심적인 생각이나 문제입니다. 주제는 작품에 방향성을 제공하며, 독자에게 통찰력과 깊이를 부여합니다.
3. 설정과 배경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간, 장소, 문화적 배경, 주인공의 직업 등은 작품의 분위기와 주제를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입니다.
4. 욕망(목표)
자동차 기종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연료가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갖는 욕망(목표)은 자동차의 연료로서 스토리가 결말까지 나아갈 수 있는 힘이자 원동력입니다. 당연하게도 주인공의 욕망(목표)이 크면 클수록 결말까지 힘 있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5. 전개(플롯)
서사는 일정한 지향성을 가집니다. 이는 스토리의 목표와 진행 방향을 의미하며, 이야기가 어떤 목적을 갖고 발전해 나가는지를 보여줍니다.
6. 시련(장애물)
주인공은 자신의 욕망(목표)을 달성하려 노력하지만(이야기의 전개), 필연적으로 시련(장애물)과 마주합니다. 시련이 중요한 이유는 주인공이 성장하는 발판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겪게 되는 시련은 작품의 주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야 개연성과 핍진성에 오류가 생기지 않습니다.
7. 결말
작품에서 캐릭터가 맞이하는 결말입니다. 보편적으로 해피엔딩, 새드엔딩, 열린 엔딩이 있으며 메리배드엔딩이라고 하여 작품 속 주인공은 행복한 결말이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불행해 보이는 엔딩을 일컫습니다.
작품 내에서 각 서사는 서로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이 결말에 가서 서로를 이해하게 될 수도 있고, 혹은 아예 절연하는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서사는 반드시 작품의 결말과 일치할 필요는 없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에 드러난 서사 종류
1. 가족 서사
평생을 장돌배기로 나귀 이외에는 어떤 가족도 없던 허 생원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 자신에게 아들인 동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2. 도시 서사
평창군 봉평면의 농촌 지역은 제조업과 무관하고, 산업화의 영향이 적은 곳입니다. 이는 작품 내 인물들의 삶과 가치관에 영향을 주며, 그들과 함께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3. 사랑 서사
허 생원과 성 서방네 처녀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첫사랑의 순수함, 갈망 그리고 삶의 진실을 깨닫게 하며 그사이의 감정 과정 및 심리를 탐구합니다.
4. 사회 서사
작품은 1930년대 한국의 사회적 문제와 가난한 일상을 이해력 있게 보여줍니다. 농촌 생활의 어려움과 경제적인 억압을 묘사하며, 부유한 지주와 가난한 농부들의 삶의 격차를 보여줍니다.
5. 성장 서사
허 생원의 성장을 통해 그의 인격과 가치관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시니컬한 성격과 방랑하는 삶을 정리하고 가족을 위해 삶을 희생하려는 의지를 보이며 작품은 끝이 납니다.
6. 역사적 서사
작품은 식민지 시절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일본의 강제노역 정책, 식민지 시대 주민들의 삶 등 역사적 상황이 작품에 녹아 있습니다.
7. 자연 서사
메밀꽃과 관련된 농촌 경치, 계절의 변화, 일상생활과 밀접한 자연적 요소들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자연과 인간의 나아감, 서사의 시적인 조음을 상상하게 합니다.
8. 청춘 서사
허 생원의 청춘기를 다루면서 그가 겪은 좌절과 상실, 그리고 다양한 인간관계와 감정의 시행착오가 그려집니다. 이러한 경험은 최종적으로 그를 성장시키고 자기 인식을 높입니다.
성장 서사
기: 주인공의 현재 상황과 성격, 그리고 주변 환경이 소개됩니다. 이 시점에서는 주인공이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 상황에 처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주인공이 성장의 과정에 들어서게 되는 동기가 됩니다.
승: 서사가 전개되면서 주인공은 도전과 실패, 그리고 그에 따른 성장의 기회를 만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거나 어려움을 겪게 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과정에서 성장을 위한 배움과 경험이 축적됩니다.
전: 주인공이 겪은 일련의 경험들이 모여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게 됩니다. 이 때문 때 주인공의 성장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그에 따른 변화와 갈등 해결이 진행됩니다. 주인공은 이전보다 더 강하고 성숙해진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결: 마지막으로 주인공은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면서 스토리가 마무리되는 단계입니다. 성장의 과정을 거친 후, 주인공은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되고 새로운 삶의 시작을 맞이하게 됩니다.
메밀꽃 필 무렵 인물 서사
1. 친구 관계 중 가족처럼 친한 친구
허 생원과 조 선달의 관계는 오랫동안 함께 일한 지인이자 친구입니다. 서로의 삶과 가치를 이해하며 서로에게 의지해 가는 모습을 통해 작품에서 농촌 지역의 사회적 유대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온 동반자적 친구의 우정을 보여줍니다.
2. 연인 관계: 첫사랑, 비밀스러운 관계, 신분차이, 운명적 관계, 재회하는 연인, 베이비메신저
허 생원과 성 서방네 처녀의 관계는 연인 관계입니다. 여자와의 인연은 전혀 없던 허 생원에게 성 서방네 처녀는 운명적이고 아련한 부분으로서 작품의 중요한 서사입니다. 이들의 관계는 시간과 거리를 이겨내는 강인함과 은밀함을 표현하며, 인연에 대한 염원과 아쉬움을 드러냅니다.
3. 사회관계 중 라이벌 관계
4. 혈연관계 중 부자 관계 - 잃어버린 가족 찾기
동이와 허 생원 사이에서는 라이벌 관계와 부자 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허 생원은 동이의 첫 인생을 오해하며 그의 뺨을 때립니다. 하지만 그와 동행하며 동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감정 변화와 상황 판단(왼손잡이)이 동이와 허 생원이 부자 관계라는 걸 드러냅니다.
5. 반려 동물 중 동반자적 관계
허 생원은 나귀와의 관계를 통해 인간과 동물 사이의 유대를 드러냅니다. 나귀는 허 생원에게 삶을 살아가는 도구뿐만 아니라, 그의 밝음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친구이자 동반자입니다. 이로 인해 작품은 인간 감정의 깊이를 탐구할 수 있는 소중한 교감을 제공합니다.
작품은 주인공이 스토리에서 사건과 주변 인물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성장하는 내용입니다. 외적 목표는 실패해도 주인공이 잘못된 믿음에서 탈출했다면 해피엔딩이지만 외적 목표는 성공했더라도 잘못된 믿음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그게 더 강화되었다면 새드엔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영웅의 탄생 스토리이며 후자는 악인의 탄생 스토리가 됩니다. 대표적인 악인의 탄생 스토리는 조커입니다. 그가 자신이 가진 잘못된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할 수밖에 없는 일련의 사건들이 터지며 결국, 그는 고담시를 위험에 빠뜨리는 악인으로 탄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