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PART 1. 완벽주의자의 우울

by 홍사라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마음이 가난한 밤이야


네가 한동안 즐겨 들었던 노래의 첫 소절이야.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노래지.


한동안 너는 지나간 일들이 매일 밤 꿈속에서 생생히 재현되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어. 수면제나 항우울제를 바꿔도 악몽은 끝없이 네 밤을 채웠다.


지금 돌이켜 보면 맞는 약을 찾아가는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부작용 중 하나였지만, 당시의 네겐 그렇지 않았어.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한 채 과거를 하나하나 곱씹고 자신에게 채찍질을 일삼던 네가 기억나. 악몽이 가리키는 과거, 우울증이라는 병, 모든 게 완벽하지 않은 자신에게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했던 너.


'내가 조금 더 완벽했더라면'

'내가 그때 확실히 말했다면'

'내가 똑 부러지게 행동했다면'

'내가 어떻게든 참았더라면'


자신을 탓하는 온갖 말들이 머릿속을 채웠어. 맞이하는 모든 일들을 과거의 실수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생각했지. 그로 인해 느껴지는 괴로운 감정들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어. 모든 게 인과응보 같았으니까.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니까. 표현해 봤자 뭐 하겠어, 눈물 자국만 더 깊어질 뿐인데. 탓해봤자 달라질까, 악몽만 더 길어질 텐데.


꿈의 해상도가 점점 더 선명해지고, 몰입도가 올라갔어. 하루 중 남는 시간을 대부분 자는 걸로 보냈지만, 그것이 네게 휴식을 가져다주진 않았어. 잠에 들면 상처가 벌어지고, 꿈에서 깨어나면 아픔에 지치는 일상이 반복됐지. 차라리 우울증이라는 걸 몰랐을 때가 더 나았던 것 같았어. 그 반복이 점점 너를 바닥으로 몰고 갔어. 잠들지도, 무언가를 하지도 못한 채 그저 침대에 늘어져 있을 때가 많아졌고, 그 침전된 상태가 자신답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아니, 하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어느 순간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어.






그러다 그 노래를 듣게 된 거야. 병원에 가기 위해 올라탄 마을버스에서 흘러나온 노래였거든. 흔한 우연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네 귀에는 설계된 운명처럼 들렸어.


이른 저녁, 해가 빠르게 기울고 난 탓에 창 밖은 조명으로 반짝이고 있었지. 어두워진 창문 밖의 색채와 버스 안의 조명이 대비되면서 네 얼굴이 창문에 잔상으로 떠오른 순간에 가사가 선명하게 박혔어.


거울 속에 마주친 얼굴이 어색해서
습관처럼 조용히 눈을 감아
밤이 되면 서둘러 내일로 가고 싶어
수많은 소원 아래 매일 다른 꿈을 꾸던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


남들 앞에서는, 적어도 바깥에서는 울고 싶지 않았음에도 참지 못하고 울어버리고 말았지. 평소라면 너를 이상하게 보는 시선을 의식하며 운 적 없는 사람처럼 보이려 빠르게 눈물을 훔쳐냈겠지만, 그때의 너는 그러지 않았어. 그저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지. 버스 안에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너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어.


병원으로 향하는 거리의 풍경을 그날에서야 제대로 보았어. 어두운 밤에도 저마다의 불빛 덕에 빛나는 거리가, 세상의 풍경이 거기에 있었지. 숱하게 병원을 오가면서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 예전부터 거기에 머물고 있었던 것, 그러나 마주 본 적 없었던 풍경이 스치고 있었어.






어쩌면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아픔과 기억은, 창문 밖으로 스쳐간 풍경을 닮아 있는지도 몰라. 과거의 아픔과 상처는 우리 주변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아도 결국 언젠가는 스쳐 지나가거든.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지나가고 나면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는 풍경처럼.


그날, 너도 깨달았어. 벌어졌던 일들은 창문 밖으로 스쳐간 수많은 풍경의 일부라는 사실.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것만은 아닐 거라는 것.


그리고 그날, 너는 결심했어. 따라오지 않는 것은 스쳐간 자리에 그대로 두기로. 굳이 과거를 끌어와 곱씹고 들여다보고 상처받는 짓은 하지 않기로. 대신 아물지 않은 채 스쳐가는 상처도 있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과거는 삶을 견뎌 온 흔적일 뿐, 후회에 얽매이는 대신 후회 없이 살아가는 데 집중하기로 한 거야.


그렇게 너는 아주 오래간만에 꿈을 꾸지 않고 잠을 잘 수 있게 됐어.


우리의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갈 거야. 그 시간을 견디다 보면 기어이 아물지 않는 기억들이 불현듯 우리를 시험하려 들겠지. 또다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몰라. 밤이 찾아오면 어둠이 따라오는 것처럼.


하지만 기억하자, 어두울 수록 빛은 더 선명해진다는 걸. 어떤 어둠도 빛을 끝내 숨기지 못해.


우연히 듣게 된 그 노래처럼, 창문 밖의 반짝이는 야경처럼, 너 자신을 잃지 않게 만드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거야. 지금의 어둠과 아픔도, 결국 스쳐 지나가는 풍경처럼 언젠가 우리에게서 멀어질 거야.


그래, 이쯤에서 네가 한동안 즐겨 들었던 그 노래가 어떻게 끝나는지도 알려줄게.


부디 어둠 속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휩쓸려 길을 잃어도 자유로와
더 이상 날 가두는 어둠에 눈감지 않아
두 번 다시 날 모른 척하지 않아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 아이유 <아이와 나의 바다> 들으러 가기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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