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완벽주의자의 우울
우울증을 진단받은 날부터 치료를 시작했어. 그리고 1년을 넘긴 지금, 너는 살아있다.
너의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 지옥 같은 하루가 유독 견디기 버거웠던 날.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오로지 네 탓인 것 같았던 그날, 너는 결국 스스로를 매달았지. 밑바닥에서 확인한 마음과 영혼은 너무나도 가난했기에. 이럴 바엔 차라리 그만두고 싶다는 울부짖음이 끝내 너를 삼켜버려서.
아이러니하게도 육신의 무게가 너를 살렸어. 그날 너는 멀티탭의 긴 전선줄을 목에 감고 그 끝을 벽장에 연결해 단단히 묶고 올라섰어. 문제는 벽장이었다. 벽장의 옷걸이가 네 몸무게를 견딜 만큼 튼튼하지 않았거든.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단번에 끝나지 않았지. 죽는 게 사는 것보다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땐, 실패한 후였어.
너는 절망했다. 무너진 옷더미 사이에 드러누운 채 소리 내 울었어. 막막함이 숨통을 조였어. 살아있다는 절망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티 낼 수 없는 질문이 고개를 들었어.
너는 다음 날 연차를 내고 당일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무작정 찾아갔지. 가장 먼저 한 말은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하고 싶다"는 거였고.
앞선 에피소드에서 말했듯 넌 네 상태를 객관적으로 알고 싶었어. 수도 없이 노력을 해도 돌아오는 패배감과 절망감 속에서 지쳐 있었거든. 그 원인이 멘탈 약하고 어리숙한 너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너는 자신이 조금 더 완벽했더라면, 더 노력했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그래서 자살이 하고 싶은 거라고, 도망치고 싶은 거라고 믿었어. 병원에서 그런 너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진단해 줄 거라고 판단한 거야. 예를 들면 "당신 멘탈이 약해서 그렇습니다. 변명 말고 노력하면서 살아가세요. 징징대지 마시고요." 같은 말로 말이야.
의사는 검사 끝에 너의 상태를 우울증이라고 진단했어. 자살 사고가 동반된 심각한 단계의 우울증과 불안 장애. 그 진단 속에는 네가 들을 거라고 기대했던 말은 하나도 없었어. 적어도 네가 우울증 진단을 받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거든.
진단을 받은 날부터 알약을 삼켜야 했어. 무언가를 먹는다는 건 살기 위한 행위지만, 당시의 네게 그건 죽고 싶다는 소망을 삼키는 일이었지. 부족한 자신을 증명하려 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할까. 너는 약을 삼키면서도 매일 스스로를 비난했다.
"감정을 핑계 삼아 도망치려는 거잖아. 결국은 도망치는 거야. 마주 보기 싫은 주제에 변명은."
늘 그런 식이었어. 이어지는 비난 뒤에 남는 건 허무함, 마음속 답 없는 의문.
"난 왜 살아 있는 거지?"
그렇게 시작한 치료가 1년이 됐어. 여전히 약을 삼키고 스스로를 탓하는 목소리와 싸우며 살아가고 있어. 삶에 대한 의문도, 이따금 차오르는 허무함도 여전해.
그런데, 시간은 많은 걸 바꿔 놓았어.
열 알을 훌쩍 넘겼던 약이 절반이 되더니, 이제는 그것의 절반도 안 되는 세 알 수준으로 줄었어. 죽고 싶다는 소망 대신 하루를 견딜 힘을 삼키는 날이 많아졌지. 뜬 눈으로 보내는 밤 대신 책과 음악에 마음을 기대는 시간이 늘었고, 저녁의 외로움에 무릎을 꿇을 바엔 외로움이 주는 고독과 함께 춤을 출 수 있게 됐어.
어느 순간 옷장은 새 옷으로 채워졌어. 묵혀둔 책의 먼지를 털어 햇살 아래에 들고나갈 수 있게 됐지.
그리고 이제는 그때의 너에게 이 글을 쓰고 있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주하는 일이 이제는 두렵지 않거든.
물론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어. 여전히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버릇.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라고, '내가 먼저 배려하고, 내가 더 참아야 한다'는 습관 같은 잣대. 칼날을 목에 들이밀 듯 살아가는 방식. 그건 하루아침에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더라.
그래서 나는 그걸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어.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성격, 그로 인해 얻은 흉터까지도 모두 다 나라는 거. 버티고 버티다 보면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더라. 생각보다 쉽게, 의외로 괜찮게.
네게도 언젠가 그날이 올 거야. 그리고 그날, 너는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야. 아무리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대도 깎이지 않는 무언가가, 증명이나 의지 너머에 '살아 있는 너'라는 원동력이 네 안에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될 거야.
한때 너는 우울증 치료를 받는 시간이 너를 망칠 거라고 생각했어. 먼저 앞서 나간 이들에 비해 뒤처져 있게 될 거라고. 이게 패배자의 삶이라고.
언젠가 알게 될 거야. 그렇지 않다는 걸. 그 시간이 너를 단단하게 만들고, 너를 버티게 하고, 결국 살게 할 테니. 살아갈 이유가 보이지 않던 날에도 죽지 않기 위해 살며 버틴 너를, 누가 감히 패배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니, 부디 살아갈 이유를 알 수 없는 날에도 포기하지 않기를.
살아남는 것, 언젠가 그게 네가 가장 잘하는 일이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