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완벽주의자의 우울
너는 요즘도 가끔 죽음을 생각하는 것 같더라. 하지만 이뤄진 적은 없었지. 인간의 목숨이란 질기고 삶에 대한 본능은 피보다 진하니까. 그 질기고 진한 것들을 이겨낼 만큼 너 자신이 독하지도 강하지 못하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으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를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래도 감히 나는, 네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해주고 싶어.
그래, 오래 전의 너, 그때의 나에게 들려 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
너는 죽음 이후에 대해서도 자주 상상하곤 했었지. 너의 장례식, 네 영정 사진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 같은 거. 하지만 실현된 적은 없었지. 세상이 너의 빈자리를 언제든 맞이할 수 있도록 신변정리를 이미 해두었지만, 너는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눈을 떴고 어제와 같은 하루를 견디며 살았어.
소위 말하는 극단적인 상상, 그걸 행동으로 옮긴 적 없는 이유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 너는 스스로를 겁쟁이로 여겨 왔잖아. 패배자이고 실패자라서, 그래서 죽는 것 하나 못하는 겁쟁이라고 말이야.
그런데 잘못 알고 있었던 거야.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야. 네가 살아 있는 건, 빌어먹을 완벽주의자였기 때문이야. 흠 없는 죽음을 맞이하면 좋겠지만, 이 세상에 흔적 없는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았기에.
불확실한 삶 가운데 죽음만이라도 완벽하게 맞이하고 싶었던 너는 상처도, 민폐도,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사라질 방법을 찾고 있었지. 그러나 존재를 완벽하게 지운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지. 그래서 너는 결국 어제 같은 오늘을 그저 버텨낸 거야.
그래, 그런 이유로 완벽한 죽음을 상상만 해 온 널 알아. 네가 지금 실천 중인 유일한 완벽은, 아이러니하게도, 살아 있는 완벽이야. 의사의 복약지시를 따르며 사는 것. 정해진 시간에 알약을 삼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것. 어느 순간부터인가 약물 부작용이 생활의 일부가 되었지만 너는 그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 불편하긴 하지만, 불안하지는 않았으니까.
주치의는 언제나 네게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해. 의사에게는 처방이겠지만 네 귀에는 뻔한 위로에 불과한 그 말을, 너는 가슴에 품었다가 곧장 토해내. 플라세보 효과조차 발생시키지 못하는 그 말들은, 한 끝 차이로 거룩했다가 곧 거북해져. 차갑게 식은 네 마음엔 지나치게 따듯해서, 늘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지.
너는 스스로 완벽주의자 따위가 아니라고 부정해 왔지. 하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돼. 네가 누구보다 자신에게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이었다는 걸. 애초에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얄궂은 진실을 받아들일 때가 온 거야.
그래, 쉽지 않지? 알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거야. 최소한 네가 더 이상 자신을 그렇게 엄격히 대하지 않게 될 때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겠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잖아. 어느 집단에서나 분위기를 밝히는 사람, 그게 너였으니까. 자처하지 않아도 넌 어디에서나 자연스레 햇살이 되곤 했으니까. 그건 주어진 사명 같았고, 어쩌면 운명 같은 성정이기도 했어.
너를 편하게 여기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지.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렵지 않았고, 연애도 대체로 순조로웠어. 외로움 따위는 느낄 새조차 없었고.
그러는 동안 네 감정과 욕구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었지. 사실은 너 자신을 희생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는 사실도, 억누르고, 채찍질하고, 인정을 받는 것으로 모든 걸 가까스로 유지해 왔다는 것도 까마득히 몰랐지.
넌 사람들 앞에서는 늘 밝은 얼굴을 보였지. 이야기를 잘 나누고, 쉽게 웃고, 유쾌한 그 자아. 하지만 혼자가 되면 달라졌어. 파도처럼 밀려드는 피로감이 널 잠식했지. 그 피로감은 하루하루 다른 얼굴로 찾아왔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공허로, 잠들지 못하는 새벽으로. 응어리진 오열로, 또 어떤 날은 소리 없는 눈물로.
그 낯선 증상이 바이러스처럼 네 삶을 장악했어. 그제야 알았지. 모든 게 단순한 피로감이 아니었단 걸.
어느 날, 사무실 안에서 가슴이 뻐근하게 조여왔지. 미치도록 두근거리는 심장, 까마득한 공포, 그리고 죽을 것 같다는 압박감. 그 감각은 5분쯤 지나 사라졌지만, 일시적인 게 아니었어. 그 후로도 계속 널 덮쳤으니까. 그래, 그건 피로가 아닌 우울, 지독한 절망이었어.
그런데 너는 그 우울을 알아차리자마자 스스로를 멘탈 약한 패자라고 단정 짓더라. 그 감정을 숨기고 견디면 나아질 거라며 눌러뒀지. 모든 걸 그저 지나가는 폭풍우, 잠깐 스쳐가는 바람으로 재단해 버렸어.
결국엔 그 우울이 죽음의 얼굴을 하고 찾아왔을 때에서야, 그러니까 벽장에 목을 매달았다가 실패하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너는 네가 지닌 우울의 정체를 마주했지.
다음 날, 너는 엉망이 된 벽장을 정리하고 상태를 객관적으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휴가를 냈지. 당일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무작정 찾아갔어. 전문가들이라면 네가 멘탈이 약해서 도망치려는 거라는 걸 알고 있을 거라 믿었어. 누군가는 우울증이 그렇게 쉽게 오는 병이 아니라고 얘기해 줄 거라고 생각했거든.
너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할 수 있는 검사를 모두 해달라고 부탁했지. 그리고, 심각한 단계의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진단받았어.
너의 뇌는 오랜 우울로 인해 우울감 이외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상태였어. 자율신경검사에서는 비슷한 우울증 환자들보다도 자율신경 안정도가 떨어지고 스트레스 저항도가 지극히 낮은 상태라는 결과를 받았어. 모든 지표가 극단과 끝점에 찍혀 있었지.
그제야 너는 알게 됐어. 너는 햇살 같은 게 아니라 스스로를 태워 먹는 양초에 불과했단 걸. 네가 가진 심지를 다 태우고 나서야 발견한 거야. 네게 남은 건 빛이 아니라 끈적한 찌꺼기뿐이란 걸.
하지만 그때의 너는 몰랐어. 너의 감정을 마주 보는 일이 절망이 아니라는 걸. 모든 건 우울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 아닌, 긴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한 시도이자 운명의 안배라는 사실.
비로소, 완벽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기 위한 출발점에 서게 됐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