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너는 무너지고 있었고

PART 01. 완벽주의자의 우울

by 홍사라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을 때 느끼는 ‘뿌듯함’이나 ‘만족감’ 같은 감정은 한 번 맛보면 쉽게 잊히지 않아. 스스로를 괴롭히고 몰아세운 끝에 인정을 받았다면 더더욱 그렇지. 거기엔 고통을 덮어주는 효과까지 있어서 지난 모든 시간이 의미 있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더 깊이 몰두하고, 버텨 볼 마음까지 생기게 하지.


너도 그랬어. 누군가의 인정을 받을 때마다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고 믿으며 기뻐했지. 그 평판을 유지하려면 이전보다 더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데도, 개의치 않은 것처럼 굴었어. 앞으로도 똑같이 노력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 거지.


인정을 구하는 대상이 고정돼 있지도 않았어. 가족, 회사, 동료, 친구, 연인... 심지어는 처음 본 사람의 말 한마디에도 쉽게 흔들렸지.


인정받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는데도, 너는 누군가가 널 인정해 주는 한순간을 위해 살았어. 그 짧은 순간이 주는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받았다고, 괜찮아졌다고 착각하면서.


그러는 사이 네 안은 점점 깎여 나갔어. 텅 비어 언제든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지점까지. 그 사실을 어느 누구도, 심지어 너 자신조차 알아채지 못했지.


아무도 모르게, 너는 무너지고 있었던 거야.






“남들보다 일찍, 남들보다 많이, 남들보다 끝까지.”


네게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든 원칙이 있었어.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먼저 준비하고, 최대한 좋은 결과를 만들고, 밤을 지새워서라도 주어진 일을 끝까지 해내기 위해 만든 주문 같은 말.


너는 이 문구를 모니터 아래에 붙여 놓고 지칠 때마다 읽으며 스스로를 다잡았어. 효과는 확실했지. 더 좋은 회사로의 이직, 빠른 승진, 업계의 좋은 평판, 동료들의 박수.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면서 느꼈던 보람찬 나날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은 늘 불안했어. 힘든 보고를 무사히 마친 날이면 식사보다 술 한 잔이 더 고팠고, 회사에선 좋은 성과를 냈는데 집에선 설거지 하나도 못했어. 회식 자리에서는 누구보다 크게 웃었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웃지 못했어. 이어폰도 꽂지 않은 채 허공을 응시하는 게 전부였지.


맞아, 점점 버거워지고 있었어.


적막감이 흐르는 공기 속, 씻지도 못한 채 드러누운 침대 위에서, 너는 너 자신에게 물었어.


“내가 아직도 부족해서 이러는 거겠지?”

“내가 감당 못할 것들을 욕심내고 있나?”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늘 잡히지 않았어. 아침은 항상 빠르게 찾아왔거든.


좀 더 빨리 알아챘다면 좋았을 텐데. 자문하던 마음이 ‘애쓰지 말라’는 경고였다는 거. 인정을 갈망할수록 더 깊은 허무만 남는다는 사실...







그 일이 벌어진 건, 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날이었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갑자기 여백과 글자가 분리되는 것처럼 보였어. 글자만 모니터에서 붕 떠서 날아다니는 것 같이 시야가 흔들렸지. 너는 타이핑을 이어나가지 못한 채 눈을 깜빡였어. 글자가 아니라 영혼이 붕 떠서 날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 몸과 혼이 분리되는 것 같은 설명하기 힘든 낯선 감각.


잠시 의자에 기댔어. 숨인지 침인지, 혹은 커피인지 모를 것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눈을 비비고 나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지.


‘잠이 좀 부족하긴 했지. 그래도 집중해야 돼. 회의가 얼마 안 남았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단순한 피로감으로 해석하는 데 도가 터 있었던 너는, 스스로를 빠르게 다독이고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어.


그런데 회의가 시작되고 보고할 차례가 다가오면서 점차 증상이 심해졌어. 입을 열지도 않았는데 입 안이 바싹 마르고, 심장은 옷 밖으로도 두드러질 것처럼 빠르게 뛰었어. 손이 떨리고, 턱 막히는 숨에 눈물이 차오르고, 목덜미로 식은땀이 흘렀어.


‘왜 이래? 아플 때가 아닌데.’


어떻게든 그 증상을 달래야 했어. 너는 결국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구석진 칸에서 심호흡을 했지. 컨디션 관리 하나 제대로 못해 회의 도중 뛰쳐나온 자신을 책망하면서. 그게 ‘공황’이나 ‘우울’ 일 거라곤 짐작조차 못했지. 네게 있어 그건 ‘불성실함’, ‘나약함’, ‘미숙함’ 따위일 뿐이었거든.


어떻게 회의를 마쳤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어. 다시 회의실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증상이 잦아들었다는 사실이 그저 다행스러웠을 뿐.


다만,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강박이 생겼어. 한동안 정시 퇴근을 하며 휴식 시간을 늘렸지만, 불행히도 그건 끝이 아닌 시작이었어.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무너짐의 순간이 반복됐고 그게 너를 극단으로 몰고 갔어.






무너질 수밖에 없었겠지, 너무 오래 버텼으니까.


숨이 막힐 수밖에 없었을 거야, 네 탓이 아닌 것까지 모두 네 잘못처럼 안고 있었으니까.


‘실수’ 그 자체보다 ‘실수한 자신’을 미워하며, 오로지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세웠던 나날들. 그 속에서 더 좋은 성과, 더 나은 평판을 얻는 데 매달리면서 타인의 칭찬과 인정으로 결핍을 메우려 애썼던 너.


이제는 알 것 같아. 너를 무너지게 한 건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이 아니라 그 마음을, 너 자신을 몰아세우는 도구로 써버린 순간들이었다는 걸. 그때의 네겐 네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 스스로에게 건넬 손길과 온기가 더 필요했던 거야.


애써 온 네게 “노력하지 않아도 돼” 같은 말은 하지 않을게. “괜찮다”는 맹목적인 긍정도 건네지 않을 거야.


다만 이것만은 꼭 전하고 싶어.


너 자신을 몰아세우던 날들 끝에 찾아온 무너짐, 그건 완벽하지 않은 네게 찾아온 시련이 아니야. 오래 달려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당연한 숨 고르기 일 뿐이야.


누군가의 인정에 매달리지 마. 그건 마실 때만 달콤할 뿐, 갈증을 더욱 키우는 단물 같은 거니까.


타인이 널 평가하기 전에 네가 먼저 너를 인정해 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오늘 하루를 견뎌 낸 너를 칭찬하는 것부터 시작해 봐. 그 작은 인정 하나가 목마름을 해결하고,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할 힘이 될 거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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