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02. 빛 없는 낮
감정이 바다라면, 우울은 파도가 아닐까.
하얀 거품과 함께 일렁이며 물살을 만드는 일반적인 파도 말고. 저 멀리 어딘가에서 태어나 해안선에 도달할 즈음 갑자기 거대해지는, 너울치는 파도 말이야. 어떤 방파제로도 쉽게 막아내기 어려운 위력이자, 순식간에 우릴 휩쓸어 감정이란 바다로 흘러가게 해 기어이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잃게 만드는 위험 같은 거.
너의 우울은 그런 종류의 파도를 닮았어. 자연재해처럼 다스릴 수 없는 종류라는 점까지도 비슷하지. 부인하지는 말아줘. 노력이나 긍정적인 말들, 그 어떤 것도 너의 우울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걸 잘 아니까.
약도 마찬가지야. 그건 파도를 다스릴 수 있는 마법 같은 게 아냐. 그저 네가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막아주는 방파제에 불과할 뿐.
이 세상은 무언가를 덜어낸 만큼 채우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 같아. 요요현상처럼 말이야. 체중을 덜어내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그 이후에 고생을 겪듯이, 우울에도 요요현상이 있더라. 감정도 현상유지를 하려는 경향이 있는 건지.
약이 줄면 우울도 줄어들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체중감량이 끝나도 요요현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 한 번 우울을 깨닫고 나니 자유로울 수가 없어. 아무리 덜어내도, 자라나고 재생되며 반복해서 돌아와. 마치 파도처럼.
너라면 지금쯤 ‘그럼 치료를 하는 이유가 없지 않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치료를 받기 전, 그러니까 내가 지금의 너였다면 우울에서 끝내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에 상처를 입고 주저앉았을 테니까.
지금 난 여기에 그대로 서 있어. 더는 웅크리지 않은 채. 어떤 현실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나를 상처 입힐 순 없다는 것만이 진실이라는 걸 알기에.
우울에서 자유로울 순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나와 너를 상처 입힐 이유는 되지 않아. 그 무엇도 우리를 무너지게 할 자격이 없어. 치료를 견디며 알게 된 것들이야.
그러니 의미가 있어. 네게도 그렇게 될 거야, 알게 될 거야.
네가 이 글을 쓰게 될 즈음이면 주치의가 “때가 됐다”면서 새로운 제안을 할 거야. 현실적이지 않게 들리는 데가 있는 얘기들이라 정신이 멍해질 텐데, 간단히 요약하면 그건 “이제 약을 끊어낼 준비를 할 시기가 왔다”는 말이야.
미리 기대하지는 마. 생각보다 기껍지 않거든. 그 말을 들은 순간 네 마음에는 높은 확률로 양가감정이 생겨나. 해피 엔딩을 눈앞에 둔 주인공이 된 듯한 ‘뿌듯함’. 반면 너를 상처 입힌 현실로 되돌아갈 때가 왔다는 ‘막막함’.
상반된 두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다 보면, 두려움이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네게 질문을 해.
“약 없이 가능할 것 같아?”
결국 우울증 약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터닝 포인트부터는, 지금까지와 다른 조언과 시각이 필요하게 돼. 우울증 약을 끊고 현실로 복귀하면서 느낄 몸과 마음의 변화, 그에 도움이 되는 마음가짐. 그런 것들에 더 관심이 가기 시작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변화이자 성장이지.
하지만 너를 기다리는 건 안타깝게도 우울증 환자를 위한 긍정적인 조언이나 밝고 희망찬 메시지, 그로 인해 성공한 멋진 누군가의 초상, 그런 게 전부야. 그때쯤이면 알게 될 거야. 우울을 위로하거나 견디는 법은 여기저기 많은데, 정작 우울이 지나간 이후를 다룬 게 없단 거. 어떤 영화나 책에서도 그건 다루질 않았더라고. 소재가 별론가.
우울을 이겨내고 인정을 받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책, 물론 있지. 하지만 알잖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기 포장을 목적으로 한 자기계발서가 아니야. 그런 책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당연히 아니고.
나는 그저 궁금할 뿐이었어. 우울 이후를 살아가는 존재는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왜 당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걸까.
나의 우울이 머문 자리는 너무나도 선명한데, 우울이 스쳐 간 자리를 더듬다 지새우는 밤도 여전히 길고 긴데. 파도처럼 돌아오는 우울감 속에서 마주치는 흔적이 아직도 이렇게 아픈 걸 보면 당신도 그럴 텐데. 왜 먼저 나아갔을 당신의 존재감은 이렇게나 흐릿한 걸까.
앞서 간 당신은 그늘 속을 걷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 파도에 휩쓸리고 있을까.
세상은 해피엔딩을 맞이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본편’으로 그 이후의 이야기를 ‘외전’으로 취급하지. 그런데 이상하게 우울증의 세계에선 치료를 끝내는 시점까지를 ‘본편’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 모든 초점이 우울을 이겨내고 끝내는 데 맞춰져 있어. 그게 해피엔딩의 조건이라는 양.
이젠 알아, 우리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걸. 해피엔딩 따위 필요 없어. 삶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야기고 우울은 그 안에 놓인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이니까. 이 에피소드가 끝나면 우리는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 해. 아무도 대본을 써주지 않더라도, 모든 게 파도처럼 반복해서 밀려와도, 각자 균형을 잡아가면서.
나만은 우울 속에서 헤엄치는 너를 위한 이정표가 될게. 우울이 끝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선명한 존재가 될 수 있게 노력해 볼게. 파도에 휩쓸리는 이들과 서로의 손을 놓지 않으며, 그렇게 살아볼게.
그러니까 너는, 걱정 말고 너의 이야기를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