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03. 다시 흐르기 시작한 시간
슬픔에 마음이 잠겼을 때만 눈물이 나오는 게 아니었어. 언 감정이 녹기 시작할 때도 눈물이 나더라고.
통곡이 아닌 눈물이었어. 해빙의 탈을 쓴 해방이었지.
요즘 웃음이 늘었어. 눈물도 많아졌고.
이전에도 그렇지 않았냐는 타박을 들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정확히는, 그러지 못했지.
힘들어도 괜찮은 척을 먼저 떠올리던 그때와,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지금.
진심을 눌러 담고 표정부터 고르던 그때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얼굴이 따라오는 지금.
이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지.
물론 아직도 지난 기억이 멋대로 찾아와. 갑작스러운 공황으로, 지나치게 생생한 꿈으로, 별 것 아닌 데서 트리거가 눌리며 번진 연상 작용으로.
혼자 남겨진 회의실. 눈물 자국에 흐려진 글씨. 테이블 아래에 숨겨둔 축축하게 젖은 소매. 잔뜩 젖어 제 역할을 못하는 갈색 냅킨 한 장과 입을 대지 않은 커피. 인적 드문 화장실의 끝 칸.
... 그뿐인가.
불합리한 말에서 짓눌린 순간들. 내 탓 아닌 일 앞에서 끝내 자신을 탓하던 무력감. 의도를 가진 타인에 의해 학습된 자기 검열. 아프면서 괜찮은 척 모두를 속여 온 미련한 다정. 세상을 미워하는 법보다 스스로를 미워하는 법에 익숙해진 결과. 끝내 나를 용서하지 못했던 밤, 그 옷장 안.
그 시간 속의 나는 웃고 있지 않아. 정확히는 웃을 여유가 없어.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으니까. 좀 더 완벽해져야 한다고, 더 잘 해내야 한다고, 그래야 제 몫을 다 할 수 있다고, 그런 노력이 언젠가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 울음 같은 감정은 속에 꽉 눌러 두고.
혼자 있을 때조차 소리를 죽여 울었지. 그 울음소리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나약한 나 자신의 귀에 닿지 않게.
상처는 잊히는 게 아니라 흐려지는 거더라.
우리의 것도 언젠가 흐려지겠지. 그날을 기다리며 최선을 다해 마주 보려 해. 우리를 아프게 했던 그 얼굴들을 지우고. 아픈 만큼 아파하지 못했던 그때의 나와 여전히 거기에 웅크린 지금의 너를 위해.
울고 싶을 때 참지 않게 할 거야. 지쳤다면 잠시 멈춰설 수 있게 내버려 둘 거고. 그렇게 나는 나의, 그리고 너의 유일한 의지이자 존중이 될 거야. 상처가 서서히 흐려질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울고 나서 주저앉았던 날들과, 울고 나서 걷고 싶어 졌던 날들 사이에도 온도 차가 있더라.
통곡은 소리가 크지만 해동은 조용해. 요란하게 티 내지 않고 서두르지도 않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시작되는 변화지. 얼어 있던 것을 풀어내고 멈춰 있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힘이자 생을 이어나갈 원동력. 기어이 우리를 다음 계절로 데려다 줄 그것.
겨울은 이미 녹기 시작했어. 이제 봄이 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