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속도, 흘러갈 방향

PART 3. 다시 흐르기 시작한 시간

by 홍사라

속도를 미덕으로 여겨 온 삶, 숨 쉴 틈 하나 없던 그 지난날을 돌아보는 중이야.


기다리는 법을 몰라서 늘 무언가를 재촉하고 다그치던 삶.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조차 평가가 내려질까 조바심을 냈던, 잠드는 시간에도 멈추지 못하고 늘 무언가를 떠올리고 있었던, 그 바빴던 삶.


이제 모두 흘려보내려고 해.


빠르면 성실한 거고 느리면 게으른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하루에 서너 시간의 수면 시간을 유지하며 남들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하고 늦은 시간에 퇴근하던 지난날들도.


그렇게 만들어 낸 속도는 나를 증명해주지 않더라.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타인에게 우리를 평가할 권한을 쥐어 줄 뿐.


그래. 타인들, 너와 날 아프게 했던,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던 그들.


사람을 몰아세우는 걸 관리라는 말로 포장하던 인간. 위에서 배운 방식을 아래로 흘려보낼 뿐이면서 합리적인 척을 하던 사람. 남을 위하는 척 자기 이익만 챙기던 위선자. 권력에 밀착해 안전을 확보하고, 선의를 가장해 계산하고, 권력자의 바로 옆에 붙어 편한 길을 찾고, 윗사람의 언어를 훔친 주제에 자신의 능력인 줄 착각하는 그 모든 추잡한 면면. ... 그래, 그 인간들도 이제는 떠나 보내야지.


당한 만큼 되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거야. 우리의 우울과 깊은 관련이 있는 자들이니까. 하지만 나는 분노에 머물지 않으려 해. 지금의 너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우울증 치료를 하는 동안 천천히 연습하고 준비해 온 일이야.


다만 나는 더 이상 그때의 속도로, 그들의 방식으로 살고 싶지 않을 뿐이야. 마음에도 없는 용서를 할 생각도 물론 없어. 누구 좋으라고 그런 짓을 해. 우리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데.


그저 그들, 나를 아프게 한 기억, 빠르기만 하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흘려보낼 때가 됐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야. 미움이나 증오, 억지로 만든 용서 모두 한때의 세상이고 과거의 언어니까.





우리가 공유하던 우울은 이 글이 진행되면서 점점, 공유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껴.


나의 우울은 이제 확실히 존재감이 약해지고 흐려졌거든. 갑자기 밝아졌다거나 멀쩡해졌다는 말은 아니야. 여전히 잠들지 못할 때가 많고 복잡한 생각에 기분이 가라앉을 때가 많으니까.


다만 햇살이 드는 시간에 커튼을 닫는 대신 거리로 나갈 수 있게 됐다고나 할까.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게 됐고, 일어나는 게 예전처럼 버겁지도 않고. 견디는 것처럼 느껴졌던 하루가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하루로 지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의미 있는 하루로 남게 되기도 하고... 이런 소소한 변화가 생겼다는 말이야.


나는 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잘 몰랐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타인의 기준에 맞추는 덴 그렇게 익숙한 주제에, 정작 스스로의 기준은 하나도 모르다니.


어쩌면 우울을 치료하는 과정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어. 내가 나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기에, 비로소 이 우울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한 걸지도.


우울이 사라지는 걸 너무나도 바라왔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해. 우울했던 시간이 좋았다는 뜻이 아니라, 거기에 남겨질 네가 걱정돼서 그래. 우울이라는 공통점 덕분에 힘들었던 그때의 나, 지금의 너를 이 글을 통해 안아줄 수 있었으니까. 그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그래서 조금 서운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야. 사랑하는 나, 네가 도달할 따스하고 환한 미래가 되는 것. 네가 언젠가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위해 사는 것. 우리를 아프게 했던 기억, 사람, 상처. 그 모든 미음과 증오에서 벗어나 앞으로를 살아가는 것.


다시 흐르기 시작한 시간을, 너에게 안겨주는 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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