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03. 다시 흐르기 시작한 시간
어느 날, 선생님이 말했다.
우울증 치료를 성실히 받아 온 환자가 드디어 최저 용량까지 약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에게서 낫는 것에 대한 의지나 확신이 보이지 않아 단약을 하자고 권할 수 없는 상태일 때가 있다고. 의사로서 그 순간만큼 무력한 순간은 없다고.
그런데 이상했어. 정작 그 말을 하는 선생님의 얼굴에는 무력함이 없었거든. 슬픔도, 포기도, 절망도 보이지 않았어.
의아했지. 선생님은 단 한 번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거든.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어. 선생님은 맥락 없는 말을 꺼내는 분이 아니었으니까.
선생님은 그저 웃고만 계셨어. 평소와 같은 미소였지만 어딘가 달랐어. 다정한 눈빛 안에 조용한 확신이 담겨 있었거든. 눈빛을 마주 보고 있자니 확신이 옮겨 오는 느낌이 들었어. 착각일 수도 있었지만.
너는 물었어.
“저한테는 의지가 보이나요?”
선생님이 말했어.
“네, 보여요. 이제 치료 끝내도 되겠어요.”
그건 선언이었어. 도달을 알리는 기쁜 소식, 그 이상도 걸어갈 수 있을 거라는 당당한 표명.
다정한 사람. 주변을 살피는 사람. 섬세하고 연민이 많은 사람.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연민이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향하지는 않는 사람. 지친 얼굴보다 슬픈 얼굴에 익숙한 사람. 그 슬픈 얼굴을 숨기는 것을 아주 잘하는 사람.
... 앞으로 오래 보게 될 환자.
그게 선생님 눈에 비친 첫인상이었다나. 진료실로 들어서는 모습이 그렇게 슬퍼 보일 수가 없었대.
사실 기억을 되짚어봐도 모르겠어. 그날 슬펐던가? 막막하고 어정쩡한 기분이었던 건 확실한데.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채 도피를 하는 기분이 찜찜하고 짜증 났던 것도 기억나고.
선생님은 막막함 너머, 그 어디엔가 숨겨둔 슬픔을 먼저 보셨던 걸까.
오래전부터 속에 금이 가 있던 사람. 잘 견디는 사람. 괜찮은 척을 해 온 사람. 그래서 오래 보게 될 환자... 선생님의 그 진단은 비관이 아니라 책임감, 포기가 아니라 기다림을 곁들인 시선이었던 걸까.
선생님은 말보단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넌 말보단 눈물이 더 많은 환자지.
진료실, 왜 그 방에만 들어가면 눈물이 그렇게 나오는 걸까? 공기에 무슨 짓을 해뒀나 싶을 정도야.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들은 대체 무슨 수련을 받으시는 걸까. 환자 눈에 수도꼭지 달아주기? 환자가 티슈 한 통 다 쓰게 만들기?
최대한 남 이야기 하듯 말을 해 봐도 소용이 없더라고. 그냥 차분하고 덤덤하게 우는 사람이 될 뿐.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특별한 사연이나 대단한 과거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평범한 과거를 딛고 사는 게 우리의 현실이잖아. 선생님 앞에서 하는 이야기도 대부분 그냥 사는 이야기였어. 특별하지 않은 일상.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뭐 그런 이야기들.... 음, 힘들었단 말은 잘 안 했었던 것 같아. 아니, 못 했지. 아무리 선생님 앞이어도 그런 말들을 입으로 꺼내면 자신이 너무 무력해질 것 같더라고.
아쉽다고, 좀 더 잘 해낼 수 있다면, 그들과 더 잘 지낼 수 있겠다면 좋겠다는 말은 자주 했었고. 대부분은 후회와 자책으로 결론이 나고는 했었던 것 같고.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다정함은 빠져 있는 이야기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 우릴 오래 보게 될 환자로 보셨던 건 당연한 거였어. 세상을 살아가려 애쓰느라 정작 자기 자신은 이해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다시 자기 자신을 사랑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선생님과 치료 종결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
마지막 진료일까지 약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치료 종결 후 처방받게 될 비상약은 어떻게 할 것인지와 같은 논의가 이어졌지. 비슷한 결로 반복되어 왔던 지금까지의 처방과는 완전히 달랐어. 먹었던 약의 부작용을 확인하고 증상을 체크해서 약을 바꾸는 시도를 하곤 했거든.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약이 늘어나는 경험을 하던 시기가 있었어. 그 약들을 계속 삼켜가면서 버텼던 날들이 길었고. 약을 최저 용량으로 줄였으니, 이제는 정기적인 복용을 끊고 비정기적으로 증상에 따라 복용을 조절하는 연습을 할 단계가 돼 있었어. 약을 꾸준히 먹지 않아도 되는 처방이라니. 정말로, 끝이 보이는 것 같았지.
진료를 마무리하기 전, 선생님이 말했다.
앞으로도 힘든 순간은 올 수 있다고. 정신과 약이란 게 삶의 아픔을 지워줄 수는 없었던 것처럼 그런 변곡점이 또 몇 번이고 나타날 수 있고. 그러나 그저 삶의 어느 한 지점일 뿐 실패 같은 게 아니라고. 한 번 무너져 본 사람은 그만큼 단단한 자리를 딛고 걸어갈 줄 알게 된다고. 혹시 다시 길을 잃는 기분이 들면 그땐 다시 여기로 오시면 된다고. 당신은 항상 거기에 있겠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맙다고.
잘 견뎌주고 애써주어서 고맙다고. 나아지기 위해 애쓰는 모습,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보면서 당신 또한 마음이 단단해졌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시더라.
그래, 그 방 안에서 애쓴 건 한 사람만이 아니었던 거야. 질문을 놓지 않은 사람과, 도망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던 두 사람이 함께 건너왔던 거야. 그게 전부였기 때문에 끝까지 올 수 있었던 거였어.
고맙다고 말을 해야 할 사람은 전데 왜 제가 할 말을 선생님이 하시냐고...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뿐이었어.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거든. 그다음은 그 방의 법칙대로야. 펑펑 울다 나왔지, 뭐.
하나 후회되네. 우느라 선생님께 말씀을 못 드렸어. 고맙다는 말이 큰 위로가 됐었다고...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선 건 처음이었어. 병원을 오가며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혹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약봉투가 든 가방을 괜히 품 속에 숨기고는 했는데, 그날은 약봉투를 숨기고 싶은 생각도 안 들더라.
다만 무언가 끝났다는 느낌과 이제 혼자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서 그런가... 완벽하게 홀가분한 기분은 아니었어. 후련함보다는 먹먹함이. 그보다는 허전함이 좀 더 컸던 것 같아. 왜일까? ...마냥 기쁠 줄 알았는데.
... 어떤 작별은 상실이 아니라 성장이겠구나. 어떤 슬픔은 허전하게 끝나기도 하는구나.
병원 건물 앞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왔지만 곧장 건너지 않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면서 잠시 서 있었어. 다만 그다음 신호에도 건너가지 못하고 한동안 거기 머물렀지.
한 주 남았구나. 다음 주면, 이제 치료가 종결되는구나.
곱씹고, 또 곱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