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03. 다시 흐르기 시작한 시간
삶이 가장 무겁다고 느꼈던 시기, 나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와 아직 경험하지 않은 ‘죽음’에서 같은 모습을 발견하곤 했어. 닮아 있더라, 그것들.
우리가 아는 죽음은 학습된 것이 아니지. 산 자가 살아가는 세상을 토대로 예상하고 상상한 것일 뿐. 실제로 죽는 순간 무엇을 느끼고 겪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그런 이유로 당시엔 죽음이란 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 현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와 비슷해 보였어. 살아봤자 막연하고, 죽는 것은 막막하고. 그 애매함과 흐릿함이 무척 닮았더라.
나는 스스로에게 자주 묻곤 했어. 죽는 것과 사는 것, 그게 무엇이 다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가 무엇인지.
그렇다 한들 죽을 필요가 있는지.
살아내야 하는지, 살아가고 싶은지.
애매한 것들은 결코 선명해질 수 없는 건지.
유달리 시작이 좋은 날이 있지. 그런 날이 참 버겁더라.
수면제를 먹지 않은 것처럼 개운하고 상쾌한 기상.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봄바람과 새벽의 습기가 마른 자리에 들어서는 깨끗한 아침 공기. 제시간에 맞춰 평범하게 집을 나서는 출근길. 발걸음이 플랫폼에 멈춤과 동시에 들어오는 지하철. 건널목에 도달하자마자 초록색으로 바뀌는 신호. 늘 방문하는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
모든 것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하루가, 불명확한 하루보다 두려웠다고 하면 너는 믿을까. 소소한 행복과 절묘한 행운 사이의 우연이 몸서리치게 싫었어. 오래 유지되는 행복 같은 건 본 일이 없었으니까. 절망은 행복에 방심한 순간을 노리니까. 시작이 좋다고 끝이 좋은 건 아니니까.
매끄러운 시작, 우연한 행운, 소소한 행복. 그런 것들이 갚아야 하는 빚 같았어. 너무 과한 건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시작이 좋으면 끝이 좋지 않을 거라고. 이 행복들은 언젠가 거둬질 거고, 행운이 찾아오는 만큼 불운이 기다린다고. 나의 삶은 그렇게 균형을 맞춰 왔다고. 그렇게 기대치를 낮추고 행복을 깎아내리면서, 행운에서 고개를 돌리며 살았어.
행복을 느낀다는 건 불행을 부르는 저주 따위가 아닌데.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정 중 하나일 뿐인데. 그것마저 통제하려 들었던 지난 날...
세상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아야만 찾을 수 있는 답이 있어.
왜 살아야 하는지. 지금의 행복이 얼마나 갈지. 행운의 본모습이 무엇인지. 언제 무너질지. 어떻게 끝이 날지.
그 수많은 물음표를 내려놓지 못해 지금껏 찾지 못했던 거야. 미래와 죽음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도 끝없는 질문 때문이었는지도 몰라. 우리에게 필요한 답은 삶에 있어. 질문은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않아. 그저 삶을 흔들어 시야를 가릴 뿐.
오지 않은 시간에 확답을 요구하고 겪어보지 않은 세계에 확신을 강요하면서 묻고 또 물었던 지난날을, 이제 그만 놓아줘. 끝을 가늠하지 않아야 하루가 두렵지 않고, 행복의 유효기간을 묻지 않아야 순간의 기쁨이 위태롭지 않게 돼.
사랑하는 나야, 더는 아무것도 묻지 마.
정해진 답은 없어. 그런 건 살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거야. 이리저리 부딪히며 깎여 나가다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거지.
누군가 정해둔 정답이 아닌 너의 몸에 꼭 맞는 해답 하나. 그걸 맞이할 순간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그렇다 한들 죽을 필요는 없어.
살아내야 하는지, 살아가고 싶은지는 차차 알게 될 거야.
애매한 것들이 끝내 선명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괜찮아.
지금 살아 있는 순간이 이 생에 가장 선명한 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