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5일, NICU라는 낯선 교실(1)

아기 없는 조리원에서 내가 살아남는 법

by 서명진

[강의 안내]

오늘은 ‘엄마학교’의 3교시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아이는 NICU라는 낯선 교실로 떠났고, 저는 아기 없는 조리원에 혼자 남겨졌습니다.

예고 없이 시작된 이 혹독한 수업을 어떻게 버텨냈는지, 그 기록을 전해봅니다.




2025년 가장 긴 추석 연휴 직전, 아기는 그렇게 병원에 입원했다.


소아 응급실 NICU(신생아 중환자실)의 투명한 벽 너머로 아기가 들어갔다. 나는 의사에게 그동안의 상황이 담긴 영상을 보여주며 경과를 설명했다. 기저귀를 비롯해 아기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안내받고 나서야, 파란 가운을 뒤집어쓰고 아기를 보러 들어갔다. 다행히 연휴 전 평일이라 여러 검사를 바로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결론은 ‘경련’이었다.


하지만 열이 없었기에 의사는 영상만으로는 확답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경련은 뇌로부터 발생된다며 MRI 검사를 진행하며, 아기를 재운 상태에서 추가 경련 여부를 지켜보기로 했다.


너무도 작았던 아기는 아기보다 훨씬 큰 방에 여러 기계에 둘러싸인 채 기저귀만 차고 있었다. 여러 개의 선이 몸 이곳저곳에 연결되어 있었다. 인큐베이터 안에 뚜껑까지 덮여 있어서 나는 안아볼 수조차 없었다.


10여분.


아기와의 짧은 면회가 끝났다. 사진은 찍어도 된다는 허락에 몇 컷을 남긴 채 병원을 나왔다. 병원에서 터미널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 버스를 타면 오히려 더 돌아가야 했기에 걷는 게 빨랐다.


아기를 혼자 두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아기가 없는데 조리원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은 한 수 더 앞서 나갔다.

‘집에 가면 나를 챙겨줄 사람이 없다. 내가 더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 조리원에서 빨리 회복하자. 아기가 퇴원할 때 건강한 몸으로 맞이해야 하니까.’


조리원에 돌아오니 먹지 못한 간식과 점심밥이 식은 채 놓여 있었다. 오는 길에 빵으로 대충 끼니를 때웠던 나는 그 식은 밥을 마저 먹고 잠을 청했다.


저녁이 되어 남편을 만났다. 우리 사이엔 초상이라도 난 듯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소망이가 없을 동안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출생신고도 연휴 전에 다 해놓자.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경련 관련 영상을 찾아보았지만, 우리 아기 정도는 아니었다. 열도 없으니 괜찮을 거라며 서로를 다독였다.


내가 머물던 조리원은 아기들이 있는 층이었다. 방을 나설 때마다 아기 냄새와 울음소리가 복도를 채웠다. 옆 방, 앞 방의 산모들은 아기를 품에 안고 지나갔다. 매일 저녁 간호사가 조리원실을 돌며 상태를 확인할 때면, 아기가 없는 우리 방은 가장 먼저 확인이 끝났다.


나는 면허도 차도 없었기에 아기를 보러 가는 길은 오롯이 두 발에 의지했다. 남들이 산후조리에 전념할 때, 나는 거리를 나다녔다.


‘삼칠일.’


아기도 산모도 몸을 회복하기 위해 외부 접촉을 피해야 하는 금기의 시간. 하지만 나는 매일 3시간을 밖에서 보냈고 그중 1시간은 길 위를 걸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안 그러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책은 소모적이었고, 원인 규명은 불가능했다. 내 인생 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이 돌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식은 나에게 할 일을 주는 것이었다.


임신 중기부터 해온 매일 일기 쓰기

면회 때 전달할 모유 유축하기

신생아 관련 육아 영상 공부하기

아기가 나오면 하고 싶은 일 리스트 적기


비어 있는 아기 자리 대신 나는 이 목록들로 하루를 빽빽하게 채워 나갔다. 아기가 돌아왔을 때, 처음이지만 ‘경력직’ 같은 엄마의 모습으로 맞이하고 싶었다.


그것이 낯선 교실 NICU에서 내가 찾아낸 방식이었다. 아기가 곁에 없어도, 엄마의 시간은 누구보다 바쁘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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