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장·임원과 관련된 웃긴 에피소드와 위기 상황 처리법
회장비서를 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회장님은 정말 공평하고 공의로운 분이라는 것이다.
회장님은 일이 늦게 처리되거나 보고가 제때 올라오지 않으면 즉시 불호령을 내리셨다.
우리회사 사장님은 회장님의 아들이었는데,
그래서 주로 혼나는 사람은 부장님, 상무님, 사장님이었다.
나만 마음에 안 든다고 나에게만 샤우팅을 한 것은 아니었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샤우팅이 떨어졌다.
그런데 나보다 상무님은 훨씬 더 자주, 사장님은 상무님보다 훨씬 더 많이 혼나셨다.
그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리곤 했다ㅋㅋㅋ

“나만 혼나는 게 아니구나” 싶은 안도감이랄까.
그래서 사장님은 늘 회장님을 피해다녔는데 그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고,
회장님 귀가 잘 안 들리셔서 사모님과 스피커폰으로 통화할때면,
사모님이 회장님께 화내는 소리가 사무실에 통화 내용이 쩌렁쩌렁 들렸다.
호랑이 회장님도 사모님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통쾌했다.
비서라면 업무상 상사나 임원의 사생활에 대해 알게 될 때가 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가족 불화이든, 연애든, 이혼이든 등등 어떤 정보도 절대 비밀이어야 하며,
개인적인 판단이나 의견을 덧붙여서는 안 되고, 옮기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사는 아무리 친하게 지내더라도 상사는 상사다.
비서면 사장님과 업무 연락을 자주 할때가 많다보니, 사장님도 비서에게 편하게 본인의 감정을 드러낼때가 있다. 예를 들면 누구에게 불만이 있다거나, 누가 맘에 안든다거나 등등
그러나 상사가 업무를 맡기고 정보를 공유한 만큼,
철저히 공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선 넘어서는 행동은 금물이다.
절대절대 절~~~대 '이게 낫지 않겠냐'하는 등의 훈수를 두거나 터치해서는 안된다.
쉽게 생각하면, 내가 부하라면 내 사생활에 훈수를 두거나 비밀을 하나의 가십거리처럼 말하는 부하가 있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비서는 선을 더 철저히 지켜야 하며 입은 자물쇠가 되어야한다.
가끔 업무 중 모르는 일이 생기면 당황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경조사 관련 업무였다.
전 직장에서는 화환을 챙길 일이 없었지만, 여기서는 경조사 화환 챙기기도 내 업무였다.
처음 회장님이 “축발전 가져와”라고 하셨는데,
나는 멍하니 “엥? 축발전이 뭐지?” 하고 주변 직원에게 물었다.
결국 ‘축발전’이라고 써진 축하봉투를 가져오라는 뜻이었다.
임원실에는 회장님, 사장님 이름으로 ‘축발전, 축화혼, 부의’ 봉투가 준비되어 있다.
모두 한자로 써 있어, 처음에는 많이 헷갈렸다.
사업 시작: 축발전
거래처 딸 결혼: 축화혼
거래처 아들 결혼: 축화혼
장례식: 부의
화환과 화분, 난 등을 보낼 때도 있다.
장례식: 흰 국화 화환
결혼식: 화려한 꽃 화환
사무실 발송: 나무나 난
가장 무난한 선물은 난이다.
그래서 나는 난이 싫다.
뭐만 했다하면 난이 들어오니.. 사무실에 이미 10개 이상 있다. 매주 1회씩 물을 주어야 했다.
개빡시다. 난.. 난이 싫어요.
한 번은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회장실에 있던 난에 흔하지 않게 꽃이 피었다. 그러자 회장님이 좋아하셨는데 이게 웬걸?
감사실에 있던 난에도 꽃이 피었다. 난이 꽃을 피우기가 쉽지않은데.. 나도 신기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본 질투심 강한 부회장님이 샘이 난 모양이다.
대뜸 나에게 와서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왜 내방에 난은 꽃을 안 피워?”
황당했던 나는 '넹??'라고 표정으로 가만히 서있었다.

'궁금하면 난에게 물어보세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씨익 웃으며 넘어갔다.
이후에도 감사실에 난꽃이 활짝 핀것을 보시고 2~3번 더 말씀하시긴 하셨는데,
나는 알았다. 그것이 농담이 아니란 것을..
비서라는 직업의 업무가 워낙 넓다보니 소통하는 사람들도 다양하게 접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눈치없는 분들의 당황스러운 요구가 올 때가 있다.
이럴때는 웃으며 거절하는 것이 최고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임원 한분이 기타배우는데 푹 빠져있었는데 대뜸 나에게 물어보셨다.
“토요일에 기타동아리 연주회가 있는데 와서 스텝 좀 해줘”
라고 했을 때, 나는 엄청난 충격에 휩쌓였다.
동네 어르신들끼리 모여 기타 치고 노는 그곳에 날 불러서 일을 시킨다고?
'나 이렇게 비서도 있어'하고 뻑이려는 그 속셈이 훤히 보였고,
이런 질문 받는 것 자체가 열 받아 욱하는 성질이 올라왔지만..
나는 단칼에 웃으며 답했다.
“주말에 일정이 있어요^^”
또 입사 초기, 어떤 나이 있는 직원분이 본인 친구들이랑 제주도 여행 간다며,
티켓 10장을 예약해달라며 일을 던지고 갔을 때도 있었다.
본인의 사적인 일을 마치 회장님 지시인 마냥 당당하게 시켰다.
나는 이때도 단칼에 웃으며 이야기했다.
“여행사 통해서 하세요”
그때는 신입이라 뭔가 거절한다니 불안하고 화도 났지만, 결국 안 해주었으니 내가 이긴 것이다.
그렇게 처음 거절하는게 어렵지만 꼭 해야 한다.
한번 거절해보면 상대도 눈치껏 선넘은 부탁을 안하였다.
결론: 선 넘는 일에는 예의 있게 웃으며 거절하라.
미안해할 필요도 없다.

그게 회장·임원실 생존법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