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출근부터 퇴근까지 임원실 생존비법
놀라지 말아야 한다. 나는 34살에 첫 정규직 입사를 했다.
그 전까지는 방과후 댄스 강사로 살아왔다.
오전에는 보험회사 사무보조로 팀 비서 역할을,
오후에는 운동 강사로 하루를 채웠다.
전공은 사회복지였다. 하지만 10년간 몸으로만 일한 삶은 이제 그만두고 싶었다.
진심으로 책상 앞에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원했다.
그래서 이력서를 30통 정도 넣었다.
사무보조 경험 덕분에 비서 자리에 지원했다. 대부분 떨어졌다.
그러던 중 다급하게 연락이 온 한 곳이 있었다.
면접을 보러 갔더니, 웬걸… 중소기업 임원실 회장비서 자리였다.
전임자가 급하게 그만두면서 즉시 대체자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면접 날, 지원자는 세 명이었다.
한 명은 청바지를 입고 왔고, 한 명은 평범하게 왔다.
나는 알바만 해 본 경험이 있었지만, 정직원 면접에는 정장이 필요하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덕분인지 나이가 있는 내 모습이 오히려 장점으로 보였고,
과거 예약직 비서 알바 경험도 인정받아 3일 뒤 바로 정직원 입사가 확정되었다.
좋았던 점은, 회사가 전기회사라 보수적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약직은 아예 없었다. 회장님이 말씀하시길,
“우리는 계약직 그딴 거 없다. 대신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 한마디가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게 첫 출근을 했는데… 착각이었다.
진짜 지옥 같은 일정이 시작되었다.
출근은 8시 30분, 근로계약서상 퇴근은 5시 30분이었다.
하지만 여긴 어디인가?
임원분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비서는 퇴근할 수 없었다.
(칼퇴 따위는 개나 줘버려..)
다른 직원들은 5시 30분에 퇴근하지만, 나는 늘 6시 30분에 퇴근했다.
그리고 나에게 닥친 첫 난관은 회장님이 80세가 넘는 할아버지라는 점과,
말씀하시는 사투리를 잘 못 알아듣는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자’를 가져오라는 말에 30cm 자를 가져갔더니, 사실은 도장을 달라는 뜻이었다.
또 물을 갖다 달라시기에 갖다드렸더니 문서를 가져오란 것이었다.
그렇게 말귀를 못알아듣고 다른 물건 갖다드리면 바로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후..
호랑이 띠답게 성격답게 회장님의 샤우팅 또한 호랑이 같았다.
똑같은 띠동갑 호랑이띠였던 나는
'참나.. 연세도 많으신데 샤우팅이 아주 파이팅 넘치시는 구만..' 하고 넘겼지만
예전 비서들은 회장님의 샤우팅 때문에 혼나서 많이들 울었다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같이 '씩씩'대고 있었겠지만,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배운 것 중 중요한 한가지!!
절대 안색에 기분 나쁜 티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속상하다고 얼굴 붉히는 것만큼 매너없는 행동도 없다는걸 회사생활하며 알게 되었다.
가끔은 회장님이 혼내서 좀 억울할때도 있고,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회장님도 미안한 기색을 보이기에 그렇게 풀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전임자가 급하게 그만둔 바람에 인수인계가 전혀 없었다.
헐랭...

비서 일은 센스와 감각을 다루는 정말나 디테일한 작업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해하니 부담이 컸다..
동료 직원들이 조금씩 알려주었지만, 시스템 자체가 새로운 것이라 처음엔 뭐가 뭔지 전혀 이해가 안 됐다.
게다가 전임자는 일을 엄청 꼼꼼하게 잘했다고 모두 칭찬했다.
남겨진 자료를 보니 일을 잘하긴 잘했다.
나는 인수인계도 없이, 전임자의 일을 끝내주게 잘했다는 사람들의 비교 아닌 비교를 받으면서
압박감 속에서 괴로운 지옥을 경험했다.
하지만, 적응기에는 누구나 힘든 법이다.
처음 접한 ERP 시스템도 1년 지나서야 손에 익었다.
나는 원래 일을 느리게 배우는 스타일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승리는 버티는 자에게 온다는 것을 믿고 죽어라 버텼다.
나는 꼼꼼하지는 않았지만, 나만의 장점이자 단점이 성격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승질"이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꿀리지 않고 ‘어쩌라고?’ 마인드를 갖는 것.

일을 느리게 배우는 내 특성을 잘 알기에, 옆에서 호통을 치고 닥달하는 사람들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도록
"어쩌라고?" 하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해나갔다.
3개월간 힘들었지만, 결국 사람들도 내게 적응해가고, 나도 상대에게 적응해가며 힘든 시간을 버텨냈다.
그럼에도, 살아남으려면 전략이 필요했다.
내 전략은 **‘감정’**이었다.
나는 늘 사람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했다.
동료 직원, 회장님, 심지어 보안 아저씨에게도 작은 친절을 잊지 않았다.
사실, 고맙고 미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회장님이 계속 부르시고 지시를 내려도,
나는 말귀를 제대로 못 알아듣기 일쑤였다.
“예?”
“넹?”
“??”

직원들이 늘 달려와 대신 알아듣고,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끌고 나와 설명해주고, 일처리까지 해주었다.
속으로는 맨날 회장님을 향해 '씨부럴.. 혀가 어디 휴가갔냐? 못알아듣겠네 ㅆㅂ' 이러면서도..
직원들에게는 얼마나 고맙고, 또 미안했겠는가.
인턴 생활 3개월 동안은 월급의 70%만 받았지만, 일을 잘 못하니 그마저도 황송하게 받았다.
나는 보이는 사람마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정과 몸짓으로 표현했다.
그 덕분에, 느리게 일을 배우고 잦은 실수를 해도,
사람들은 나를 잘 대해주었다.
오히려 인수인계 없이 회장님의 샤우팅 속에서 버티는 나를,
안타깝고 애처롭게 생각하며 도와주었다.
얼마나 좋은가.
날 애처롭게 생각해주는 감정이라니.
나는 이런 감정도 긍정적인 힘이라고 생각했다.
쓸데없는 자존심은 접고,
사람들이 날 불쌍해하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치? 나 열라 불쌍하지? 진짜 고생 많이 했네 ㅜㅜ”
그렇게 나 자신도 인정해주고 달래주었다.
결국 사람들도 나를 잘 맞춰주었고, 나는 조금씩 회장 비서 세계에 적응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회장 비서로서의 생존 생활이 시작되었다.
실수와 혼남,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하루하루였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나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