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이다. 아주 소시민적인. 정부와 정권과 권력과 자본 앞에서 꼼짝도 못 하는 소시민이다. 나는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할 수 없다.
이런 내가 한심하다. 나는 무엇을 바라, 이곳까지 왔는가. 여러 신문사와 출판사에 돌렸던 내 원고는 무엇을 위해 쓰여지는가. 쓰여졌는가. 이 시대의 진실과 순수와 문학과 예술인과 시민을 위한 원고인가. 저 정권만을 위하는 원고인가. 내가 자조적이고 풍자적이진 못해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데, 어찌하여 나는 내 손에 쥐어지는 돈 몇 푼에 굴복하는가. 나는 문학인인가 지식인으로 불릴 자격도 없는 소시민인가.
내가 맨 처음 원고를 적었을 때의 순수는 어디에 가 헤매이며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가. 내가 순수를 버린 것일까, 순수가 잠시 몸을 숨긴 것일까. 어느 편이든 지금의 나는 현실에 찌들어버린 사람이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며 바라왔던 진실을 잊힌 것인가. 청년이 공권력에 의해 생을 마감했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눈을 감은 것이냐. 저기 학생들도 거리로 뛰쳐나오는데, 어찌하여 나는 진실을 외면하고, 나의 안위만을 바라고 있는가.
내가 그토록 바라던 문학은 죽어버린 것일까. 우리는 이제 어떠한 언급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어찌하여 칼보다 강한 것을 쥐고, 스스로의 손목만을 긋고 있는가. 우리가 이러고도 인간이라 할 자격이 있을까.
예술인들이 지금 하는 것이, 정녕 예술인가, 단순한 돈벌이인가, 우리는 역사를 기억하는가, 망각하는가, 예술인은, 문인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이상인가, 현실인가, 정권인가, 자본인가.
어느 쪽이든 지금의 나는 소시민이다. 나는 현실에 굴복해 버린 소시민이다. 나는 역사의 반복을 지켜보고 있고, 역사를 지키지 못한 미래 없는 사람이다.
나는 작가이다. 아주 긴 터널을 거니는 여정을 이제 막 마친 작가이다. 그러나 나는 진정한 예술인은 아니다. 나는, 지금의 나는, 이것밖에 할 수 없어 글을 쓴다. 공부를 하고, 출판사의 눈치를 본다. 그리고 그들의 입맛에 맞게, 내 신념을 잠시 접어둔 채 글을 썼다. 그 결과 나는 서점 한가운데에 내 책을 올렸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다. 다만 짙은 회의가 찾아올 뿐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며, 원고를 고치며, 무엇을 위해 역사를 돌아보고 그들에 대해 분노하는가. 외교를 하지 않는 외교부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제정기회부와 제대로 된 심판을 하지 않는 법무부와 여성과 가정을 위하지 여성가족부와 자기 할 일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게 하는 이 정부를 나는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내가 비판받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그들의 기피 대상인가, 기피제 따위도 필요 없는 날벌레인가. 역사는 기억되고 있는가, 잊혀져버린 것이냐,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가.
어느 방향이든 상관없다. 내가 점점 쌀쌀해져 가는 계절에, 신춘문예를 위해 원고를 수십 편 신문사와 출판사에 제출했던, 그때의 나의 영은 죽었다. 나는 더 이상 지식인도, 작가도, 비평가도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글을 쓰는 노예일 뿐이다. 황금알을 낳았지만, 내 배는 곧 갈라질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지금 내리는 함박눈 위에 피를 토해내고 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