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작가가 되고 싶었을 때, 매일같이 오던 이 서점에 드디어 내 책이 진열되었다. 멀찍이서 바라본 서가는 내 이야기의 양분이 된 이야기를, 내 이야기와 함께 머금고 있다. 이제 나도 누군가 가진 꿈의 양분이 되길 바라지만, 나는 그럴 만큼 진실되고 좋은 작가가 아니다.
회의가 몰려온다. 나는, 분명 바라던 작가의 모습이 있는데, 왜 나는 지금 현실에 굴복한 채 사람들의 입맛에 내 양심을 끼워 넣고 있을까. 양심이 있게 글을 쓴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기도 하는 이 일을, 나는 이어갈 능력이 있는 사람일까.
눈이 내린다. 서점 문을 나서자마자 내 머리칼에 내려앉는 눈송이는 자신의 형체를 들킬까 빠르게 몸을 숨긴다. 지금의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지금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되고 싶다. 어딘가에 닿아 녹아버리고 싶다. 부끄럽다.
발걸음을 옮겨 조금만 걸어가면 있는 세종대왕의 동상 앞으로 간다. 그 앞에 서서 묻는다.
“저는 그 귀한 한글로 이야기를 적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문자로 백성들에게 이로운 일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을 적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이대로 작가가 되는 게 맞는 일일까요?”
동상은 내게 아무런 말이 없다. 동상은 말을 할 수 없지만, 나는 왜 동상에게서 답을 찾고 있을까. 나는 이 문제의 답이 역사에 있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역사를 들춰보지 않음은 왜 때문일까. 과거가 쓰라려서일까, 답을 찾고 만 내가 초라해질까 봐 이러는 것일까.
이번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 앞에 선다. 그리고 또다시 묻는다.
“저는 그대께서 지켜주신 이 나라를, 제 손으로 지킬 수 있을까요? 저는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를 마주할 수 있을까요?”
또다시 말이 없다. 주변을 돌아다 보아야 온통 하얗다. 흰 커튼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 나도 그 커튼을 열고 들어가 웃을 수 있을까. 아니면 커튼에 목을 매고 죽게 될까. 어느 쪽이든,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하늘에서 끝이 안 보이게 눈이 내린다. 난 아직 눈이 예쁘다. 큰길을 따라 걸아간다. 그러면 나오는 서울특별시청의 광장에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눈이 내리는 밤에 스케이트라니, 나는 그곳에 외톨이가 되어 기억을 남기기 싫기에 그 앞에 있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책은 내 삶을 함께한 오랜 친구이자 벗이자 스승이다. 나는 외로우면 책이 있는 곳에 간다. 그곳에서는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원하는 만큼 들을 수 있다. 그게 나에게는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원하는 만큼 읽는다. 그러다 보면 시곗바늘은 발걸음을 재촉하고, 도서관의 불은 꺼진다. 도서관의 문이 굳게 닫히면, 나는 시계에게 내일을 부탁하고 잠든다.
하지만 , 오늘은 좀 달랐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종로에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처음 이곳에 온 마냥, 지금의 옷은 아닌 것 같은 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내게 물었다.
“종로요? 종로는 바로 여기에요.”
남자는 내 말을 의심하기도 전에 겁에 잔뜩 질려있었다. 마치 서울이란 도시에 있는 모든 걸 처음 본 것 같이.
“혹시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시겠어요?”
아직 젊어 보이는, 많아야 30대일 것 같은 사람이 서울에서, 그것도 종로에서 겁에 질렸다니.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고, 이 사람의 정체를 사람들이 모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사람을 데리고 내 작업실 겸 집에 갔다. 이게 정신 나간 위험한 일임을 알지만, 이 사람을 이대로 풀어두는 게 더 위험해 보였다.
“일단 여기서 지내요. 작업실인데, 작가라서 일이야 뭐 언제 하든 상관없으니까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어떻게 여기 오게 되었는지도 생각해 내서, 얼른 집에 가시길 바라요.”
나는 이리 말하고, 자리에 앉아 작업을 하려 했다. 하지만, 글이 안 써졌다. 왜일까. 순간 머릿속에 모든 회로가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순간의 정지겠지 생각하고, 소파에 누웠다. 누워서 고개를 돌리니, 아까 이곳에 데려온 남자가 보였다. 순간 멈춰버린 머리가 잠시 돌아가며 생각을 뱉어냈다.
‘저 사람은 누구일까.’
오랜만에 느낀 호기심이었다. 눈구름 사이로 떠오른 보름달, 그 빛이 창가로 새어들었다. 그리고 그 빛이 남자의 얼굴을 쓰다듬는 것이, 아름다웠다.
겨울날이었다. 옆에 있던 작가들이 자취를 숨겨버려 나 홀로 동숭동 거리를 걸었다. 거리를 걸으면 보이는 여러 포장마차에 내 벗들이 있을까 하여 자세히 들여다보지만, 나의 벗은 온데간데없고, 나의 영은 죽어버린 뒤였다. 한참을 걷다가 아무도 없는 포장마차에서 소주만 한 병 시킨 채 신세를 한탄할지, 세상을 비판할지 고민했다. 신세를 한탄하면 읽히는 작가가 될지 모르고, 세상을 비판하면 잊히는 작가가 될지 모른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나는 이미 소시민으로 살고 있었다. 이 고민의 의미는 없었다.
얼마나 술을 더 마셨을까. 기억이 끊기지 않을 정도만, 딱 그 직전까지 술을 마셨다. 나는 해결하지 못한 현재를 두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 중이었다. 이제 거리에는 어둠이 짙게 깔렸고, 나는 집으로 가야 했다. 버스정거장에 가 버스를 타고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집은 거리가 좀 있었고, 난 차라리 생각을 정리할 겸 해가 뜨는 종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궐의 담장을 따라 걸었다. 그리로 가면 광화문이 나오고, 곧 종로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길을 거닐수록 안개가 짙어졌다. 주변은 점점 시끄러워졌고, 거대한 구조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술에 잔뜩 취해서일까. 하지만, 안개가 걷힐수록, 이곳은 내가 있던 곳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종로에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내가 한 여인에게 물었다. 여인은 나에게 이곳이 종로라 말했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는지,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가기 시작했다. 작은 방이었다. 한 사람은 누울 수 있어 보이는 푹신한 의자와, 책상과 의자, 동그랗고 등받이 없는 의자가 있는.
여인은 내게 일단 이곳에 있으라 했다. 나는 세 의자 중에 등받이가 없어 가장 불편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벽에 기대었다. 오늘이 고단했는지, 나는 잠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 잠시 깨어났을 때, 여인은 가장 푹신한 의자에 누워 잠에 들었다. 달빛과 별빛은 모두 여인을 비추고 있었고, 지금을 글로 남기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여인은 해가 뜨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술에서 좀 깨어난 상태였고, 우리는 이제야 서로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평온한 밤 보내셨는지요.”
여인은 내게 물었다.
“네. 덕분에 동사는 면한 것 같아요.”
여인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의 얼굴에는 다양한 생각이 오르내리는 게 보였다.
“대체, 어쩌다가 그 밤에 그 거리를 헤매고 계셨던 건가요?”
여인은 내게 물었다. 큰길에서 길을 헤매던 내 모습이 상상되며 부끄러워졌다. 괜한 술주정 같이 느껴져서.
“아. 저는 작가입니다. 제가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길을 잠시 잃었었나 봐요. 제가 너무 민폐였을까요.”
나는 여인에게 미안했다. 다 큰 사내가 길 하나 찾지 못한 것은 부끄러울 일이 맞다.
“여기가, 아니 지금 이 시대 사람이 아니신 것 같아서 데려온 거였어요. 이거 그냥 두면 무슨 일 나겠다 싶어서요. 지금은 2024년이에요. 그렇게 큰 건물이 흔하디 흔한 시대이고요. 근데 서울말 잘하시는 분이, 이 시대 사람이라면, 무섭거나 어색해할 리가 없잖아요.”
나는 이 시대가 내가 살던 시대와 다르다는 걸, 이제야 확신했다.
“저는 1962년에서 온 양진호라고 합니다. 원래 작가 일을 했어요. 말하자면 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인은 내 소개에 그리 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미 눈치챈 마냥.
“저는 작가 일을 하는 진수연이라고 합니다. 1962년이라니, 지금도 어딘가 살아계시다면, 만나보고 싶군요.”
2024년의, 거의 60년이 지난 뒤의 작가를 만나다니, 나는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때는 어떻게 기억되었을지도. 그전에 나는 어떻게 그 시대로 돌아갈지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혹시, 제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시는 거죠?”
수연은 그 과정을 알까 하는 생각에 물었다.
“저도 길에서 처음 만난 거였어요. 정말 당황하신 듯했고요.”
나는 어찌하여 이곳에 왔다는 말인가. 알 방도가 없지만, 이곳에 온 이상, 나는 살아내야 했다.
“혹시 제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그래도, 작가로서 도울 일이 있지 않을까 하여서.
“괜찮아요. 혹시 작업할 거나 필요한 자료 있으면 말해주세요. 종이랑 펜 드릴게요.”
수연의 말투는 날이 서있지만, 그 안에 내용은 날 챙겨주려는 것 같았다. 무언가 일이 있는 것일까. 처음부터 무언가 묻기에는 사이가 너무 멀었다.
“저 그럼 종이랑 펜 좀 빌립시다. 뭐라도 적어야 할 것 같아서요.”
나는 수연에게 백지와 펜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문인이니, 무엇이라도 적고 기억해야 할 것 같았다. 종이를 바라보니,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혹시 오늘이 며칠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일단 날짜를 알고 싶었다.
“2024년 12월 2일이에요.”
내가 왔을 때랑 날짜는 같았다. 다만, 그 앞에 연도가 다를 뿐이었다. 나는 오늘의 날짜를 받아 들고, 무슨 말을 써야 할지 고민했다. 고민은 수연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왜 이리 안 써져.”
모든 작가의 고민처럼 느껴졌다. 매일 무슨 이야기를 써낼지 고민하는 것. 나는 이 길을 걷고 있었고, 수연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저 한마디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매일을 무슨 이야기를 쓸지 고민하지만, 마음같이 써지진 않고, 그럼에도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어내 왔다.
“차 한잔 하는 거 어때요? 몸을 좀 녹이면 글이 잘 써질 거예요. 저도 그랬거든요.”
나는 수연에게 티타임을 제안했다.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이었다. 글이 써지지 않으면, 따뜻한 물이라도 한 잔 하는 것.
“그래요. 커피 괜찮죠?”
수연은 내 말에 주전자에 물을 담아 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수연은 내게 커피를 내어주었다.
“마셔요. 입에 맞는 커피일지는 모르겠어요.”
아무럼 어떠한가. 처음 보는 이에게 이리 친절을 베푸는 이가 또 있을까. 우리는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