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에 봄이 들었다!

발코니 텃밭 기록 - 프롤로그

by 골방지기

드디어 대파에 싹이 돋았다. 2주 만이다.

씨를 뿌릴 때부터 남편은 반대했다. 그냥 모종을 사라고,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대파보다 이틀 먼저 씨를 뿌린 애플수박은 아직 싹조차 보이지 않는다.

'씨가 썩어버린 걸까? 새가 파먹은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정말 남편 말대로 쓸데없는 시간 낭비였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본 뒤,

'내 땅 한 칸이 있다면 먹을 것만 농사지어도 최소한 굶어 죽진 않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언젠가는 해봐야지 마음만 먹고 있던 농사는 코로나가 창궐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누구도 만날 수 없던 그때, 드디어 시작되었다.


주말마다 호박, 오이, 상추, 토마토를 듬뿍 따 왔고, 하지 무렵엔 감자를 캐고,
여름엔 옥수수를 거두고, 겨울에는 열무를 캤으니, 본전은 뽑은 셈이다.

열매가 맺히기 시작할 땐 주말마다 ‘먹을 게 공짜로 생긴다’는 기분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뭐든지 자라나는 여름이 되자, 수확량은 우리 네 식구가 감당하기엔 너무 많았다.

일주일 내내 상추 먹고, 오이 먹고, 또 호박만 먹어야 할 판이었다.
문제는, 우리 식구는 ‘육식 가족’이라는 것.
우리 밥상에서 채소는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처음엔 수확한 작물들로 냉장고가 가득 찼고,

그 다음엔 텃밭에 가는 발걸음이 줄었다.
결국 가지에 매달려 썩어버리는 열매들이 생겼다.

결론을 내리자면,

텃밭 농사란 건 채소를 정말 좋아하던가,
나눠줄 이웃이나 가족이 있거나,
아니면 팔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다.


그 이후로 텃밭 농사는 접었다.



그러다 작년 여름, 마당처럼 넓은 발코니가 있는 1층 집으로 이사를 왔다.

반년 동안 마당을 바라보며 다시 텃밭 농사를 계획했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젠 코로나가 없고, 그래서 사람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마을에 나눠줄 이웃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텃밭의 모양을 상상하며 봄을 기다리다가 3월이 되자마자 텃밭 화분을 들였다.

날이 따뜻해지고 묘목시장이 열리자 울타리 나무도 사고,
남편이 원하던 블루베리나무도 들이고,
정원을 꾸밀 동백나무도 샀다.

모종판에 씨앗도 뿌렸다.

땅에 온기가 올라올 즈음엔 상추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이제 날이 완전히 풀렸으니,

오이나 토마토처럼 열매 맺는 모종을 심을 차례다.

비빔국수용 국수도 사야겠다.
상추랑 오이 넣고 쓱쓱 비벼 먹고,
블루베리 따먹고, 수박도 따먹을 테다.


발코니 텃밭에 봄이 들었다.
텃밭 농사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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