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8월 16일. 저녁 5시경 우리는 여행을 마치고 제주항에서 출발했다. 이제 막 스물이 된 우리 여덟 명은 같은 과 95학번 동기들이다. 우리는 대학생이 되고 맞이한 첫 여름 방학에 제주도 자전거 일주에 도전했고 이제 제주도를 떠나는 참이었다. 그때, 우리들에게 자전거 일주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일주도로는 지금처럼 정리되기도 전이었고, 한 친구는 제주도에 가서야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해수욕장에서 노숙을 했고, 시내 한가운데서 자전거가 망가지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에도 큰 사고 없이 안전하게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마쳤다.
4박 5일 선크림도 제대로 못 바른 우리는 모자가 가리는 부분을 경계로 얼굴의 위아래가 확연하게 다른 색깔을 띠었고, 제주도로 갈 때 흥분되고 시끄럽던 열기는 옅어지고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했다. 그래도 젊다는 게 뭔지 선실에서 잠깐 자다가도 갑판에 올라가서 새까매진 얼굴로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 구경할 여력은 남았었다.
해가 지고 밤이 되자 바다 안개가 두껍게 꼈다. 그때 배가 지나는 길로 바다 안개 터널이 만들어지는, 생전 처음 보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우리 배가 바다 안개를 헤쳐가는 유령선이 된 것 같았다. 그 터널 위는 뚫려 있어서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이 보였고, 그 위로 은하수가 펼쳐졌다. 5일 전 서대전역에서 야간열차를 탄 우리는 여행의 마지막을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어쩌면 앞으로도 보기 힘든 환상적인 장면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었다.
목포항에 도착한 우리는 목포역으로 이동했다. 막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우리 중 대장 역할을 하는 친구가 열차표를 사러 매표소로 갔다. 우리는 목포역 광장 아무 데나 짐을 던져놓고는 그 위에 앉아서 여행을 마치고 난 느낌들을 나누고 있었다.
“야, 큰일 났다”
친구는 큰 목소리로 역 입구에서부터 외치며 뛰어왔다.
“표가 없어.”
우리 모두 감도 못 잡고 있는데, 친구가 말했다.
“막차가 8시 30분이었대”
“뭐라는 거야? 부산역에서도 밤새 기차가 다녀.”
사실 우리 모두 부모 없이 떠나는 호남선 기차 여행이 처음인 친구들이었다. 대전 토박이 친구 2명, 나머지는 대구나 부산, 김천에서 대전으로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이었다. 특히 이전까지 나에게 기차는 오직 ‘경부선’이었다.
그런데 호남선은 밤 8시 30분 기차가 상행선 막차란다. 우리 모두 어찌할 바를 몰라서 정신없어하고 있을 때 차편을 알아봤던 친구가 말했다.
“설마! 우리가 서대전역에서 올 때 반대편 막차가 11시까지 있었어. 그리고 거의 비어 있어서 예매도 안 했는데......”
우리들은 그 말에 매표소로 다 몰려갔다.
잠시 뒤 우리는 착잡해진 표정으로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알아본 결과 5일 전 호남선 스케줄은 여름휴가 기간을 위한 하계 특별 운행기간이라서 11시까지도 막차가 있었다는 것이다. 8월 15일 자로 하계 특별 운행기간은 끝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목포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쩔 수 없다, 남은 돈을 모아보자. “
“......”
우리는 제주도를 회비 10만 원으로 여행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5일 여행에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회비를 모아서 회계를 담당한 친구가 살림을 꾸렸었다. 8명 기차와 배의 왕복 교통비, 5일간의 자전거 대여비와 식비를 빼면 부족하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그런 상황에 남은 돈으로 8명이서 잘 수 있는 숙소를 구하기는 불가능했다. 우리가 한 선택은 목포역 광장에 박스를 까는 것이었다. 박스를 깔고 컵라면을 먹고 지칠 때까지 놀다가 첫차가 움직일 때까지 눈을 붙이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피곤한데 하루 더 고생하지 뭐.”
젊으니깐, 그리고 아직은 조금 더 주위 사람들에게 여유로웠고, 덜 삭막했던 시절이었으니깐 할 수 있었던 객기였을 것이다.
우리는 박스를 주워 와서 칸칸이 깔았다. 여자가 3명이고 남자가 5명이라서 여자애들의 박스를 남자애들의 박스로 둘러싼 모양으로 깔았다. 그리고 컵라면을 먹으면서 다시 여행의 마무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경부선과 호남선,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 차이로 옮겨갔다.
“대구, 부산 사람들은 투덜거리면 안 돼, 해방 이후에 다 가져갔어.”
“호남 사람들 지역감정도 이해해야 해. 이것 봐, 서울 가는 열차가 밤에 없다는 게 말이 돼?”
“우리가 배운 지리책 생각해 봐, 경상도 쪽은 다 산업지역, 공단지역이고 평야는 다 전라도에 있어. 김제평야, 나주평야, 호남평야. 경상도는 교과서에 김해평야밖에 없고 다 공장이고 산업지역이야.”
“고속도로도 봐, 호남고속도로는 좁고, 서해안 쪽으로 전라도를 가로지를 고속도로는 이제 공사 중이야.”
“난 부산 바다에서 은하수 같은 건 본 적도 없어, 너무 밝아서. 그래서 목포가 멀지 않았는데 은하수를 볼 수 있었다는 게 신기했어.”
“어이없는 건, 대구 사람들이 노태우는 싫어한다. 대구 출신 대통령이 대구에 해준 게 없다고. 지금 보니 많이 받았는데......”
“이 모든 게 전라도 대통령도 없고 힘센 전라도 정치인도 없어서 그래.”
모두 한 마디씩 떠들었다. 그 말의 대부분은 호남지역이 정치적인 이유로 낙후되어 있고,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라도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하고 호남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울분을 토하고 나서 다들 지쳤는지 새벽 3시가 넘어서 박스에 누웠다.
여름이라도 노숙은 쌀쌀했다. 모두 박스 위에서 누워 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지역정보지들을 가지고 와서 덮었다. 누워서도 일부는 아까 나누던 토론의 열기가 남았는지 계속 씩씩대면서 지역감정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대전에서 자란 친구가 졸린 목소리로 결론을 내렸다.
“경상도에서 자란 너희들이 반성해야 해.”
“알았다고요. 네네. 우리가 잘할게요. 얼른 주무세요.”
무사 귀환으로 마무리될 것 같았던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목포역 광장, 박스 위에서 벌어진 열띤 토론으로 또 다른 추억을 남기고 있었다.
이미 25년이 지난 일이다. 그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이나 대전에 살고 있다. 가끔 만나서 이 여행을 같이 이야기하면 침을 튀기면서 목포역에서 있었던 그 하룻밤을 이야기한다. 스무 살 여행 마지막 밤에 우린 지독한 불평등을 느끼면서 우리끼리 반성하고 우리끼리 화해했다. 세상은 여전히 화해하지 못한 것 같지만 그 밤이 우리에게는 특별했나 보다. 환상적인 바다 안개 터널도, 은하수도, 힘들었던 자전거 일주도 아닌 목포역에서 박스 깔고 자던 그 하룻밤을 여전히 곱씹는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