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커다란 점을 아이가 색칠하고 있다. 아이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면서도 즐거워 보인다. 바로 피터 H.레이놀즈의 그림책 <점, The dot>의 표지 그림이다.
주인공 베티는 미술시간이 끝났지만 도화지를 앞에 두고 그림 그리기는 시작조차 못하고 망설이고만 있다. 그때 선생님은 하얀 눈 속에 있는 북극곰이 멋지다고 칭찬한다. 베티는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약이 오른다. 그래서 뭐라도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연필을 종이 위로 내리꽂아서 점하나를 만들었다. 선생님은 그 도화지에 사인을 하라고 했다. 며칠 뒤 벽에는 베티가 내리꽂아 생긴 점이 액자에 들어가서 벽에 걸려있었다. 베티의 사인과 함께, 작품이 되었다. 베티는 생각에 빠졌다.
'저 점보다 더 멋진 점을 그릴 수 있는데.....'
그 뒤로 베티는 정말 많은 점을 그렸다. 노란 점, 빨간 점, 색칠 안 하고 만든 점, 점선으로 만든 점, 커다란 점, 아주 작은 점 등등등.. 그리고 베티의 '점' 전시회에 찾아온 꼬마에게 선생님이 했던 말을 똑같이 해주며 격려한다.
"한번 그려봐." "자! 이제 여기 네 이름을 쓰렴."
'점(The dot)' 중에서
하얀 도화지 위에서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하고 마무리 짓는 것은 쉬운 과정이 아니다. 먼저 무엇을 그릴 것인지를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결정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재료를 선택하고 재료에 어울리는 기술로 표현해야 하며 적당한 시점을 찾아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야 한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미술반 활동을 했었다. 1학년 때 의무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해야하는 학교 분위기 때문에 신청 마지막 날, 미대 진학이 목표인 친구 수기를 따라, 첫눈에 반한 미술 선생님을 보기 위해 미술반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하는 미술 시간 외에그림 그리는 법을 배운 적은 없었다. 그런데 미술반 입부를 위해서는 그림을 하나 제출해서 면접을 봐야했다. 색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지만 감도 없었고, 색칠하는 기술도 몰랐던 나는 연필로 흑백사진 수준의 풍경 스케치를 해서 제출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똑같이 그리는 것뿐이었으니까.
흑백 풍경화가 좋아 보였는지 미술반에 들어갈 수 있었고, 선생님은 그 작품을 시에서 하는 미술대회에 제출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수기와 또 다른 미술을 전공할 동기 한 명과 함께 예선을 통과해서 사생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시가 주최하는 사생대회의 본선에서는 연필 세밀화를 그릴수가 없었다. 연필화가 그리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세밀하게 그려야 하니 야외에서 그릴만한 그림은 아니었다. 또 여기저기 그림을 옮기는 사이에 연필가루가 다 번질 게 뻔했다.
사생대회가 열리는 날, 공원 한쪽에 수기와 자리를 잡고 앉아 수채화를 그릴 준비를 했다. 유일하게 잘하는 연필화는 야외에서는 시간도 부족하고 보관도 어려운데다가 그리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략의 스케치를 하고 붓을 들었다. 옆에 앉은 수기를 흉내 내어 수채물감을 칠해볼 참이었다. 수기는 국민학교 때부터 이미 전국 단위의 미술대회에서 몇 번의 최고상을 받은 적이 있는 예비 화가였다. 물을 잔뜩 머금은 굵은 붓으로 물감을 슬쩍 찍어 슥슥 색칠해나가는 수기를 보고있으면 수채화는 마냥 쉬워보였다. 난 용기를 내어 수기처럼 물을 잔뜩 머금은 붓을 말린 물감위로 슬쩍 문질렀다.
얼마 뒤, 나는 몇 번의 물감칠을 하고 나서 엉망이 된 종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제출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던 나를 보고 미술 선생님이 다가와서 물어보셨다.
"다했어? 이게 뭐야? 이게 다한 거니? 시간 많으니까 다시 해!"
선생님이 가시고 나서 급하게 스케치를 옮기고 다시 붓을 들었지만 더 이상 색칠할 수가 없었다. 미술학원에서 전문적으로 배운 아이들의 그림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된, 내가 물감으로 색칠하는 방법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과 내가 지금 어떻게 해도 수기가 쉽게 표현하는 것을 흉내조차 낼 수 없다는 깨달음 때문에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다시 붓으로 나무를 칠해보려다가 결국 종이를 반으로 접어버렸다. 마지막 종이였다.
선생님이 다가와서 그림을 내놓으라고 하셨다. 난 반으로 접힌 종이를 내밀었고 도저히 색칠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날 보시고는 다른 친구들을 봐주러 가셨다.
지레 포기해버린 내 행동이 한심했었는지, 버릇없이 종이를 접어버린 내가 한심했던 것인지는 혹은 두 가지 다 이유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짝사랑했던 선생님의 실망한 표정은 내가 앞으로 오랫동안 수채화를 못 그리게 만들었다. 그 뒤로도 미술반 활동은 계속되었지만 나는 졸업할 때까지 수채화를 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난 오늘, 화실에서 하는 그룹 전시회에 나의 수채화를 전시했다. 몇 년 전부터 내가 잘하는 '똑같이 그리기'로 할 수 있는 식물 세밀화를 배웠다. 처음에는 색연필로 그리다가 수채화에 관심이 생겼었다. 수채화로 그리는 세밀화가 넓은 면은 좀 더 쉽게 그릴 수 있었고, 더 부드럽게 표현되는 것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작년부터 수채화를 전문으로 하는 화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수채화로 식물 세밀화를 그리는 것이 목표였지만 배우다 보니 물을 잘 써서 수기처럼 파도도 그려보고 싶고 멋지게 물에 번져나간 꽃과 나무를 그리고 싶어졌다. 문제는 붓을 들면 어떻게 색칠할지 무엇부터 색칠할지 아무 생각이 안 나고 망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새로 만난 선생님은 나에게 물 쓰는 것부터 차근히 알려주었다. 생각해보면 학교를 다니는 내내 물감으로 색칠하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물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번짐을 이용하는지 차근히 배웠고 내가 실수를 해도 선생님은 "잘했어요. 잘했어요. 이런 건 고칠 수 있어요. 다시 덮으면 되지." 라며 항상 응원을 해줬다. 물론 "이런 건 이렇게 하면 더 좋아요. 이 색보다는 여기에 저 색을 조금 더 섞으면 좋아요." 라며 세심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림 그리는 시간은 칭찬받고 격려받고 회복되는 시간이었고, 그래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가는 시간이었다.
골방지기. Iris . 2021.10
전시회가 끝나고 숙제처럼 하는 그림책 필사 시간. 피터 레이놀즈의 <점>이 떠올랐다. 선생님의 무심한 듯 던지는 격려와 칭찬이 베티를 화가로 만들었다. 작가는 작은 칭찬 하나가 아이를 훌륭한 예술가로 만들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오늘 나도 선생님의 격려와 작은 도움이 쌓여서 내가 느리게 그린 그림을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보일 수 있었다. 화가도 아니고, 예술가도 아니지만, 서툴고 어설픈 그림이어도 자랑스럽게 내 그림을 내보였다. 숨어있던 전능감의 발로였다.
이제 나도 베티가 선생님에게 받은 격려를 꼬마에게 전달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과 응원을 전달할 차례이다. 먼저 나의 아이들에게 혼내기보다는 응원하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줘야겠다. 사춘기 딸들에게 잔소리를 빼고 칭찬과 응원을 하려면 내 화를 삭이는 연습부터 많이 해야겠지만. 그리고 글쓰기 모임의 합평 시간에 더 많이 '우쭈쭈' 응원을 해줘야겠다. 더 멋진 글을 기대하면서. 작은 칭찬 하나가 베스트셀러를 내는 에세이스트를 만들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