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는 노가다 판에서 일하셨다.
배운 것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결국 몸을 쓰는 것밖에 없었다.
시골에 계셨다면 농사를 지으셨겠지만,
70년대 급성장하던 도시에서
건설 현장은 가장 흔한 일자리였다.
아버지는 평생을 그렇게 육체노동으로
자식들을 먹여 살리셨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눈물이 난다.
아버지가 불쌍해서가 아니다.
나 또한 가족을 책임지며 살아오다 보니,
그제야 아버지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고생한 만큼,
다른 사람의 고생도 보이는 법.
이 단순한 진리를 나이를 먹고서야 알게 되었다.
⸻
아버지는 평생 몸을 쓰는 일을 하셨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드신 후에는
많은 시간을 쉬며 보내셨다.
뒤늦게 알았지만, 일없이 쉬는 것이 힘드셨는지
리어카를 끌며 파지를 주우시기도 하셨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길에서
리어카를 끄는 노인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
우리는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결국은 ‘쉴랜드’라는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쉴랜드는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곳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쉴랜드는
마냥 일없이 쉬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꿈꾸는 쉴랜드는
은퇴 이후, 현실의 무게에서 벗어나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나라다.
⸻
어릴 적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그림 그리기였다.
매일같이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상상을 바탕으로 붓을 움직이듯,
이제는 글로도 충분히 그림을 그릴 수 있다.
⸻
아버지는 이제 영원한 쉴랜드로 가셨다.
나도 언젠가 그 길을 따라가겠지만,
그보다 먼저 지상에서의 쉴랜드를 꿈꾼다.
더 이상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달리지 않고,
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이야기를 채우며 사는 곳.
그것이 내가 바라는 쉴랜드다.
아직은 현실의 문제들이 남아 있지만,
언젠가는 누구나 가는 그 쉴랜드에서
나는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
오늘도 그 나라를 꿈꾼다.